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게 나눈 R&R이 왜 팀을 망치는가: 한기용이 답한 세 가지 갈등 사연
EO Korea리더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돌아보면 대부분 사람이나 조직 사이의 충돌과 갈등에서 생겼다고 한기용은 말한다. 그는 리더가 충돌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가 팀의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본다. 이번 회차에서는 갈등을 주제로 한 시청자 사연 세 편을 다룬다. 에이스의 기획안을 다른 팀원에게 넘긴 팀장, 역할을 칼같이 나눴다가 "그건 제 R&R이 아닙니다"라는 말만 듣게 된 리더, 다른 팀과 서열 싸움을 벌이는 팀장 밑에서 일하는 팀원의 이야기다.
사연 1: 에이스의 기획안을 다른 팀원에게 넘겼더니
닉네임 '송송'의 사연이다. 팀장인 사연자의 팀에는 일 잘하는 에이스가 있는데, 지금 큰 프로젝트 때문에 잠잘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 마침 에이스가 초안을 잡아둔 기획안이 하나 있었고 당장 실행해야 했기 때문에, 팀장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팀원에게 그 일을 맡겼다. 리소스 배분을 잘했다고 뿌듯해하며 퇴근했지만, 다음 날부터 에이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입을 닫고, 의견을 물어도 시종일관 "좋은 것 같아요"라고만 답한다. 사연자는 회사 일은 개인 소유가 아니고, 일을 뺏은 게 아니라 업무 다이어트를 시켜준 것 아니냐고 묻는다.
한기용은 이런 형태의 사연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충돌의 상당 부분은 공동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거나, 사람들이 그 목표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때 생긴다. 그래서 업무 배분을 바꾸기로 했을 때 미리 알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보다 공동의 목표와 연결해 설명하는 편이 낫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런 일로 바쁘고, 하지만 이 일은 진행돼야 한다. 우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번에는 이렇게 배분한다.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디어를 내줘서 고맙다."
그는 개인기로 인정받아 온 팀원일수록 일이 자기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리더는 그런 팀원이 자기 일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야 하고,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한기용은 이것이 일종의 강화 학습처럼 작동해서, 사람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데 큰 동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조직 사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기용이 직접 겪은 비슷한 경우는 개인 사이가 아니라 조직 사이의 일이었다. 어떤 조직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다른 조직이 그 프로젝트를 가져다 다른 마켓에 배포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한 팀은 "저거 우리 아이디어인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그 아이디어를 보고 다른 마켓으로 복제한 것도 맞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이후의 협업이 좋아지려면 복제해서 다른 마켓에 적용한 팀이 원래 팀에 계속 크레딧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팀 덕분에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 팀의 도움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 사이에서도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동시에 팀 문화 측면에서는 "내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실행까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정리한다.
사연 2: 철저한 R&R이 만든 벽
닉네임 '개발 세발자'의 사연 제목은 "철저한 R&R의 딜레마"다. 사연자는 조직 내 충돌을 줄이려고 각자의 역할을 칼같이 나눴다. 처음에는 효율이 오르는 것 같아 뿌듯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제만 터지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건 제 R&R이 아닙니다"라는 말부터 한다. 싸우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이 이제는 넘으면 침범이 되는 거대한 벽이 됐고, 눈앞에 불이 났는데 "제 담당에는 소방수가 없는데요"라며 뒷짐 지는 팀원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연자는 시스템이 문제인지, 리더로서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묻는다.
한기용은 먼저 정의부터 짚는다. R&R은 Roles and Responsibilities, 즉 역할과 책임이다. 하이 레벨에서 팀이나 개인의 역할과 책임을 어느 정도 명확히 하는 것은 굉장히 좋다. 문제는 이것을 너무 세분화할 때 생기며, 세분화하는 동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충돌을 막기 위해 R&R을 잘게 나누는 경우가 있고, 그만큼 좋지 않은 동기로 사람들에게 전문성을 주기 위해, 즉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하도록 나누는 경우를 든다.
