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고 보낸 콜드 메일에서 엔비디아 파트너까지: 오픈그래프랩스가 촉각 데이터에 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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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오픈그래프랩스는 피지컬 AI의 가장 큰 병목을 데이터로 보고, 이 문제를 풀겠다고 나선 스타트업이다. 공동 창업자는 세 명이다. 대표 김주호(28), CTO 한승호(28, 영어 이름 제리), CPO 손범수(24)다. 이들은 직접 만든 카메라와 촉각 글러브로 사람의 1인칭 시점 영상과 촉각 데이터를 함께 수집하고, 이를 가공해 미국 빅테크와 프론티어 랩에 판매한다. 이 영상에서 세 사람은 왜 촉각에 주목했는지, 법인 설립 몇 달 만에 엔비디아와 어떻게 연결됐는지, 중국과 멕시코, 한국을 오가며 무엇을 부딪혀 배웠는지 이야기한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미래가 아니라 사람이 일을 "인수인계"하는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생각도 밝힌다.

9 분 분량

현재 사업: 하드웨어부터 데이터 판매까지

창업자들의 소개에 따르면 오픈그래프랩스는 고품질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직접 만든다. 대표 고객으로는 엔비디아를 꼽았다. 엔비디아의 오픈소스 생태계인 '아이작 텔레옵(Isaac Teleop)'에서 아홉 개 제품 가운데 하나로 공식 파트너가 됐다고 한다. 창업자들은 유니트리, 매너스 같은 굵직한 회사들 옆에 자기 회사 이름이 올라간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제조 현장을 많이 보유한 대기업들과 긴밀하게 일하며 자사 파이프라인을 검증하고 있다. 매출은 올해 3분기부터 나기 시작했고, 이번 분기 예상 매출은 약 10억 원이라고 밝혔다.

문제의식: AI는 왜 상자가 저절로 열린다고 생각할까

출발점은 영상 생성 모델을 써 본 경험이었다. 창업자들은 오픈AI의 소라나 루마 AI의 엔진에 "상자를 여는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프롬프트를 넣어 봤다. 그러자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상자가 스스로 열리는 식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보고 AI 모델이 생각보다 물리적인 정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의 추론은 사람이 세상을 배우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시각, 청각, 촉각 같은 감각 신호로 세상을 보고 이해해 왔다. 그렇다면 같은 종류의 데이터를 AI에 넣으면 현실을 이해하는 AI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은 누구나 가진 휴대폰과 카메라로 모을 수 있다. 그래서 비어 있는 마지막 퍼즐을 촉각이라고 판단했다. 현존하는 어떤 하드웨어도 완벽한 해법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결국 "궁극의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세 창업자가 걸어온 서로 다른 길

세 사람의 이력은 전형적인 경로와 거리가 멀다. 한 공동 창업자는 원래 화학자가 되고 싶었다. 목표하던 학교에 떨어진 뒤 방황하다 고등학교를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이후 부모에게 새롭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검정고시를 빠르게 통과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또래보다 약 6개월 일찍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갈 무렵에는 "과학자를 돕는 금융가"가 되고 싶어 중국에서 금융을 공부했다.

손범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당시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의 반대가 컸지만, 좋지 않은 집 컴퓨터로 3D 모델링을 하고 발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작은 성공을 쌓아 설득해 나갔다. 중학교 때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서 읽은 "인류에 기여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어, 자신도 그런 것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삼성디스플레이가 함께하는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반도체 웨이퍼에 원자층을 증착하는 ALD 공정과 그 공정을 위한 클린룸 환경을 연구했고, 만 17세 때부터 특허 두 건과 논문 세 편 정도를 작업했다고 한다.

한승호는 고등학생 때 수학과 경제만 좋아해서 성적이 대학에 가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다 한국 입시의 현실을 깨닫고 서울대 진학을 결심해 농경제사회학부에 들어갔다. 마침 국내에 개발 붐이 일자 유튜브로 개발을 공부했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회사를 찾아 당근마켓에 입사했고, 약 3년간 엔지니어링에 몰두하며 크게 성장했다고 돌아본다.

