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유통을 데이터로 다시 짜다: 루트릭스 안정록 대표가 말하는 '나무의 시대'
EO Korea데이터 기반 나무 유통 스타트업 루트릭스의 안정록 대표는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하버드 건축대학원에서 조경 설계 석사를 공부했다. 그가 세운 루트릭스는 전국의 나무 농장을 직접 찾아가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디지털로 옮겨 표준화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로 시공 업체, 시행사, 설계 사무소, 개인 고객에게 필요한 나무를 연결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안 대표는 조경 산업에 왜 '로우 데이터'부터 없는지, 처음 세운 기술 중심 가설이 고객을 만나며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두가 AI를 이야기하던 해에 나무 회사로 투자를 받기까지 무엇을 겪었는지 이야기한다.
EO 채널의 경진대회를 마감일 삼아 시작한 창업
안 대표는 루트릭스의 출발이 EO 채널과 직접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공동 창업진이 디자인·설계 분야 출신이라 마감일이 없으면 사업계획서가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대표가 유튜브에서 열리는 대회를 마감일로 삼아 사업계획서를 써 보자고 제안했고, 그 대회가 2021년 EO 채널의 '유니콘 하우스'였다.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로 참가했지만, 안 대표는 오히려 그 덕분에 창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타트업을 애초에 시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채널을 통해 첫 투자가 사실상 확정됐고, 그 뒤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설명한다. 최근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뒤 다시 연락이 닿아 이번 인터뷰가 성사됐다.
회사 이름에는 사업의 방향이 담겨 있다. '루트(root)'는 뿌리, 곧 조경 산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다. '릭스'는 매트릭스에서 따왔다. 데이터를 잘 활용하고 디지털로 전환해 나무 산업의 근본 문제를 풀자는 의미다.
누가 어디서 어떤 나무를 키우는지 아무도 모른다
안 대표가 보는 한국 나무·조경 산업의 핵심 문제는 기초 데이터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누가, 어디서, 어떤 나무를, 어떻게 키우고 있으며 가격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한국에 조경을 전담하는 정부 부처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어떤 나무가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생산·공급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으니 가격 변동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공백을 메워 온 사람들은 기존 중개업자다. 안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1년에 20만km씩 차를 몰고, 하루에 전화를 400통씩 받으며 나무를 연결해 왔다. 그는 이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배달의민족은 전국 음식점을 통합해 연결하고, 쿠팡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 그런데 나무는 왜 그렇게 안 될까. 안 대표는 결국 이것이 나무 데이터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무 데이터를 직접 수집·가공해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DMZ 접경 마을에서 자라 생태탐사대를 만들기까지
안 대표는 파주에서도 접경 지역 쪽에서 태어나 자랐다. 집은 산 중턱에 있었고, 작은 마당에서 할머니가 닭과 부추, 파를 키웠다. 집 앞에는 포도밭이, 옆에는 목장이 있었다. 뛰어노는 게 일이었고, 자연과 아주 가까운 삶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전환점은 용인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찾아왔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은 자기만의 과외 활동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엇을 꾸준히 할지 고민하던 그는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다가, 파주에서 살아온 경험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나 DMZ 제3땅굴을 소풍으로 가던 곳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몇 명과 'DMZ 생태탐사대'를 만들었다. 매달 연구 목적으로 민간인 통제구역에 들어가 여름에는 식생 조사를, 겨울에는 월동 조류 조사를 했다. 식생과 곤충을 조사하는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3년 내내 이어진 탐사 활동으로 작은 논문을 썼고, 환경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청소년 세계기후변화포럼에 한국 청소년 대표로 참가했다.
"자연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도 보호할 가치가 있다"
포럼에는 약 50개국에서 150명쯤 되는 학생이 모였다. 유니세프 측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자연·환경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안 대표는 자신이 생각한 답을 끝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자, 마지막에 손을 들었다. 자연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자랐고, 그것 자체가 행복이었기 때문에 이 활동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순간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꼽는다.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더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경생태공학부에 진학했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서, 연구만으로는 대중에게 자기 생각을 알리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찾은 답이 조경학이었다. 이후 약 3~4년 동안 공모전에 나가고 영어를 공부하며 미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고, 하버드에 합격했다.