세분화가 낳는 두 가지 부작용
그렇게 R&R을 세분화하면 생기는 첫 번째 악영향은 협업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 책임 바깥으로 나가 팀으로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나는 이거 하나만 할 거야"라며 자기 일만 하려고 하게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사람을 많이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맡을 일이 잘게 정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한기용은 자문했던 회사의 사례를 든다. 직원이 100명인 회사에 재무팀만 일곱 명이었다. 그가 "말도 안 된다"고 표현한 이 상황의 원인을 살펴보니, 재무 팀장이 팀원들끼리 싸우는 것을 막고 전문성을 살려준다는 이유로 굉장히 세분화된 일을 나눠 맡겼고, 그러다 보니 채용이 늘어났다. 그는 그런 문화가 과연 그 팀에만 있었겠느냐고 되묻는다.
결국 R&R을 세분화해서 정하려 하면 주객이 전도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우리의 비전과 미션은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목표는 무엇인지 같은 큰 그림을 보지 않고, 세세한 자기 책임과 권한, 전문성만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 제도 대신 대화 채널
한기용은 이 문제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한다. 경계가 애매한 일은 R&R을 미리 세분화해 정하지 말고, 그 경계에 있는 팀들이 만나서 그때그때 결정하는 것이 더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있었던 넷플릭스의 컬처 덱에 나온 "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라는 표현을 소개한다. 리더급들이 계속 얼라인을 맞춰두면 실무자들은 충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그는 설명한다. 애매한 일이 생겼을 때 팀원들에게 "너희가 알아서 결정해"라고 던지지 말고, 리더들이 그때그때 만나서 "이번에는 너희가 여기까지, 그다음은 우리가 할게"라고 정하는 것이다. 이런 미팅을 스태프 미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핵심 주장은 충돌을 막는 제도를 만들려 하지 말고, 충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경험한 실리콘밸리의 일하는 문화이고, 한국은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어 한다고 비교한다. 다만 R&R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세분화해서 구체적으로 정하겠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사연 3: 다른 팀과 서열 싸움을 하는 팀장
닉네임 '이호'의 사연은 앞의 두 사연과 달리 팀원이 팀장에 대해 겪는 어려움이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사연자의 가치관은 "회사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인데, 팀장은 우리 팀만 안 다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서는 예외적인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도, 팀장은 다른 팀이 자기 팀 직무에 대해 조금만 서툰 소리를 해도 불같이 화를 낸다. 상대 팀장은 사과하느라 바쁘고 사연자는 옆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팀을 방어해주는 건 좋지만 방식이 너무 독해서 건의조차 못 하겠고,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장이 혼자 서열 싸움을 하니 프로젝트는 늘 뒤처진다. 가치관이 너무 안 맞는 팀장 밑에서 계속 평화의 비둘기 노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한기용은 이 경우 팀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본다. 팀장에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팀장의 상사에게 이야기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이런 관찰을 하고 있다면 그 위의 매니저도 주변에서 비슷한 이야기, 즉 협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또 그는 이 팀장이 이전 직장에서 얻은 경험 때문일 수 있다고 짐작한다. 협업하고 도와줬는데 좋은 경험이 없었다면, 그 사람이 얻은 교훈은 "선을 확확 그어야 하는구나, 도와줘 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구나"일 수 있고, 그것이 일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교사로서의 경험
한기용은 개인적으로도 이런 성향의 리더를 겪었다고 말한다. 그 리더는 아래 팀원들에게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옆 팀에서 보면 협업하기 힘들고 굉장히 감정적이며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다들 주눅이 든 채 이야기하러 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결국 그런 태도가 협업을 어렵게 하고 평판을 나쁘게 만들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발목을 잡는 형태로 바뀌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그래서 이 사연에서 얻을 것은 반면교사라고 그는 말한다. 협업하기 힘든 사람, 이유 없이 일단 거부부터 하는 사람이 되면 결국 개인의 커리어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안 바뀌면 이직하라"
한기용은 이런 환경에 오래 있으면 결국 본인이 힘들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런 개인적인 사연에 그가 자주 하는 조언은 최선을 다하되, 안 바뀐다고 판단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라는 것이다. 길게 보면 그것이 유한한 시간을 훨씬 잘 보내는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근속 기간을 생각하며 맞지 않는 환경에 오래 남는다고 본다. "몇 년 다녀야 오래 다닌 건가요?", "이력서에 나쁜 기록이 남는 거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는 이것을 굉장히 슬픈 질문이라고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라는 것이다. 이력서에 짧은 경력이 좀 있더라도, 하루하루 출근이 힘들고 일하면서 상처가 쌓인다면 그 상처는 언젠가 치유하기 위해 갚아야 하는 부채이지 공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31년 동안 일하며 14개 회사를 다녔다고 밝히며, 맞지 않는 환경에 오래 머물며 주눅 들고 자신감을 잃는 것보다 옮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리더의 역할: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다루는 것
마무리에서 한기용은 리더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 갈등과 충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리한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갈등과 충돌이 나오게 할지 고민하고, 그러기 위해 조직 내에 신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방관하지 말고 적절히 개입해 해결하고, 해결 원칙을 만들어서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리더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조직 내에 신뢰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 있는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친다.
