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게 나눈 R&R이 왜 팀을 망치는가: 한기용이 답한 세 가지 갈등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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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리더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돌아보면 대부분 사람이나 조직 사이의 충돌과 갈등에서 생겼다고 한기용은 말한다. 그는 리더가 충돌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가 팀의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본다. 이번 회차에서는 갈등을 주제로 한 시청자 사연 세 편을 다룬다. 에이스의 기획안을 다른 팀원에게 넘긴 팀장, 역할을 칼같이 나눴다가 "그건 제 R&R이 아닙니다"라는 말만 듣게 된 리더, 다른 팀과 서열 싸움을 벌이는 팀장 밑에서 일하는 팀원의 이야기다.

5 분 분량

사연 1: 에이스의 기획안을 다른 팀원에게 넘겼더니

닉네임 '송송'의 사연이다. 팀장인 사연자의 팀에는 일 잘하는 에이스가 있는데, 지금 큰 프로젝트 때문에 잠잘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 마침 에이스가 초안을 잡아둔 기획안이 하나 있었고 당장 실행해야 했기 때문에, 팀장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팀원에게 그 일을 맡겼다. 리소스 배분을 잘했다고 뿌듯해하며 퇴근했지만, 다음 날부터 에이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입을 닫고, 의견을 물어도 시종일관 "좋은 것 같아요"라고만 답한다. 사연자는 회사 일은 개인 소유가 아니고, 일을 뺏은 게 아니라 업무 다이어트를 시켜준 것 아니냐고 묻는다.

한기용은 이런 형태의 사연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충돌의 상당 부분은 공동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거나, 사람들이 그 목표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때 생긴다. 그래서 업무 배분을 바꾸기로 했을 때 미리 알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보다 공동의 목표와 연결해 설명하는 편이 낫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런 일로 바쁘고, 하지만 이 일은 진행돼야 한다. 우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번에는 이렇게 배분한다.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디어를 내줘서 고맙다."

그는 개인기로 인정받아 온 팀원일수록 일이 자기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리더는 그런 팀원이 자기 일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야 하고,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한기용은 이것이 일종의 강화 학습처럼 작동해서, 사람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데 큰 동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조직 사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기용이 직접 겪은 비슷한 경우는 개인 사이가 아니라 조직 사이의 일이었다. 어떤 조직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다른 조직이 그 프로젝트를 가져다 다른 마켓에 배포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한 팀은 "저거 우리 아이디어인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그 아이디어를 보고 다른 마켓으로 복제한 것도 맞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이후의 협업이 좋아지려면 복제해서 다른 마켓에 적용한 팀이 원래 팀에 계속 크레딧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팀 덕분에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 팀의 도움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 사이에서도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동시에 팀 문화 측면에서는 "내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실행까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정리한다.

사연 2: 철저한 R&R이 만든 벽

닉네임 '개발 세발자'의 사연 제목은 "철저한 R&R의 딜레마"다. 사연자는 조직 내 충돌을 줄이려고 각자의 역할을 칼같이 나눴다. 처음에는 효율이 오르는 것 같아 뿌듯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제만 터지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건 제 R&R이 아닙니다"라는 말부터 한다. 싸우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이 이제는 넘으면 침범이 되는 거대한 벽이 됐고, 눈앞에 불이 났는데 "제 담당에는 소방수가 없는데요"라며 뒷짐 지는 팀원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연자는 시스템이 문제인지, 리더로서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묻는다.

한기용은 먼저 정의부터 짚는다. R&R은 Roles and Responsibilities, 즉 역할과 책임이다. 하이 레벨에서 팀이나 개인의 역할과 책임을 어느 정도 명확히 하는 것은 굉장히 좋다. 문제는 이것을 너무 세분화할 때 생기며, 세분화하는 동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충돌을 막기 위해 R&R을 잘게 나누는 경우가 있고, 그만큼 좋지 않은 동기로 사람들에게 전문성을 주기 위해, 즉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하도록 나누는 경우를 든다.

세분화가 낳는 두 가지 부작용

그렇게 R&R을 세분화하면 생기는 첫 번째 악영향은 협업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 책임 바깥으로 나가 팀으로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나는 이거 하나만 할 거야"라며 자기 일만 하려고 하게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사람을 많이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맡을 일이 잘게 정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한기용은 자문했던 회사의 사례를 든다. 직원이 100명인 회사에 재무팀만 일곱 명이었다. 그가 "말도 안 된다"고 표현한 이 상황의 원인을 살펴보니, 재무 팀장이 팀원들끼리 싸우는 것을 막고 전문성을 살려준다는 이유로 굉장히 세분화된 일을 나눠 맡겼고, 그러다 보니 채용이 늘어났다. 그는 그런 문화가 과연 그 팀에만 있었겠느냐고 되묻는다.