팀이 만들어진 과정: 강연장과 해커하우스

김주호와 한승호의 인연은 카이스트 블록체인 학회에서 시작됐다. 한승호가 1일 강사로 강연을 왔는데, 김주호가 그를 보고 정말 똑똑해 보인다고 느꼈다. 강연이 끝난 뒤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이후 네다섯 명이 함께 해커톤에 많이 참가했고, 글로벌 해커톤에서 다섯 번 정도 1등을 했다. 그 사이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던 중 하드웨어를 맡을 팀원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무작정 샌프란시스코로 가 보기로 했다.

손범수에게는 오래된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다. 스타트업을 하며 토론토에도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도 몇 번 오갔지만 제대로 빌딩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너 차례 공동 창업을 시도하며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김주호는 지인을 통해 손범수를 만났고, 만들어 본 것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하드웨어 조각은 범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계속 팀 합류를 요청했다. 손범수는 알겠다며, 자신이 지내는 해커하우스에 들어와 2주 동안 함께 지내 보자고 제안했다. 김주호는 바로 다음 날 그 해커하우스로 가서 2주를 함께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기억한다.

논문대로 되지 않는 데이터 수집, 그리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세 사람은 공동 창업을 결정하고 12월에 법인을 설립했다. 1월 한 달 동안은 논문이란 논문은 다 읽으며 최소 10가지가 넘는 데이터 수집 방식을 시도했다. 그런데 논문에서는 된다고 한 방법이 실제로 해 보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논문 저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자고 결정하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지인을 통해 스탠퍼드 로보틱스 센터(SRC)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Tactile is the future"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얻은 교훈을 공유했다. 창업자들에 따르면 많은 교수와 연구자가 발표를 보러 왔고, 이들과 연결되면서 유의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어서 이 데이터를 쓸 만한 연구자와 엔지니어를 찾기 시작했다. 링크드인에서 관심 있을 법한 사람들, 그리고 기존에 읽었던 논문의 저자들에게 이메일과 메시지로 콜드 컨택을 보냈다. 유독 엔비디아 쪽 답장률이 높았다고 한다. 창업자들은 당시 엔비디아 내부에서 이 모달리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엔비디아와의 첫 만남과 '타임 어택'

엔비디아 사람들 몇 명과 바로 연락이 닿아 2월 초에 첫 미팅이 잡혔다. 그 자리에는 젠슨 황의 아들인 스펜서 황도 있었다. 한국에서 온 팀이라니 더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고 한다. 한 창업자는 논문 읽기를 매우 좋아해서, 고민이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대부분 연구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야기를 나누던 엔비디아 연구자가 알고 보니 데이터를 실제로 구매하고 협업 파트너를 고르는 의사결정자였다. 첫 미팅에서 스펜서 황이 이런 팀이 있으니 만나 보라고 하자, 그 연구자는 이미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 뒤로 일이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미팅이었던 만큼 팀은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사흘 연속 데모를 준비했다. 한 창업자는 원래 이 일을 한 달 정도의 장기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타임 어택'이었다고 회상한다. 며칠 뒤에는 엔비디아 리서치 팀 전체가 촉각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있는데 보여 줄 것이 있느냐는 연락이 다시 왔다. 팀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필요한 보드조차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중국 선전으로 건너가 전자상가에서 같은 케이블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며 부품을 구했다. 미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작업을 이어 갔고, 비행기 탑승 한 시간 반 전까지 공항에서 작업하느라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고 한다. 이때 한 창업자는 "미룰 거면 내년에 하자"며 밀어붙였다. 그 판단의 근거는 이랬다. 완벽한 제품이 아니어도 되니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의 가장 초기 버전을 실물로 보여 줘야 하고, 그 정도는 일주일 안에 분명히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한 번에 인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창업자들은 이렇게 논문을 읽고 콜드 컨택을 시도한 뒤 엔비디아 파트너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당시 생활도 짧게 보여 줬다. 2주 출장에 챙긴 옷은 몇 벌이 전부고 나머지 짐은 모두 장비였다. 한 창업자는 서울 석촌동 고시원에 살고 있는데, 그곳이 사실상 회사의 공식 창고라 장비가 전부 거기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프로토타입에서 양산으로: 중국의 7일 사이클