마침 에이스가 초안을 잡아둔 기획안이 하나 있는데 상대적으로 손이 노는 팀원에게 그 일을 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에이스 상태가 이상합니다.
개인기를 많이 부려서 인정받는 팀원들 같은 경우는 그 일이 자기 손을 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무슨 문제만 터지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R&R이 아닙니다. 그렇게 R&R을 세분하기 시작하면 어떤 악영향이 생기냐면
안녕하세요. 한기용의 나침반 한기용입니다. 갈등이란 정말 힘든 문제죠. 제가 리더로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경우들을 돌이켜 보면 대부분 사람이나 조직 간의 충돌과 갈등에서 생겼었는데요. 리더가 이러한 충돌과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가 팀이 어떻게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이 어려운 문제, 다양한 사연들이 오늘 들어왔고 첫 번째 사연으로 넘어가시죠.
닉네임 송송 님이 보내 주신 '팀원의 기획을 뺏은 팀장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용님. 전 회사가 학교가 아니라 전쟁터라고 생각하는 팀장입니다. 근데 요즘 팀원 한 명 때문에 전쟁은커녕 냉전 시대를 겪고 있어요. 저희 팀에 진짜 일 잘하는 에이스가 있습니다. 근데 에이스는 지금 큰 프로젝트를 하느라 잠잘 시간도 없거든요. 마침 에이스가 초안을 잡아둔 기획안이 하나 있는데 당장 실행은 해야겠고 상대적으로 손이 노는 팀원에게 그 일을 줬습니다. 리더로서 리소스 배분이 완벽하게 되었다고 뿌듯해하며 퇴근했죠. 그런데 다음날부터 상태가 이상합니다. 입을 꾹 닫고 의견을 물어도 시종일관 '좋은 거 같아요'라고만 하는 겁니다. 솔직히 회사 일은 개인 소유도 아니고 또 일을 뺏은 게 아니라 업무 다이어트를 시켜 준 것 아닌가요?
생각보다 이런 형태의 사연이 꽤 많이 있었고요. 충돌의 상당 부분은 공동의 목표가 명확지 않은 경우예요. 혹은 공동의 목표를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죠. 일의 배분을 바꾸겠다라는 결정을 내리고 그거를 공유할 때 미리 얘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에이스 당신은 이런 일로 바쁘고 하지만 이 일은 진행이 돼야 되고, 그러다 보니 우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을 이번에는 이렇게 배분해서 나간다.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전히 당신이 아이디어를 내 줘서 고맙다. 그런 형태로 나갔으면 더 좋을 거 같은데요.
개인기를 많이 부려서 인정받는 팀원들 같은 경우는 그 일이 자기 손을 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그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줘야 되고, 그런 바깥을 바라보는 행동을 했을 때 인정하고 잘하고 있다라고 또 칭찬을 해 줘야 돼요. 그래야 그게 강화 학습 형태로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데 커다란 동기 부여가 되거든요.
제가 직접 경험했던 비슷한 케이스는 개인 간에는 아니었고요. 조직 간의 그런 일은 생각보다 많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조직이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그러면 다른 조직이 그 프로젝트를 가져다가 예를 들면 다른 마켓에다가 디플로이 하는 거예요. 원래 처음 프로젝트를 했던 팀이 볼 때는 '아, 저거 우리 아이디어인데' 그런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당연히 그 아이디어를 보고 다른 마켓으로 복제를 한 거고. 그래서 이 경우도 그 뒤에 협업이 좋아지려면 복제를 해서 다른 마켓에서 적용한 팀이 계속 크레딧을 줘야 돼요. 이 팀 덕분에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 팀의 도움으로 이 아이디어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거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조직 간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경험이 있었고요. 팀 문화라는 측면에서 내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실행까지 다 해야 된다, 그럴 필요는 없다.