센트럴파크와 옴스테드, 그리고 하버드 조경학
안 대표는 조경학의 기원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조경학은 1850년대 맨해튼 센트럴파크 조성과 함께 생긴 학문이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도시가 생기고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자,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웰빙이 크게 나빠졌다. 그때 옴스테드(Olmsted)는 도시화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도심 속에 자연이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 대표는 '썰'에 가깝다고 전제하면서, 당시 "지금 이만한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이만한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소개한다. 그만큼 도심 속 생활의 질이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도심에 처음으로 자연 공간을 만들자고 한 옴스테드가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면서 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봤고, 그래서 하버드에 처음으로 조경학 석사(Master of Landscape Architecture) 과정이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드는 조경 학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학교 중 하나라고 그는 말한다.
하버드를 나와도 설계로는 빚을 갚기 어렵다는 현실
하버드에 들어가서 졸업만 하면 인생이 다 풀릴 줄 알았다고 안 대표는 털어놓는다. 그러나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은 설계 회사에 들어가도 연봉이 1억, 2억, 3억씩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는 개인 사정도 있었다. 아버지는 스무 살이 되면 집을 나가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안 대표는 그게 진담인 줄 몰랐다. 그러나 정말로 스무 살이 된 해의 1월 1일에 집을 나와야 했다. 그때부터 학비는 모두 학자금 대출로, 생활비는 과외로 충당했다. 그는 "뒤에 쌓여 있는" 대출이 많다고 말하며, 졸업하면 당연히 1~2억은 벌 줄 알았지만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1학년 무렵에 알게 됐다고 말한다.
다만 그가 좋아한 것은 조경이라는 학문이었지 꼭 설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자연 공간을 대중에게 알리고 보여주는 이 산업 안에서 설계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설계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진로 고민을 이어갔다. 3년 과정 중 2년을 마친 뒤 군대에 갔고, 군 복무 중에도 그 고민은 계속됐다.
군대에서 떠올린 방향: 데이터와 코딩으로 하는 조경 설계
군 복무 중 그는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직군 관련 공부를 많이 했다. 당시 조경 산업에는 코딩으로 설계하는 식의 개발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돌아가 3학년 때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제너레이티브 디자인을 더 깊이 공부하고, 그 분야로 스타트업을 하거나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점의 구상은 아직 나무 유통이 아니라 설계 기술 쪽에 가까웠다.
결혼식 가는 차 안에서 들은 소나무 이야기
사업 아이디어의 실마리는 우연한 대화에서 나왔다. 포스코에서 조경 현장을 담당하던 고려대 후배와 먼 곳에서 열리는 지인 결혼식에 함께 차를 타고 가게 됐다. 창업 전이었고, 안 대표는 현장에서 무엇이 가장 불편한지 가볍게 물었다. 후배는 소나무를 심을 때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하루 종일 돌려 가며 가장 예쁜 면을 찾아 심는데, 그게 며칠씩 걸려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공부하던 안 대표는 나무를 미리 스캔해 형태를 파악하고, 설계 단계부터 그 나무에 맞춰 설계한 뒤 그대로 시공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후배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렇게 해주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때는 대화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안 대표는 그 뒤로 나무에 대한 정보가 정말 그렇게 없는지 생각하게 됐다. 돌이켜 보니 자신도 3D 모델을 만들 때 늘 쓰던 나무 모델만 썼다. 실제 존재하는 나무가 아니라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모델과 이미지로 설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시공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그런 설계가 그대로 구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이 산업의 문제가 나무 데이터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데이터를 싹 다 모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라이다 스캐닝에서 '넓고 적당한 정보'로의 전환
초기 루트릭스의 가설은 기술 중심이었다. 나무를 라이다로 스캔하고 그 데이터와 함께 나무를 팔면 큰 유통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농장을 통째로 스캔해 구매자에게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라이다 기반 기술 개발까지 마쳤다.
그러나 여러 고객을 만나 보니 고객이 원한 것은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엄청나게 상세한 정보가 아니었다. 가격, 규격, 수량을 명확히 알고 사진 정도만 받으면 구매하겠다는 것이었다. 한 농장에 대한 깊은 데이터보다, 적당한 수준의 데이터를 가진 농장을 많이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안 대표는 그 이유를 구매자의 작업 방식에서 찾는다. 공원 하나나 아파트 단지 하나를 조경하려면 나무만 50~100가지가 넘는 품목을 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나무는 소나무 전문 중개업자에게, 느티나무는 느티나무 전문에게, 잔디는 잔디 전문에게 일일이 물어 가며 구해 왔다. 구매자들은 이 여러 사람을 거치지 않고 누군가 한 번에 해결해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많은 농장의 여러 품목을 어느 정도 정확한 정보로 갖춘 회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루트릭스도 초반에는 깊은 데이터를 모으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더 많은 농장을 알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나무 하나만 맡겨 달라": 첫 거래를 만들기까지
농장 데이터를 모아도 사 줄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었다. 팀이 농장을 돌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안, 안 대표는 반대편에서 구매자들을 찾아다녔다. 나무 하나만이라도 맡겨 주면 전국을 뒤져서라도 찾아드리겠다고 부탁했다.
