특전사 출신 창업자가 말하는 드론 스타트업의 8년: 파블로항공 김영준 의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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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파블로항공은 AI 자율군집 제어 기술로 드론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김영준 의장에 따르면 2018년 8월 세 명이 창업한 회사는 현재 약 270명이 일하고 있고, 누적 투자금은 약 1,075억 원이다. 국내 최초로 100대 규모 드론쇼를 시작했고, 지금은 항공기 외관을 점검하는 인스펙션과 국방 분야로 사업을 넓혔다. 이 인터뷰에서 김 의장은 창업 계기, 첫 드론쇼의 위기, 투자 유치에 대한 생각, 사업 확장의 이유, 그리고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원칙을 이야기한다.

5 분 분량

특전사 5년에서 얻은 것

김 의장은 스무 살 무렵 군 입대를 앞두고 "가장 임팩트 있고 남들이 하지 않은" 곳을 고민했다. 강하와 스쿠버를 하는 부대를 찾다가 특전사에 지원했고, 5년간 복무했다.

그는 복무 기간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내륙 전술 훈련이다. 3주간 훈련을 마치고 모두 지친 상태에서 일주일 동안 400km를 걸어야 했다. 하루 18시간 가까이 밤새 걷다 보면 동틀 무렵 너무 졸려서 걷다가 논두렁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인내의 한계까지 가 봤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 못 할 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드론과의 만남, 그리고 평창 올림픽

2014년 전역할 무렵, 중국 DJI가 레저용 드론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이 하나둘 드론을 사기 시작했다. 김 의장이 다니던 학교는 항공 특화 학교였는데, 원래 컴퓨터정보학과였던 그의 학과가 항공소프트웨어공학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이 드론을 처음 접한 계기였다.

복학해 보니 1학년 후배들이 공부를 너무 잘했다. 26살에 5년의 군 생활로 "머리가 많이 굳어 있던" 그는 이들과는 다른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드론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드론 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30살 무렵이던 때 평창 올림픽이 열렸다. 인텔이 한국에 와서 1,000대가 넘는 드론으로 오륜기를 만드는 드론쇼를 선보였고, 전 세계가 놀랐다. 김 의장은 이를 보며 "왜 굳이 해외 기업이 한국에 와서 이런 걸 할까, 한국은 왜 이걸 못 할까"라고 생각했고, 직접 드론쇼를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파블로항공을 창업했다.

2억 원의 엔젤 투자와 라트비아행

드론쇼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드론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고민하던 김 의장은 회사 대표였던 친구의 아버지를 찾아가 사업 설명을 했다. 2억 원을 빌려주면 20% 정도를 지불하겠다며, 청년 창업을 돕는 좋은 일에 쓴다는 생각으로 엔젤 투자를 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 대표는 별다른 말 없이 "열심히 한번 해 봐라, 다만 갚는 데 오래 걸리지 마라"고만 했다고 한다. 김 의장은 그 2억 원이 없었다면 창업을 못 했을 것이라며 정말 감사한 엔젤 투자자라고 말한다.

자금을 확보한 뒤 필요한 기술을 알아보던 중, 라트비아에 드론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락을 해 보니 트레이닝 과정과 비용, 드론 20대를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 등 시스템을 알려 줬다. 그는 함께 창업할 동료 두 명과 라트비아로 건너가 트레이닝을 받았고, 이를 자신이 개발하던 시스템과 통합해 빠르게 한국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첫 드론쇼: 전날까지 추락하던 35대

2018년 10월, 파블로항공은 인천 청라호수공원에서 35대로 첫 공연을 했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비행이 잘 되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매일 밖에 나가 테스트와 비행 시험을 했지만, 행사 전날까지도 두세 대가 빙빙 돌다가 추락했다.

리허설을 보러 온 인천시 관계자는 이번에 안 되면 파블로항공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의장은 이미 라트비아에 가서 돈도 쓸 만큼 썼고, 2,000명이 기대하고 있으며, 실패하면 소문이 다 날 테니 "우리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으니 안 되면 접더라도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이륙 버튼을 눌렀다.

35대가 모두 떴고, 한 대도 이상 없이 비행을 마치고 착륙했다. 그는 그 순간 희열을 느꼈고, 가만히 있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고 회상한다. 그날이 한국에서의 첫 드론쇼였다고 그는 말한다.