다음 사연은 닉네임 개발 세발자 님께서 보내 주신 사연이고요. 제목은 '철저한 R&R의 딜레마.' 안녕하세요, 기용님. 저는 요즘 제가 만든 철저한 R&R 문화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직 내 충돌을 줄이려고 각자의 역할을 칼같이 나눴습니다. 처음엔 효율이 오르는 것 같아 뿌듯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무슨 문제만 터지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건 제 R&R이 아닌데요'라는 말부터 뱉습니다. 제가 싸우지 말라고 그어 놓은 금이 이제는 '그 선 넘으면 침범'이라는 거대한 벽이 됐습니다. 눈앞에 불이 나고 있는데 '제 R&R에는 소방수가 없는데요'라며 뒷짐 지고 있는 팀원들. 이게 제가 만든 시스템의 문제일까요? 리더인 제가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꿴 걸까요?
먼저 R&R의 정의부터 좀 얘기를 해 보자면요. R&R은 Roles and Responsibilities의 약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역할과 책임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이 레벨로 어느 정도 팀이나 개인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거는 굉장히 좋죠. 근데 이게 문제가 되는 순간은 너무 세분화해서 들어가는 경우. 이 세분화를 하게 되는 동기가 어떤 거냐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어떤 경우에는 충돌을 막기 위해서 R&R을 세분화하기도 하고, 충돌을 막기 위한 것만큼 좀 안 좋은 동기는 사람들에게 전문성을 주기 위함이에요. 이 사람이 하나의 일만 해야 된다.
그렇게 R&R을 세분하기 시작하면 어떤 악영향이 생기냐면 협업 능력이 떨어지게 돼요. 나는 이거 하나만 할 거야. 때로는 내 책임 바깥으로 나가서 팀으로서 성과를 내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되는데 내 일만 하려고 하는 거죠. 두 번째 문제는 사람을 많이 뽑아야 돼요. 맡은 일이 정해져 버리니까.
실제로 제가 자문했던 회사에서 있던 일인데, 회사에 100명의 직원이 있는데 재무팀에 일곱 명이 있는 거예요. 말도 안 되죠. 왜 일곱 명이 있나 봤더니 재무 팀장님이 팀원들끼리 싸우는 거 막고 전문성을 살려 준다는 이유로 굉장히 세분화된 일을 구성원들에게 맡겼고, 그러다 보니 채용을 더 했고. 근데 그런 문화가 그 팀에만 있었겠어요?
그래서 이 R&R이라는 거는 하이 레벨로 정해지긴 해야 되지만 세분화해서 결정하려고 하기 시작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우리의 비전, 미션은 무엇이지? 우리가 갖고 있는 목표는 무엇이지? 그런 큰 그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굉장히 세부적인 본인의 책임과 권한, 전문성만 따져 보게 되는 거죠.
이 문제가 실리콘밸리에는 약간 적어요. 약간 애매한 경계선상의 일은 R&R을 세분화해서 결정하지 말고 그 경계선에 있는 팀들끼리 만나서 그때그때 결정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넷플릭스의 컬처라는 덱이 옛날에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뭐냐면 '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라는 표현인데, 리더급들이 얼라인을 계속 해 놓으면 실무를 하는 사람들은 충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애매한 일이 생길 때 팀원들보고 너희들이 알아서 결정해라고 던지지 말고 리더들이 그때그때 만나서 이번에는 너희가 여기까지, 그다음은 우리가 할게. 이런 미팅을 스탭 미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충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려고 해야 된다고 보여져요.
그게 제가 경험했던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는 문화고, 한국은 조금 더 누가 뭐를 해야 된다라는 거를 명확하게 하고 싶어 하죠. 그렇다고 지금 제가 R&R이 불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세분화해서 구체화하겠다는 얘기는 약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는 거죠.