첫 성과는 인천 검단의 한 현장이었다. '시그니처 가든'에 들어갈 포인트 목, 즉 가장 중요한 나무를 찾는 일이었다. 루트릭스는 직경 70cm 정도 되는 큰 팽나무를 전국을 뒤져 찾아냈고, 고객이 원하던 수형과 크기에 딱 맞았다고 안 대표는 말한다. 이 거래로 실제 유통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어 대형 카페 앞에 왕벚나무 12주를 심으려는 고객의 요청도 처리했다.
이렇게 구매자가 자연스럽게 늘자 요구하는 품목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러면 다시 생산자를 찾아 전국을 돌며 데이터를 쌓았다. 안 대표는 루트릭스가 마켓플레이스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구매자가 모두 고객이라고 설명한다. 생산 데이터가 쌓이면 구매 쪽 영업으로 넘어가고, 구매자의 요구가 다양해지면 다시 생산 쪽 데이터 수집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통해 지금까지 매출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3~7년, 긴 사이클을 버틴 시간
조경·나무 산업은 사이클이 매우 길다. 설계 사무소를 찾아가도 그 설계가 실제 시공으로 이어지기까지 3년, 5년, 길게는 7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당장 영업을 나가도 빨라야 "다음 하반기에 있으면 부탁해 보겠다", "이 견적은 내년 건이니 실제 시공에 들어가면 연락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창업 1~2년 차에는 인사를 다니며 견적이라도 받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시기를 보냈다. 동시에 농장 데이터 수집도 계속했다. 남쪽 지방에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나무를 보고 올 정도로 산, 바다, 섬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다녔다고 그는 말한다.
2년 정도가 지나자 반응이 달라졌다. "너희 어느 정도 하고 있네, 한번 구매해 볼게"라며 조금씩 거래로 이어졌다. 안 대표는 3년 차쯤 그 사이클이 돌아왔다고 본다. 그때쯤엔 루트릭스도 유통을 어느 정도 경험해, 맡겨만 주면 문제없이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2024년의 폭발적 성장
그 결과가 2024년에 나타났다. 안 대표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에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 2023년 대비 거의 20배 성장했다. 이 성과로 대표 자신과 팀원, 투자자 모두 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유통 프로세스는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제 스케일업을 위해 다음 투자를 빨리 받자는 판단이 섰다.
AI의 해에 '플랫폼'으로 투자받기
2025년 상반기, 루트릭스는 IR을 준비해 투자 라운드를 시작했다. 하지만 안 대표의 표현대로 2025년은 AI와 로보틱스의 시대였다. 루트릭스는 플랫폼으로 받아들여졌고, 투자 시장에서 플랫폼이 외면받는 흐름 속에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를 SaaS로 포장해야 할지, 플랫폼으로 포장해야 할지 여러 고민을 했지만 어느 쪽으로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산업에 대한 미션과 비전이 뚜렷했기에 라운드를 오래 이어갔다. 4~5월쯤 IR을 준비해 시작했지만 12월까지도 투자 확약이 나오지 않았다. 안 대표는 지난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한다.
돌파구는 IBK 창공 데모데이였다. 최종 발표까지 올라가 500명 넘는 청중과 대형 스크린 앞에서 IR을 하게 됐다. 그날 아침, 평소대로 발표하려던 그는 오프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물었다. AI와 로보틱스가 지금 매우 뜨겁고 많은 투자가 몰리는데, 그다음 시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AI가 사람의 생각을 대신하고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면 그다음엔 어떤 시대가 오겠느냐. 그리고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인간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 자연의 가장 기본 단위가 나무이며, 그 나무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가 루트릭스라고.
안 대표에 따르면 이 발표 뒤 많은 연락이 왔고, 막바지에는 오버부킹이 됐다. 시리즈 A 라운드는 매우 어려웠지만 결국 잘 마무리됐다.