경쟁사가 생기자 불꽃 드론쇼로

첫 쇼 이후 전국의 지자체들로부터 드론쇼 요청이 많아졌다. 드론쇼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경쟁사도 하나둘 생겼다. 이때 파블로항공이 새로 기획한 것이 드론 불꽃쇼였다. 그때까지 드론쇼는 모두 라이트쇼였는데, 라이트쇼만으로도 신기해하던 관객에게 불꽃을 더하자 '와우 포인트'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김 의장에 따르면 이를 바탕으로 303대로 기아자동차 로고를 만들어 첫 기네스 기록을 세웠고, 51대로 두 번째 기네스 기록을, 2024년에 세 번째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그는 창업자라면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내며 시장을 리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 투자 유치에 대한 생각

김 의장은 경쟁사들이 나온 뒤부터는 자본력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의 철학은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것이다. 투자자의 돈은 당연히 빚이라고 생각하지만, 6명이나 10명으로 2년 동안 개발하느냐, 자본을 넣어 30명으로 6개월 만에 끝내느냐의 차이가 있고, 특히 새로운 분야일수록 그렇다고 말한다. 그래서 투자를 받기로 했고 여러 경로로 투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8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1,0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그는 '매력'을 꼽는다. 어렵게 자랐지만 하고 싶었던 것은 다 이뤄 왔고, 특전사에서 최고 성과를 냈고 파병도 다녀왔다는 이력이 "이 사람은 포기는 안 하겠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를 연애와 결혼에 비유한다. 자신에게 능력과 매력이 있어야 상대가 좋아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는데, 아무 매력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창업자에게 자기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그는 말한다.

드론쇼 사업의 한계와 확장 방향

드론쇼 사업은 잘 됐지만 의심도 있었다고 김 의장은 털어놓는다. 이 사업이 과연 어디까지 커지고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2018년 창업 당시 최대 규모는 100대였고, 이후 해마다 규모를 키워 2025년에는 2,025대까지 올렸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 따르면 드론쇼가 2,000~3,000대를 넘어가면 국내에서 비행할 공간 등이 나오지 않고, 결국 드론쇼로 올릴 수 있는 매출의 규모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쇼 사업과 함께 배송과 UAM(도심항공교통)도 계속 진행했지만, 이 분야는 국가 차원에서 인프라가 많이 갖춰져야 수월해지는 사업이라고 그는 본다. 대기업만큼 체력이 없는 스타트업으로서는 빠르게 이윤을 낼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했고, 그 답이 국방과 인스펙션(점검)이었다.

인스펙션: 대한항공과의 항공기 외관 점검

인스펙션 사업은 대한항공과 3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항공기는 600시간 운항할 때마다 경정비 점검으로 외관 점검을 받아야 한다. 김 의장에 따르면 기존에는 8~10명이 약 8시간 동안 사다리를 타고 눈으로 보며 외관을 점검했다. 이를 드론을 활용하면 두 명 정도가 30분 이내에 끝낼 수 있어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방산: 군집 기술과 대량 양산 체제

방산 사업에 뛰어든 이유로 김 의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든다. 전쟁 이후 드론 없이는 전쟁이 안 될 정도로 드론의 위상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파블로항공은 군집 기술을 갖고 있으니 기존 드론 시스템에 군집을 넣어 글로벌 국방 시장에 납품하자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한다.

그런데 방산 분야에서 계속 들은 질문은 대량 양산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고객들이 원하는 수준은 한 달에 거의 1만 대였지만, 파블로항공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한 달에 수백 대 수준이었고, 이것이 약점이었다고 그는 인정한다.

그래서 약 3년 전부터 공장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단순히 공장을 사는 것보다 양산 노하우와 경험이 있고 자동화 라인을 설계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고, 결국 43년 된 방산 회사를 인수했다. 이 인수합병을 통해 올해 5만 대, 내년 10만 대, 내후년 20만 대까지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김 의장은 이 양산 체제가 갖춰지면 국내에서 가장 큰 양산 체제가 될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드론 제조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모험을 좋아하게 된 배경

김 의장은 자신의 성향이 어린 시절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세 살 어린 여동생에게 장애가 있어 어머니가 동생을 위해 병원에 머문 적도 있었고, 그래서 혼자 스스로 크는 법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혼자 열심히 살아서 자신을 보여 줘야 부모님이 자신을 더 봐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어렸을 때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본다. 그러면서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리드하는 데서 큰 만족감을 느꼈고, 남들이 하지 않는 모험적인 일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한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람, 그리고 조급하지 않은 마음

김 의장이 사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사람이다. 그의 휴대폰에는 연락처가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누군가 나를 도와줄 확률도, 내가 누군가를 도울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인맥과 자기 사람을 키워 두면 필요할 때 연락을 부탁하거나 누군가를 소개해 달라고 할 수 있고, 이런 기회가 모두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그는 "무조건 나가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창업은 단기간에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오래 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사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는 절대 빨리 되지도,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조금은 천천히 가져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김 의장이 창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