결국 R&R을 세분화해서 정하려 하면 주객이 전도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우리의 비전과 미션은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목표는 무엇인지 같은 큰 그림을 보지 않고, 세세한 자기 책임과 권한, 전문성만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 제도 대신 대화 채널

한기용은 이 문제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한다. 경계가 애매한 일은 R&R을 미리 세분화해 정하지 말고, 그 경계에 있는 팀들이 만나서 그때그때 결정하는 것이 더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있었던 넷플릭스의 컬처 덱에 나온 "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라는 표현을 소개한다. 리더급들이 계속 얼라인을 맞춰두면 실무자들은 충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그는 설명한다. 애매한 일이 생겼을 때 팀원들에게 "너희가 알아서 결정해"라고 던지지 말고, 리더들이 그때그때 만나서 "이번에는 너희가 여기까지, 그다음은 우리가 할게"라고 정하는 것이다. 이런 미팅을 스태프 미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핵심 주장은 충돌을 막는 제도를 만들려 하지 말고, 충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경험한 실리콘밸리의 일하는 문화이고, 한국은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어 한다고 비교한다. 다만 R&R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세분화해서 구체적으로 정하겠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사연 3: 다른 팀과 서열 싸움을 하는 팀장

닉네임 '이호'의 사연은 앞의 두 사연과 달리 팀원이 팀장에 대해 겪는 어려움이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사연자의 가치관은 "회사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인데, 팀장은 우리 팀만 안 다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서는 예외적인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도, 팀장은 다른 팀이 자기 팀 직무에 대해 조금만 서툰 소리를 해도 불같이 화를 낸다. 상대 팀장은 사과하느라 바쁘고 사연자는 옆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팀을 방어해주는 건 좋지만 방식이 너무 독해서 건의조차 못 하겠고,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장이 혼자 서열 싸움을 하니 프로젝트는 늘 뒤처진다. 가치관이 너무 안 맞는 팀장 밑에서 계속 평화의 비둘기 노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한기용은 이 경우 팀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본다. 팀장에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팀장의 상사에게 이야기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이런 관찰을 하고 있다면 그 위의 매니저도 주변에서 비슷한 이야기, 즉 협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또 그는 이 팀장이 이전 직장에서 얻은 경험 때문일 수 있다고 짐작한다. 협업하고 도와줬는데 좋은 경험이 없었다면, 그 사람이 얻은 교훈은 "선을 확확 그어야 하는구나, 도와줘 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구나"일 수 있고, 그것이 일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교사로서의 경험

한기용은 개인적으로도 이런 성향의 리더를 겪었다고 말한다. 그 리더는 아래 팀원들에게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옆 팀에서 보면 협업하기 힘들고 굉장히 감정적이며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다들 주눅이 든 채 이야기하러 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결국 그런 태도가 협업을 어렵게 하고 평판을 나쁘게 만들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발목을 잡는 형태로 바뀌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그래서 이 사연에서 얻을 것은 반면교사라고 그는 말한다. 협업하기 힘든 사람, 이유 없이 일단 거부부터 하는 사람이 되면 결국 개인의 커리어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안 바뀌면 이직하라"

한기용은 이런 환경에 오래 있으면 결국 본인이 힘들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런 개인적인 사연에 그가 자주 하는 조언은 최선을 다하되, 안 바뀐다고 판단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라는 것이다. 길게 보면 그것이 유한한 시간을 훨씬 잘 보내는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근속 기간을 생각하며 맞지 않는 환경에 오래 남는다고 본다. "몇 년 다녀야 오래 다닌 건가요?", "이력서에 나쁜 기록이 남는 거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는 이것을 굉장히 슬픈 질문이라고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라는 것이다. 이력서에 짧은 경력이 좀 있더라도, 하루하루 출근이 힘들고 일하면서 상처가 쌓인다면 그 상처는 언젠가 치유하기 위해 갚아야 하는 부채이지 공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31년 동안 일하며 14개 회사를 다녔다고 밝히며, 맞지 않는 환경에 오래 머물며 주눅 들고 자신감을 잃는 것보다 옮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리더의 역할: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다루는 것

마무리에서 한기용은 리더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 갈등과 충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리한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갈등과 충돌이 나오게 할지 고민하고, 그러기 위해 조직 내에 신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방관하지 말고 적절히 개입해 해결하고, 해결 원칙을 만들어서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리더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조직 내에 신뢰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 있는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