강남 빌딩을 허물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은 이유
루트릭스가 성공해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강남에 빌딩을 하나 사서 허물고 나무 한 그루만 심고 싶다고 답한다. 나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바로 그 사람들이 궁금해하기를 바란다. 이 회사는 왜 금싸라기 땅의 큰 빌딩을 허물고 나무 한 그루만 심었을까,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대단하고 소중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루트릭스의 미션은 "아름다운 자연의 감동이 더 많은 대중의 일상이 되게 하자"이다. 안 대표는 이 미션이 청소년 기후변화포럼에서 느낀 철학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좋은 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본 사람들이 나중에 결정권자가 되었을 때 더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공간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
그는 이 미션을 데이터 문제와 다시 연결한다. 지금은 하버드에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설계를 해도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99% 이상이 한두 개라도 설계 변경을 거친다. 이유는 한국에 실제로 어떤 나무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가 좋은지, 무엇이 많고 무엇이 적은지 정확히 모르니 늘 쓰던 나무만 쓰게 되고, 그 결과 만들어지는 자연 공간의 질도 크게 좋아질 수 없다. 안 대표는 루트릭스가 데이터를 모아 좋은 정보를 제공하면 더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져 자연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한다.
"죽지 않으면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스타트업은 정말 어렵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수도 있고, 계좌 잔고가 0원이 되어 떨어 볼 수도 있으며,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가 좋아하는 말은 "일단 죽지 않으면 성장한다"이다. 창업 과정에서 작은 실패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실패로 죽지는 않고, 오히려 경험이 되어 다음 시도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가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마음으로 창업해 보라고 권한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니,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 훨씬 성장한 모습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맺는다.
AI와 로보틱스 다음 시대가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시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 루트릭스에서 돈을 많이 벌면 강남에 빌딩을 하나 사서 다 무너뜨린 다음에 나무 한 그루만 심고.
데이터 기반 나무 유통 스타트업 루트릭스 대표 안정록입니다. 저는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건축대학원에서 조경설계 석사를 전공했습니다. 루트릭스는 전국에 있는 나무 농장들을 다 직접 방문해서 나무 농장들의 데이터를 직접 수집을 하고 디지털 전환하고 표준화를 시켜서 나무가 필요한 시공 업체, 시행사, 설계, 개인분들한테 나무를 연결시켜 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항상 EO 채널에 너무 감사한 게 제가 사업을 시작하게,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기도 하고 EO 채널 통해서 저희 첫 투자도 사실상 확정이 되고 저희는 법인 설립을 했었어요. 저희가 디자인 쪽, 설계 쪽 출신이다 보니까 이게 데드라인이 없으면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부대표님이 유튜브에 이런 대회가 있는데 이런 대회를 데드라인으로 사업계획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해서 이제 그래 좋다, 그 데드라인으로 한번 써 보자 했던 게 이제 2021년도에 있었던 EO 채널의 유니콘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크게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시작을 했었는데 오히려 그게 저는 너무 좋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안 그랬으면 사실 스타트업 애초에 시작도 못 했을 것 같고요. 해서 보면서 정말 생각했었어요. 언젠간 다시 EO 채널에 좋은 모습으로 나가서 한번 다시 뵙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저희가 이제 최근에 시리즈 A 세 번째 투자를 받고 너무 감사하게도 또 연락을 주시고 연결이 돼 가지고 만나 뵙게 돼서 너무 감사하죠. 예.
루트릭스라는 이름의 유래는 루트, 그러니까 뿌리. 조경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라고 생각을 했고요. 릭스는 매트릭스라 그래서 뭔가 우리가 데이터를 최대한 잘 활용하고 디지털 전환시켜서 우리 나무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데이터로서 해결하자라고 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일단 우리나라 나무 산업 그리고 조경 산업 안에 근본적인 로우 데이터가 아예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어디에 누가 어떤 나무를 어떻게 키우고 있고 그 가격이 얼마인지에 대해서 사실 아무도 모르고 있는 상태거든요. 심지어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조경을 담당하는 부처도 정확히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에 어떤 나무가 많이 필요하고 어떤 나무가 많이 공급되고 있는지,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기 때문에 가격도 변동이 너무 심하고 그리고 기존의 중개업자분들은 1년에 20만km씩 운전하고 다니고 하루에 전화 400통씩 받아가면서 나무를 연결해 주시던 분들이에요. 근데 이게 너무 비효율적인 거죠. 그러니까 배달의민족도 전국에 있는 음식점들을 다 통합해서 연결을 해 주고 있고 쿠팡은 어디서 오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모든 제품들을 다 연결해서 내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데 왜 나무로는 이걸 못 할까? 그런 문제가 결국에는 나무 데이터의 문제다. 그래서 그 나무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가공해서 나무가 필요한 분들에게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가 되자라는 마음을 먹었죠.