2월부터 4월까지는 시장 검증용 프로토타입을 계속 만들었다. 세 번째 프로토타입이 빅테크 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시제품으로 만들면 많이 사고 싶다는 수요를 처음 확인했다. 팀은 이를 계기로 곧바로 중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손범수와 김주호는 약 두 달 동안 중국에 머물며 제조 공정을 뚫었다. PCB는 일주일 주기로 만들어 봤고, 실리콘 공장에도 직접 찾아가 미팅했다. 영상에는 공장이 깨끗해서 계약할 것 같다는 후기, 혼자 중국 공장에 와서 공장 관계자와 식사하러 간다는 모습도 담겼다. 창업자들은 발주한 뒤 4일 만에 결과물을 받고, 이틀 동안 수정해 다시 맡기는 방식으로 7일 반복 사이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설득도 중요한 과제였다. 중국은 하드웨어 주문이 워낙 많이 몰리는 곳이라 오픈그래프랩스의 물량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도 공장이 이들의 제품을 빨리 만들고 싶게 해야 했다. 한 창업자는 "우리는 잘될 수밖에 없는 기업이고, 오늘 나를 도와주는 건 초기 TSMC를 도와주는 것과 같다"는 수준까지 설득하면 일이 정말 빨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도 진정성을 많이 보여 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버전 1의 양산 준비가 끝났다. 촬영 시점 기준으로 중국에서 PCB, 센서, 장갑 원단 공장이 돌아가고 있었고, 두 달 안에 약 500대를 양산해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객이 먼저, 그다음 인프라: 멕시코에서 배운 싱크 문제

오픈그래프랩스는 데이터 수집을 시작하기 전에 고객부터 만났다. 그런데 그 고객이 큰 대기업이었고, 팀이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을 요청했다. 창업자들은 이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판단해 인프라를 매우 빠르게 확장했고, 멕시코와 한국에서 수집 운영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첫 데이터 수집은 멕시코에서 이뤄졌다. 처음에는 수집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장에서는 문제가 많이 생겼다. 카메라를 머리 위와 손목에 착용하는데, 이 세 대의 카메라가 동기화돼야 하고 동시에 시작해 동시에 끝나야 한다. 그런데 장치마다 내부 시계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수집하면 서로 맞지 않는 데이터가 된다. 창업자들은 지금 데이터를 모으는 회사들이 이런 동기화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자신들은 싱크 품질을 점검해 고품질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한국 제조 현장: 은퇴하는 숙련공의 기술을 데이터로

오픈그래프랩스는 사람의 행동 데이터를 모아 가공한 뒤, 휴머노이드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전체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이를 한국에 소개하자 관심이 매우 컸고, 그 뒤로 한국 시장에 더 집중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수 지역의 인력 감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수 산단에는 신규 채용 인력이 거의 없고, 현재 일하는 숙련공들이 은퇴하면 그들의 노하우와 감각적인 기술을 전수할 곳이 없다. 창업자들은 이를 핵심 문제로 판단했다. 자신들이 모으는 데이터가 여기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보고 PoC를 진행하고 있다. 공장 작업자들이 카메라와 자체 제작한 촉각 글러브를 착용하고 작업하며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 데이터를 잘 아카이빙해 휴머노이드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고, 성과를 기업에 엔드투엔드로 보여 주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로봇 동아리 학생 20명가량을 모집해 데이터를 모으고 있으며, 물류 창고와 카페 등 다양한 수집 환경도 확보하고 있다. 창업자들은 함께하고 싶은 공장주나 피지컬 AI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경쟁력: 하드웨어·소프트웨어·오퍼레이션의 수직 통합

창업자들은 이 분야에 세 개의 기둥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드웨어를 잘 만들어야 하고, 그 하드웨어로 수집한 데이터를 가공할 소프트웨어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하고, 데이터를 잘 모을 수 있는 운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기존 플레이어들이 이 중 하나만 한다고 보고, 자신들은 세 가지를 모두 수직적으로 통합해 질 좋은 데이터를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의 근거로는 유럽 사례를 들었다. 창업자들은 현재 유럽에서 데이터 수집을 가장 크게 하는 팀 중 하나인 '마이크로 AI'(발음상 표기)에 인프라의 핵심 한 축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 규모 팀이 쓸 만큼 기술이 성숙하고 짜임새 있다고 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에는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전 창업의 실패에서 바뀐 것

