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은 연차가 아니라 선택에서 나온다: 한기용이 말하는 리더십 연습과 AI 시대의 커리어

YouTube에서 열기 ↗
개요

『리더십 연습』의 저자 한기용은 한국과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엔지니어이자 리더로 일했다. 이오서재의 김지윤 에디터와 나눈 이번 대화의 중심 질문은 두 가지다. 리더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혹은 연차가 차서 떠밀리듯 리더가 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AI가 조직과 커리어를 흔드는 지금 무엇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의 답은 일관된다. 연차가 쌓이면 리더든 아니든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한 선택은 없으니 기회가 오면 저질러 보되 기대 수준은 낮추고 오래 버텨야 한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14 분 분량

실리콘밸리에서 하는 세 가지 일, 그리고 이번 한국 방문

한기용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살며 세 가지 일을 한다고 스스로 요약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은 산호세 주립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고, 나머지는 스타트업 자문과 개인 커리어 코칭이다.

대화 시점에 그는 한국에 들어온 지 3주째였다. IT 기업 강연을 많이 했지만, 이번에는 지방을 많이 다녔다는 점이 달랐다고 한다. 대구와 부산에서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학부모들에게 한 말을 묻자 그는 웃으며 "애들 내버려 둬라"였다고 답했다. 안전함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니 아이가 자기 꿈을 찾아가게 두는 것이 지금 같은 시대에도 맞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학부모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부산에서는 수산물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들이야말로 도메인을 확실히 잡고 있는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 AI를 쓰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음 방문 때는 지방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대화 후반의 AI 논의로 다시 이어진다.

"전문성이 중요하지 않나?"라는 반론과 학생들이 보여 주는 현실

김지윤 에디터는 전작 『실패는 나침반이다』에서 반복 강조된 메시지, 즉 안전지대는 없고 계속 변해야 한다는 주장을 떠올렸다. 그 책은 AI 이전인 2년 전에 나왔지만, AI 등장 이후 이 메시지를 더 강조할 만해졌다는 것이다. 한기용에 따르면 강연 현장에서는 여전히 반론이 많았다. 전문성이 중요하지 않은가, 좋은 대학에 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견이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친한 이들이라 동의하는 쪽이 많았다고 웃으며 덧붙였지만, 안전함과 전문성에 대한 믿음을 떨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가 이 생각을 몸으로 느끼는 곳은 강의실이다. 학생들을 보면 취업이 잘 안 된다. 그런데도 취업하는 학생에게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학점이 높다고 취업되는 것은 절대 아니고, 기술을 하나 더 익혀 이력서에 한 줄 더 적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바깥으로 많이 나가는 학생,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학생,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학생이 취업을 더 잘한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그는 이력서를 100개쯤 내고 취업될 거라 생각하면 착각이고, 천 개 단위로 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멘탈이 강한 학생이 잘된다. 이것을 확률 싸움으로 봐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곳에 20개쯤 내고 안 된다며 포기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세상의 변화를 학생들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은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지금 젊은 세대가 몸으로 겪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가고 큰 직장에 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고 그는 묻는다. 큰 직장이 모든 젊은이를 채용할 수도 없다. 한국에만 살았다면 이런 점이 덜 보였을 텐데,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이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보다가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승진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저질러 보고 후회해라"

김지윤 에디터는 30대 중반인 자기 주변에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친구가 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승진하면 일과 책임만 늘고 돈이 크게 늘지도 않는다는 이유다. 『리더십 연습』을 낸 편집자로서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한기용은 마침 그날 오전에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고 왔다며, 자신의 답은 "저질러 보고 후회해라"였다고 했다. 스스로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서 리더가 될 수도 있지만, 매니저나 상사의 상사가 한번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본인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자기 검열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그런 제안이 왔다면 분명히 무언가를 봤다는 뜻이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처음에는 헤맬 것이다. 그래서 그는 6개월이나 1년 하고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긴 호흡으로 보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못 할 거라고 믿고, 내 판단보다 제안한 사람들의 판단을 믿고 저질러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관점이 달라지고, 설령 성공하지 못해도 나중에 다른 일을 할 때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국은 다르다"는 반응에 대한 답: 더하기에서 곱하기와 빼기로