이번 사연은 닉네임 이호 구독자님께서 보내 주신 '팀장님의 서열 싸움'이라는 제목의 사연이고요. 새로 입사한 회사의 팀장님 때문에 매일이 살얼음판입니다. 제 가치관은 '회사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인데 팀장님은 '우리 팀만 안 털리면 장땡'인 거 같아요. 스타트업에서는 예외적인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팀장님은 타 팀이 우리 직무에 대해서 조금만 서툰 소리를 해도 불같이 화를 내십니다. 상대 팀장님은 사과하느라 바쁘고 저는 옆에서 고개를 못 들겠어요. 팀을 방어해 주시는 건 좋은데 그 방식이 너무 독하고 세서 건의조차 못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협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팀장님은 혼자 서열 싸움 중이시니 프로젝트는 늘 뒷전입니다. 가치관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이 팀장 밑에서 저는 평화의 비둘기 노릇을 계속해야 할까요?
이번 사연은 앞서 사연과 조금 다르게 팀원이 갖고 있는 팀장님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해 주신 사연이었고요. 사실 이 케이스 같은 경우는 팀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죠. 이 팀장님께 얘기하는 거, 그리고 이 팀장님의 팀장한테 얘기하는 거 정도가 아닐까? 내가 만약에 지금 이런 관찰을 하고 있다라고 하면 분명히 그 위에 매니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협업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새로 들어온 팀장님이 분명히 그전에 다녔던 직장에서 배웠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협업을 하고 도와줬다가 별로 좋은 경험이 없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배운 교훈은 뭔가 이렇게 선을 확확 그어야 되는구나, 도와줘 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구나. 그게 일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제 개인적으로도 제 리더분 하나가 이런 성향이 있었어요. 밑에 있는 팀원들한테는 나름 좋은 분이었는데 옆 팀에서 볼 때는 협업이 힘든, 굉장히 감정적이었고 목소리가 컸고, 그러다 보니 다들 약간 주눅이 들어서 이야기하러 오는 그런 느낌. 근데 결국은 그런 태도들이 협업을 힘들게 만들고 평판을 나쁘게 만들고 그 사람의 발목을 잡는 형태로 나중에 변화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뭐 내 팀장한테 가서 할 수는 없지만 이 케이스를 보고 우리가 생각해야 될 거는 반면교사 같은 거죠. 내가 협업을 하기 힘든 사람, 이유 없이 무조건 거부하고 보는 사람이 된다라고 하면 개인의 커리어에도 큰 악영향을 결국은 끼친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이러한 환경에 오래 있으면 내가 힘들어진다고요. 그래서 저는 사실 이러한 개인적인 사연을 들을 때 많이 하는 얘기는 최선을 다하되 안 바뀐다고 판단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해라. 그게 길게 바라보면 내가 갖고 있는 유한한 시간을 훨씬 더 잘 보내는 방법이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근속 기간을 생각을 하면서 안 맞는 환경에 오래 남아요. 굉장히 많은 커리어 사연이 '몇 년 다녀야 오래 다닌 건가요?' 굉장히 슬픈 질문이에요. '이력서에 나쁜 기록이 남는 거 아닌가요?' 근데 중요한 거는 내 정신 건강이라고요.
그 이력서에 뭐 조금 짧게 다닌 게 있어도, 내가 하루하루 출근하기가 힘들고 일을 하면서 상처가 쌓인다라고 하면 그 상처는 언젠가는 치유하기 위해서 내가 갚아야 되는 부채예요. 그게 그냥 공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제가 31년 일하면서 14개의 회사를 다닌 거죠. 모든 환경이 맞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나한테 안 맞는 환경에 오래 있으면서 주눅 들고 자신감 잃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저는 생각해요.
오늘 우리는 갈등과 충돌 해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리더 관점에서 중요한 거는 이런 갈등이나 충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건강한 갈등과 충돌이 나오게 할 것인지, 조직 내에 신뢰를 만드는 것이고요. 문제가 생겼을 때 방관하지 말고 적절하게 개입을 해서 해결을 하고, 해결 원칙을 만들어서 다음번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리더 본인이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해결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 신뢰라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노력을 하시는 용기 있는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이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굉장히 빠르게 단정 짓고 그 이야기를 매일매일 더 강화시키는 거죠. 또 하나 어려운 대화를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앞에 옵션이 두 개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매니저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잘하려면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말의 톤을 바꿔서 얘기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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