요즘에 사실 파주라고 하면 되게 시골이라고 생각 안 하시는데 저는 진짜 파주에서도 더 가야 되는, 완전 접경 지역 쪽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쭉 자랐습니다. 저희 집도 거의 산 중턱 위에 있었고요. 저희 집 조그마한 마당에 할머니가 막 닭도 키우시고 부추, 파도 키우셨고요. 그래서 저는 거기서 그냥 뛰어노는 게 일이었어요. 바로 집 앞에 포도밭도 있었고 옆에 목장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저는 자연스럽게 그냥 자연과 너무 가까웠던 삶을 살아왔었어요.
근데 제가 딱 고등학교를 용인고를 이제 진학을 했는데 선배님들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들어가자마자 어떤 조언을 해 줬냐면 과외 활동도 열심히 해야 된다. 너만의 과외 활동을 잘 찾아서 꾸준히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라고 해 주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걸 진짜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나는 그럼 뭘 꾸준히 하고 잘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을 보고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니 제가 오히려 그 파주라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살아왔던 게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더라고요.
저는 민간인 통제구역, 그 DMZ의 제3땅굴을 그냥 소풍으로 갔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DMZ 생태탐사대라는 걸 만들어요. 친구 몇 명을 모아 가지고 매달 이제 민간인 통제구역 들어가서 연구 목적으로 여름에는 식생 조사를 하고 겨울에는 월동하는 조류 조사를 했었어요. 거기에서 식생 조사하고 곤충 조사하는 거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그 탐사 활동을 하면서 그걸로 이제 논문을 작게 쓰고 그걸로 환경 올림피아드를 나가서 상도 받고 또 그게 계기가 돼서 제가 이제 고등학교 3학년 말 때 청소년 세계기후변화포럼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래서 그거를 저는 이제 우리 한국 청소년 대표로 갔다 왔었고요.
근데 그때 가서 제가 좀 느꼈던 게 한 50개국의 학생들이 한 150명이 모였었는데 그때 이제 유니세프에서 저희한테 던졌던 질문이 어떻게 이렇게 자연 환경 활동을 하게 되었냐라는 질문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제가 생각한 답을 아무도 말 안 하길래 마지막에 제가 손들고 얘기했던 게 저는 그냥 자연이라는 게 아름답다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저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자라왔고 그냥 그거 자체가 너무 행복이었기 때문에 이 활동을 시작했다라고 얘기를 했었어요. 근데 그때가 저한테는 이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게 이걸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있구나. 그럼 이거는 내가 더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환경생태공학부에 가서 환경 생태 쪽에 연구를 좀 더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진학을 했고요.
근데 이제 환경생태공학부에서 연구를 막 진행을 하는데 연구로서는 대중들에게 이 저의 생각을 전파하고 알려 드리는 게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연구보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뭔가를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게 뭘까라고 했는데 그게 딱 조경학이었어요. 그러면 난 이걸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 대학원을 미국으로 가자라는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한 3, 4년 동안 열심히 준비를 했죠. 그래서 공모전 나가고 영어 공부하고 다행히 이제 감사하게도 하버드까지 가게 되었죠.
원래 이 조경학이란 게 1850년대에 맨해튼 센트럴 파크를 만들면서 생긴 학문이에요.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이 되면서 도시라는 게 생겼고 빽빽하게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너무 이제 웰빙이 안 좋아졌던 거죠. 그래서 그때 당시 이제 옴스테드라는 사람이 이 도시화라는 거는 이제 앞으로 우리 인간 역사에 계속해서 될 일인데 이 도심 속에 자연이 없으면 안 되겠다. 그때 나왔던 말 중에 약간 썰이긴 한데 센트럴 파크를 만들 때 이만한 공원을 지금 만들지 않으면 이만한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될 것이다라고 했었어요. 그럴 정도로 이제 도심 속에 사람들의 생활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 도심 속에 자연 공간을 처음으로 만들자고 한 게 이제 옴스테드라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그 100만 평 센트럴 파크를 만들면서 이거를 그러면 학문으로 제대로 가르쳐야 된다라고 해서 Master of Landscape Architecture라는 프로그램이 하버드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버드라는 학교는 조경 학도로서는 제일 가고 싶은 학교 중에 하나죠.