에디터는 한기용의 영상에 늘 달리는 댓글을 짚었다. "한국은 다르다"는 반응이다. 한국에서는 연차가 쌓이면 리더가 되어야 하는 구조라 오히려 더 주저하게 된다. 또 연차로 리더가 된 사람들에게 나쁜 경험을 해 본 이들은 그의 이야기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한기용은 레벨이 오르고 연차가 쌓이면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영향력이라고 답했다. 영향력을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를 하기 싫어 개인으로 계속 일하더라도 영향력은 만들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영향력은 개인기로 일을 조금씩 더 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서 주변의 성과가 함께 오르게 하거나, 때로는 "이런 일은 하지 맙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더하기 모드에서 곱하기와 빼기 모드로 바뀌어야 하며, 개인으로 남든 리더가 되든 연차가 쌓이면 꼭 생각해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그는 아주 큰 회사에서는 이런 것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환경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 아니냐"는 댓글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계속 지금처럼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더 유연하게 일하는 형태, 조직 구조가 작아지는 형태로 바뀔 것이며, 그렇다면 지금부터 리더 역할을 해 보는 게 낫다는 것이다. 또 환경이 바뀌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노력이 더 건강하다고 말했다.

첫 해고에서 배운 것: 리더십의 본질은 기대 관리

한기용은 돌이켜 보면 자신이 리더로서 성장한 순간은 늘 아픔이 있을 때였다고 했다. 첫 번째 장면은 야후에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해고해 본 경험이다. 당시에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 경험으로 앞단에서 불편한 대화를 할수록 모든 것이 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 피드백을 주면 바뀔 사람은 바뀌고, 바뀌지 않는 사람은 헤어질 때 덜 놀란다.

그래서 그는 리더십의 본질을 기대 관리라고 본다. 불편하다고 미루고 미루다 보면 기대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나중에 기대가 어긋났을 때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앞단의 불편함을 견디고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빨리 말하는 것은 인간의 성향과 반대로 가는 일이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편해진다는 것을 야후 시절에 느꼈다고 했다.

유데미의 고속 성장이 가르쳐 준 '의사소통 비용'

두 번째 장면은 유데미다. 한기용은 유데미가 20~30명 규모일 때 컨설팅으로 합류했고, 떠날 때는 500~600명이었다. 그사이 들어왔다 나간 사람까지 합치면 800~1,000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고속 성장이 늘 우상향만 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확 성장하면 확 내려가기도 한다. 올라갈 때는 잔칫집이니 다들 친절하다. 그러다 성장이 멈추고 대부분 뒷걸음질 치면, 숨어 있던 부정적인 의견이 모두 앞으로 나온다. 그때부터 의사소통 비용이 올라가고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작은 회사가 고속 성장할 때 겪는 성장통으로 이해했다. 또 스타트업에서는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팀이 점점 더 좋은 팀으로 바뀌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인원 변동에 매몰되면 리더 역할을 하기 어렵다.

이 시기에 그는 의사소통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팀을 만드는 법을 많이 고민했고, 사람을 보는 기준이 바뀌었다. 그전에는 기술적 전문성이 뛰어나면 성격이나 태도가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데미에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인성과 태도가 갖춰져야 함께 일할 때 시너지가 난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방향이 다르면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서 특히 시니어일수록 면접 단계와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비전이 맞는지, 쉽게 말해 공동의 목표가 분명한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

큰 기대를 가지고 뽑은 사람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험도 했다. 그는 그 사람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비전을 명확히 말하지 않고 알아서 잘할 거라 착각한 자신의 잘못도 있었다. 반대로 큰 회사만 다니다가 작은 회사를 약간 깔보며 들어와,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컨설턴트처럼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정리한 성장통의 핵심은 사람이 늘면서 의사소통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정말 큰 문제이고, 큰 조직에서도 문제이지만 원래 그렇게 일해 왔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AI 시대에는 이것이 커다란 문제가 된다고 봤다.