창업자들은 이전 창업의 실패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한 창업자는 학생 때 학교 친구들과 예쁜 스튜디오를 모아 보여 주는 플랫폼을 6개월 정도 개발했지만 실제 사용자를 만나지 못했다. 돌아보면 그냥 자신이 만들고 싶은 플랫폼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군 복무 중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바꾼 뒤에는 이상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며 '핸지'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3D에도 '아이폰 모먼트'가 올 테니 3D를 저장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콘셉트였다. 시각적 완성도는 높았지만 사용자의 목소리를 많이 듣지 못했고, 결국 매출을 내지 못해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럼에도 파운더로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정성 들여 제품을 다듬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다른 창업자는 약 2년간 첫 창업을 했다. 당시 유행하던 블록체인 기술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을 돕고 싶어 엔젤 투자자를 한데 모아 주는 금융 플랫폼을 만들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자신이 풀고 싶은 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었다고 한다.

이번 창업에서 달라진 점으로 창업자들은 고객과 보내는 시간을 꼽았다. 이번에는 타깃 고객인 연구자들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연구자가 만족하는 데이터를 가져다주면 비즈니스가 잘되는 구조라고 본다. 고객의 수요를 먼저 확인한 뒤 문제를 풀다 보니, 정말 의미 있는 문제를 풀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고 했다.

로봇을 위한 '학교'와 대체가 아닌 인수인계

한 창업자는 오픈그래프를 '학교'에 비유했다. 먼 미래에 어떤 로봇이든 오픈그래프에 와서 오픈그래프의 월드 모델로 세상을 공부하면 다른 로봇보다 일을 더 잘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결국 로봇과 함께 살게 될 텐데, 자신들이 가르친 로봇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업이 잘되면 '오픈그래프 해커하우스'를 열 계획도 있다. 한국은 부품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품을 잔뜩 쌓아 두고 엔지니어들이 편하게 와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로봇의 미래에 대해 창업자들은 로봇이 결국 우리 삶에 더 가까이 들어오겠지만, 그 모습은 아직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고 본다. 터미네이터처럼 사람을 감시하는 무서운 집단이 아니라, 집 대문을 열어 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많은 미래를 꿈꾼다는 것이다. "결국 나를 대체하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가 아니라 오늘의 일을 인수인계하고 내일 할 일을 찾는 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옮겨 가고 그 충격을 줄이려면, 어느 날 스위치가 켜지듯 일하는 방식이 바뀐다고 통보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편이 맞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숙련공이 직접 글러브를 끼고 데이터를 남기는 여수 PoC도 이런 생각과 맞닿아 있다.

"망해 봤자 얼마나 망하겠냐": 정답 없는 길에 대한 태도

마지막으로 창업자들은 각자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했다. 한 창업자는 좋은 학교와 좋은 회사, 결혼처럼 한국에서 전형적으로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들을 다 해 왔다고 말했다. 그걸 다 끝내고 나서야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해도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손범수를 보면서, 굳이 그걸 다 깨고 나서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고 한다. 정상적인 루트와 비정상적인 루트 같은 건 없고, 다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창업자는 영상 속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맨몸으로 미국에 왔지만 잘해 보겠다는 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기기도 했다.

중국 유학을 경험한 창업자는 세상이 너무 크고 사람이 너무 다양해서 '정상'의 기준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을 기점으로 정상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창업자는 죽기 전에 무엇을 후회할지 생각해 봤다고 한다. 공부를 더 해서 좋은 회사에 갈 걸 하고 후회할지, 한번 시도해 볼 걸 하고 후회할지 따져 보니 후자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인생 긴데 망해 봤자 얼마나 망하겠냐"는 생각으로, 순간순간 실패하더라도 행복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문제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낼 때의 경험이 엄청난 도파민이라는 말도 나왔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환상도 이야기했다. 한 창업자는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는 천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와서 이야기해 보니 한국인만큼 똑똑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 차이는 역량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라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과 그들이 하는 일이 생각보다 다르지 않고, 다른 것은 언어뿐이라고 봤다. 진짜 이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들끼리는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미션이 같아서 통하는 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가짐만 있다면 한국인이 못 할 일은 없으니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 이유로 든 것은 "아무도 답을 모른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