저는 하버드를 들어가서 졸업만 하면 인생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럼 다 잘 풀리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아무리 졸업을 해서 좋은 설계 회사 들어간다 한들 1억, 2억, 3억 이렇게 벌지 못하더라고요. 저는 아버지가 스무 살 되면 넌 나가서 살아야 된다 하셨어요. 진짠지 몰랐어요. 근데 정말로 스무 살 되고 1월 1일에 나가야 됐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학비도 다 학자금 대출로 했고 생활비도 그때 제가 과외 해 가면서 벌었어요. 저 지금 뒤에 쌓여 있는 대출이 많은데 이거를 저는 들어가서 당연히 한 1, 2억은 벌겠지라 생각하고 갔는데 안타깝지만 그렇지 못해요, 미국도. 근데 그거를 제가 한 1학년 때쯤 알았어요.
1학년 때쯤 알아서, 사실 저는 조경이란 학문이 너무 좋았던 거지 꼭 설계는 아니어도 됐었어요. 그래서 이 조경이라는 산업, 정말 이 자연 공간을 대중에게 많이 알리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산업 안에서 내가 설계 말고 그럼 뭘 할 수 있을까를 1학년 때부터 고민을 했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설계는 설계대로 하면서 내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해야 될까를 많이 고민을 하다가 제가 3년 과정인데 2년을 마치고 중간에 군대를 갑니다. 그래서 군대 가서도 그 고민을 계속했어요. 근데 그때 당시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직군들의 공부를 좀 많이 해보면서 우리 조경 산업에는 아직까지 이런 개발이 되고 뭔가 그 코딩으로 설계하는 그런 게 잘 없었을 때였거든요. 아 그러면 나는 미국에 가서 3학년 때 파라메트릭 디자인, 제너레이티브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그쪽으로 스타트업을 해야겠다,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대 후배 중에 포스코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어쩌다가 좀 멀리 있는 친구 결혼식을 같이 차 타고 가게 됐었어요. 근데 그 친구가 딱 그 조경 현장을 보는 친구였거든요. 이제 쭉 같이 가면서 제가 현장에서 뭐가 제일 불편하냐라고 그냥 얼떨결에 물어봤었어요. 저희 창업 전에 자연스럽게 물어봤는데 소나무를 심는데 소나무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서 하루 종일 돌려 가지고 예쁜 그 구간을 찾아서 심는다. 근데 그게 며칠씩 걸려서 그게 가장 어렵다라는 거예요. 저는 이제 원래 그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나 이런 걸 하다 보니 아 그러면 나무를 그냥 스캔해 가지고 그 모습을 미리 파악을 한 다음에 설계할 때부터 그 나무 그대로 설계를 미리 해 놓고 그거 그대로 시공만 하면 되지 않냐라고 했는데 좋은 아이디어인데 그렇게 안 한다. 그렇게 해 주는 데도 없고. 그래서 그렇다라고 하고 말았었어요, 그때. 근데 그때 이제 생각을 했던 게 나무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없나? 그리고 설계를 할 때도 저도 생각해 보면 맨날 썼던 그 나무 모델들만 썼었어요. 3D를 만들 때도. 그러니까 돌이켜 보니까 정말 우리는 진짜 있는 나무로 설계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그 모델들, 이미지들로만 박아서 설계를 해 왔네. 근데 진짜 공사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그대로 되기가 어렵다라는 거예요. 이 산업의 문제는 그럼 이 나무 데이터에 있구나. 그때는 그냥 멋도 모르고 이 데이터 그냥 내가 싹 다 모아 버리면 되겠는데 생각을 했었던 거죠. 그래서 저희가 호기롭게 나무를 스캐닝을 하고 이 나무를 그대로 팔면 우리는 되게 큰 유통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이제 시작을 했죠.