대화 후반에 그는 의사소통 비용을 더 명확히 정의했다. 회사가 방향을 바꿀 때 구성원들에게 이를 설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다. 스타트업은 오늘 왼쪽, 내일 오른쪽으로 방향이 자주 바뀌는데, 매번 모든 구성원을 설득하느라 엄청난 시간을 쓰면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팔로워십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disagree and commit", 즉 이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헌신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야 속도가 난다. 세상의 변화가 빠른 지금은 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20대의 자신에게 해 줄 조언: 오래 할 방법, 그리고 서포터

20대로 돌아가 자신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무엇이냐는 흐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하고 싶은 게 있으면 오래 할 방법을 찾고 습관으로 만들라. 예전에는 강한 동기 부여와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모든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 주변에 서포터가 있느냐다. 이 길을 가겠다고 할 때 괜찮다고 말해 주거나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편하다. 그는 만나고 나서 힘이 빠진다면 그 사람은 서포터가 아니라고 했다. 특히 표준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서포터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 자신도 주변 사람의 서포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장기적으로 보기

에디터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주변 사람들은 빨리 성장하고, 조직은 1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기용은 두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첫째, 그 조직에서 잘하고 싶다면 그 조직이 원하는 인재상이 되어야 한다. 그 인재상이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커리어는 개인기로만 성장하지 않으며, 어느 시점이 지나면 다른 사람과 함께 갈 줄 알아야 한다. 혼자 일하던 모드에서 그룹으로 일하며 영향력을 갖는 모드로 마인드셋이 바뀌어야 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무조건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점점 힘들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둘째, 길게 봐야 하며 시간은 많다. 그는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30대에는 마흔이 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이 굉장히 한국적인 문화라고 봤다. 그가 든 예는 이렇다. 문과 출신이 서른 무렵 개발자로 전향하면, 한국에서는 대부분 자기 커리어가 망했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커리어 초반과 대학 생활까지 통째로 의미 없는 매몰 비용으로 여긴다. 그는 유데미에서 실제로 비전공자를 뽑아 일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친구라면 완전히 반대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7~8년 재미있게 살았고, 이제 새 길을 찾았으니 이걸 하며 또 재미있게 살 것이며, 앞에 또 변화가 있으면 따라가겠다는 식이다. 과거에 매몰되기보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자신보다 5년 정도 앞서간 사람을 찾으라고 권했다. 그런 사람이 롤 모델이 된다. 미국에서 그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은 같은 동아시아권 출신 리더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을 보며 실리콘밸리에서 리더를 하려고 꼭 외향적이거나 영어를 엄청나게 잘할 필요는 없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롤 모델이 앞에 있느냐 없느냐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모르게 정해 주는 상자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야후에서 만난 네 명의 매니저

좋은 롤 모델이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야후에서 만난 네 명의 매니저를 꼽았다. 모두 아시아계였고 출신은 중국, 홍콩, 베트남, 이란이었다. 첫 번째 매니저에게서는 결정의 명확성을 배웠다. 명확하게 결정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두 번째는 기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고, 엔지니어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세 번째는 멘탈이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며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네 번째 매니저와는 짧게 일해 많이 배울 시간은 없었지만, 굉장히 여유 있고 R&D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이들과 일한 경험은 리더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는 데 큰 동기가 됐다. 그는 커리어가 발전할수록, 특히 리더 역할을 할수록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교사가 되는 리더에 대해 에디터가 그 부정적 에너지의 파급력이 크다고 하자, 그는 그것이 결국 의사소통 비용으로 올라간다고 답했다.

본능을 거스르는 연습은 어떻게 가능한가

불편한 대화를 미루고 안전한 선택을 하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거슬러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앞서 말한 "아파 봐야 한다"로 돌아갔다. 실수하고 실패해 봐야 동기가 생긴다. 순탄하게 가면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즉 아파도 회복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남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얼마 없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변에 서포터가 많으면 더 편해진다고 덧붙였다.

창업, 1년의 공백,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커리어 후반기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어떻게 쌓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에는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제대로 리더십을 체감한 것은 창업했을 때다. 회사를 다닐 때는 누가 말해도 비전과 미션이 왜 필요한지 몰랐다. 그런데 조직을 이끄는 입장이 되자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비전이고 미션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됐다. 다만 팀이 크지 않았고 창업은 2년 만에 접었다. 제대로 된 경험은 야후에서였다. 팀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매니저가 될 기회가 왔고, 마다하지 않았으며, 롤 모델이 보였다. 당시 6개월 하고 그만둘까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복리처럼 발전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평판의 중요성도 당시에는 몰랐다. 매일 바쁘게 사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것은 1년 쉬던 시기에 예전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오면서였다. 그는 좋은 평판이 주니어 때는 알기 어렵다고 했다. 그가 정의하는 좋은 평판은 경험이 쌓일수록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커리어 후반기의 다양한 활동, 즉 엔젤 투자, 기업 자문, 커리어 코칭, 강의는 모두 스스로 계획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10년 전 누군가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그런데 경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지인들이 이것저것 해 보라고 제안하기 시작했고, 그는 그것을 흘려듣지 않고 저질러 봤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저지를 때 기대 수준이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대 수준이 높으면 실망해서 오래 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늘 "좀 헤맬 거다, 약간 손해 볼 거다"라는 마인드셋으로 시작했고, 이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렇게 이어진 결과 엔젤 투자는 18개 정도의 회사에 했고, 자문은 합치면 40개 정도 했을 것이라고 한다. 강의도 학과장이 알던 지인이었고 오래전부터 와서 가르치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보수가 너무 적어 못 한다고 했지만, 2년 반쯤 전부터는 다른 관점에서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는 이 모든 변화를 이렇게 정리했다. 주변에 서포터가 있었고, 그들이 제안했을 때 저질러 봤으며, 기대 수준이 높지 않았고, 한 번 저지른 것은 오래 했다. 좋은 사람을 주변에 많이 두고 무조건 오래 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며, 리더십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매일 실천해야 할 것은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보고 환경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접고, 다음 환경에서 다시 집중한다. 그는 집중이 어떻게든 거기서 살아남으라는 뜻은 아니며,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 판단하라는 뜻이라고 분명히 했다. 에디터는 이를 현재에 점을 찍다 보면 그 점들이 이어져 자기만의 패턴이 되는 것,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장기적 관점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누군가는 나를 미워할 수 있다: 평판과 인기 경쟁의 차이

한기용은 초기에 했던 실수 중 하나로, 누군가는 자신을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꼽았다. 리더십을 일종의 인기 경쟁으로 착각했고, 그 착각이 결국 불편함을 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리더 역할을 한 뒤로는 이것이 덜 불편해졌다.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평판과 인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좋은 평판은 기본적으로 맡은 일의 결과를 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에게 생긴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과 사이가 좋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원칙이 있는지, 공동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달성하려 했는지다. 평판을 강조하면 자기 검열이 심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고 착각하는데, 거기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모두와 잘 지내려다 보면 오히려 결과가 안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실리콘밸리까지: 30년 커리어 요약

처음 보는 시청자를 위해 그의 이력도 짚었다.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삼성전자에서 5년간 엔지니어로 일했다. 당시에는 큰 꿈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1999년 말, 스탠퍼드로 유학 가 석사를 마친 대학 동기가 창업해 흔히 말하는 대박을 쳤다. 닷컴 버블에 잘 올라탄 그 친구는 버블이 꺼지기 전에 회사를 1조 원이 넘는 금액에 팔았고, 두 번째 회사를 창업하며 미국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때 결혼한 지 1년 남짓이었다. 삼성전자 입사 동기로 만난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자, 아내가 더 적극적으로 미국에 가서 살아 보자고 했다. 그는 돌이켜 보면 아내가 서포터였다며, 자신의 거의 모든 결정에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의 첫 11년은 야후 7년을 포함해 검색 엔진을 개발했다. 리더십의 중요성은 야후 이전 창업 때 사람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겪으며 깨달았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야후에서 팀을 만들고 실수도 많이 하며 배웠다. 2012년에는 11개월 정도 쉬며 커리어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커리어 후반기는 작은 회사 중심으로 다니겠다고 결심했다. 큰 회사는 두 곳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옛 동료들이 일하는 작은 회사에서 일해 보며,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 임팩트를 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때가 마흔두세 살 무렵이었다.

이후 다닌 회사는 모두 작은 회사였고,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서 들어간 곳은 한 군데도 없이 모두 지인 추천이었다. 그중 하나가 나중에 나스닥에 상장한 유데미이고, 다른 하나는 야후에 매각된 폴리보어였다. 2016년 무렵부터 엔젤 투자, 기업 자문, 커리어 코칭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이것을 풀타임으로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못할 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손해 볼 생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20년 정도는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AI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 없던 꿈이 하나 생겼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전국을 돌며 많은 사람을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안전한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공부로 승부 보려 하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처음 리더 자리에 설 때의 부담을 어떻게 내려놓느냐는 질문에는 멘토를 찾으라고 답했다. 혼자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20~30대로 돌아간다면 롤 모델과 멘토를 찾아 혼자 끙끙대지 않고 묻고 의견을 들으며 최소한 위안이라도 받았을 거라고 했다. 멘토 역할을 하며 느끼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잘 들어 주는 것이 당사자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라고 했다.

AI 시대: 만드는 전문성에서 판단력과 도메인으로

대화는 실리콘밸리의 대규모 해고와 AI가 가져오는 변화로 넘어갔다. 한기용이 분명하다고 본 변화는 무언가를 만드는 비용이 확 줄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드는 전문성은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고, 하나를 아주 깊게 파면 안전해질 거라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인가"다.

그는 한 팀이 기획부터 고객 지원까지 모두 해야 할 수 있고, 그 상당 부분을 한 개인이 맡아야 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려면 조직 구조가 없어야 한다. 에디터가 급진적인 이야기라고 하자 그는 동의하며, 이것은 큰 회사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방법이라고 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미 조직 구조가 전문성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변화는 작은 회사와 새로 생기는 회사에서만 가능하고, 그런 회사들에 AI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봤다.

AI 시대의 리더십에 대해 그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같다고 했다. 더 중요해지는 것은 판단력이다. AI의 결과물을 어떻게 판단할지, 여러 방향 중 어디로 움직일지. 지식이나 정보의 희소성은 높지 않지만, 판단은 여전히 사람이 맡아야 할 영역이며 무엇을 왜 하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판단에는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기술적 전문성은 덜 중요해지고 오히려 도메인 전문성이 중요해진다고 답했다.

여기서 부산 수산업 종사자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그는 이들이야말로 도메인 전문성이 있으며, 로봇이든 무엇이든 AI를 쓰면 다음 단계로 갈 것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인 관점이라며, AI 시대에는 분명한 덕질을 하는 사람이 도메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 AI를 쓰겠다는 의지와 처음에 헤매더라도 계속 쓰겠다는 자세만 있으면 훨씬 큰 결과를 낼 것 같다고 했다. 기업 관점에서는 오프라인일수록 좋고, 오프라인이나 규제로 인한 마찰을 이미 뚫어 영업망과 유통망을 가진 회사들이 AI를 쓰면 정말 잘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다음에 한국에 오면 제조업 종사자 중심으로 만나 보고, 이들과 IT 인력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겠다고 했다. 도메인을 잘 아는 사람과 기술을 잘 아는 사람, 둘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커리어에 대해서는, 대학에 가야 한다면 복수 전공을 권했다. 하나는 엔지니어링, 다른 하나는 인문계나 자연과학 중 정말 관심 있는 분야다. 그렇게 하면 더 유능한 사람이 되고 꿈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원하는 것을 계속 원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에디터의 말에는 "그건 진짜 힘든 것 같다"고 먼저 인정했다. 그의 조언은 두 가지다.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 것. 언제 멈춰야 할지는 정말 어렵지만 충분히 해 보지 않고 포기하면 후회할 확률이 확실히 높다. 그 기준은 시간일 수도 있고 스스로 판단하는 노력의 정도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혼자 하려 하지 말 것. 그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표현을 좋아한다며, 같이할 사람이 있으면 덜 외롭고 서로 힘이 된다고 했다.

기성 조직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

기업들을 만나며 듣는 이야기를 묻자, 그는 결국 채용, 평가, 보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AI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것인데, 규모가 있는 회사는 조직 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좋은 답을 갖기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20명만 넘어도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각자 전문성을 가지고 합류했기 때문에, 자기 영역 밖의 일을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면 80% 정도는 그런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추정이다. 나머지 20%, 즉 기획부터 고객까지 끌고 가겠다는 빌더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가 제안한 방법은 단계적 통합이다. 먼저 비슷한 일을 하는 팀을 묶는다. 예컨대 프로덕트 매니저와 디자이너를 한 팀으로 묶고, 개발팀은 백엔드와 프런트엔드를 나누지 않고 풀스택으로 동작하게 묶는다. 그게 잘되면 프로덕트 매니저, 디자이너, 개발을 모두 하나로 묶는다. 그러면서 프런트엔드 개발자에게는 디자인도 하게 하고, 프로덕트 매니저에게는 기획만 하지 말고 직접 만들게 하는 식으로 역할을 통합해 간다. 다만 모든 사람이 이를 편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며, 새로 생기는 회사에는 좋은 기회지만 레거시가 있는 환경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AX를 이야기하는 기성 기업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짚었다. 첫째, 회사를 이끄는 대표 본인이 AI를 쓰지 않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둘째, 조직 구조를 바꾸기 전에 작게라도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제품 자체를 바꾸는 것은 너무 큰 변화이니, 재무·법무·HR 같은 백오피스 업무를 자동화해 보는 작은 실험부터 하라는 것이다. 잘되면 인정하고, 공유하고, 확장한다. 그는 오늘 한 이야기가 모두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분명한 해자를 가진 회사가 아니라면 AI 시대에 큰 회사들은 힘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본 요즘 인재: 빌더가 되는 학생

한기용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석사 과정이고, 미국에서 취업하려고 온 비(非)미국인이 90%가 넘는다. 그래서 변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취업이 잘 안 되고, 비자 문제를 비롯해 어려움이 더 많다. 그래도 취업하는 학생들은 있고, 공통점은 안에서 공부만 하지 않고 밖으로 많이 나가며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인도 출신이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살다 보니 누가 빨래하고, 누가 요리하고, 누가 치울지를 두고 충돌이 많았고, 그는 이를 정리해 주는 앱을 만들었다. 그 뒤로는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무언가를 만들었다. AR·VR 글라스용 앱을 만들고, 학교 연구실에 자원해 로봇 관련 일도 했다. 한기용은 이 학생이 수능 공부하듯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배우면 바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학생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지만, 공부로만 승부하려는 학생에게는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며, 학벌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봤다.

모두가 빌더가 되어 AI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대가 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건 진짜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 변화가 생겼을 때 패닉하지 않고 받아들여 빨리 따라가는 것, 그리고 AI를 자기에게 맞게 매일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은 AI를 주로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그리고 강의 커리큘럼과 자료를 만드는 데 쓴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마지막 조언

앞으로의 계획으로 그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관련해서 구상 중인 책도 있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에 관한 책, 그리고 한국과 미국에서 살아 본 경험에서 나온 "한국 사람은 왜 질문을 안 할까" 같은 제목의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다만 당분간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패 앞에서 나침반이 필요한 사람, 리더십을 연습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불안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이렇다.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우리에게 아직 굉장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현재에 집중하라. 그리고 혼자 고민하지 말라. 친구든 선배든 롤 모델이든 멘토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다양한 고민을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변화가 오든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하는 꾸준함과 평정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그는 대화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