저희가 이제 라이다 스캐닝으로 농장을 다 스캔을 해 버리면 이걸 갖고 이제 나무를 구매하시는 분들한테 팔면 되겠다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이제 저희가 여러 고객분들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보니 고객분들이 원했던 거는 한 나무에 어마어마하게 디테일한 정보가 아니라 한 나무의 가격, 규격, 수량을 명확하게 알고 사진 정도까지만 보내주면 난 구매하겠다.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 라이다로 진행을 했고 실제로 이제 기술 개발까지 다 했지만 결국에 고객이 원했던 거는 어떤 한 농장의 어마어마하게 깊은 데이터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데이터를 갖고 있는 농장을 많이 알아야 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왜냐면 이분들은 한 공원이나 한 아파트 조경을 할 때만 하더라도 50가지, 100가지가 넘는 품목들을 사 와야 돼요, 나무를. 근데 지금까지 이 여러 가지 품목들을 소나무면 소나무 전문 중개업자, 느티나무면 느티나무 전문, 잔디면 잔디 전문한테 계속 물어봐 가면서 구해 왔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분들은 이 여러 사람들을 다 거치고 싶지가 않고 그냥 한 번에 누가 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농장, 여러 품목을 어느 정도의 정보의 정확도를 갖고 있는 회사를 원하셨던 거죠. 그래서 저희도 초반에는 엄청나게 깊은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기술 개발에 집중을 하다가 근데 일단 고객이 원하는 걸 먼저 해결해 드려야 됐기 때문에 그럼 더 많은 농장을 알기 위해서 더 열심히 전국을 이제 뛰어다녔죠.
그래서 완전 초창기는 저희는 물론 나름대로 계속 농장을 다니면서 농장 데이터를 수집을 했는데 구매를 해 줄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또 반대편에서 제발 나무 하나만 저한테 맡겨 봐라. 나무 하나라도 저희가 전국을 뒤져서 다 찾아드릴 테니까 맡겨 달라라고 해서 열심히 또 구매자분들을 많이 찾아다녔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다행히도 인천 검단에 있는 시그니처 가든 포인트목이라는 이제 가장 중요한 나무를 저희가 찾아드렸거든요. 직경 70cm 정도 되는 큰 팽나무를 찾아드렸는데 딱 그분이 원하는 수형과 이 크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거를 제가 전국을 다 뒤져서 찾아드렸습니다.
이제 그러고 나니까 이제 구매가 한번 되고 그러면서 저희도 이 유통 과정도 더 명확하게 저희가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고 그다음에는 이제 왕벚나무 12주를 또 대형 카페 앞에 심는 분이 저희한테 또 요청을 주셔서 심었고 그러면서 이제 점점 구매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유입이 되고 유입이 또 되니까 더 많은 나무를 찾았어야 됐어요. 점점 이제 원하시는 범위가 넓어지니까 또다시 저희는 또 생산자분들을 열심히 또 전국을 찾아다니면서 데이터를 쌓았죠. 저희는 어쨌든 플랫폼이고 마켓플레이스기 때문에 생산자도 저희 고객이고 구매자도 저희 고객이어서 생산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다시 구매 고객으로 넘어가고 구매자분들이 이제 원하시는 게 더 다양해지면 다시 생산 쪽으로 넘어가서 열심히 또 데이터 수집을 해서 지금까지 이제 매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조경이라는 산업, 나무라는 산업이 사이클이 되게 긴 산업입니다. 제가 설계를 하는 분들한테 찾아가도 이 설계가 실제 시공까지 되려면 3년 뒤, 5년 뒤, 막 7년 뒤인 프로젝트들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아무리 지금 당장 영업을 하고 세일즈를 나가서 고객분들을 만나도 보통 빨라도 그러면 다음 하반기에 있으면 한번 내가 부탁해 보겠다. 아니면 지금 이 견적 내년 거니까 그럼 내년에 실제 시공 들어가면 연락 주겠다 이렇게 이제 많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1, 2년 차 때는 정말 저희가 많이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저희한테 견적이라도 받아봐 달라라는 식으로 열심히 찾아뵙던 시기였고요.
정말 감사하게도 2년 정도가 넘으면서 그분들도 이제 돌아왔던 거죠. 그래, 이제 너희 어느 정도 하고 있네. 그럼 한번 너희 쪽에서 구매해 볼게. 하면서 이제 조금씩 거래로 이어졌던 거 같아요. 근데 저희도 정말 그 힘든 구간을 열심히 정말 농장을 다니면서 데이터 수집하고 남해까지 가서 배 타고 섬에 들어가서도 나무 보고 왔거든요. 그럴 정도로 정말 전국을 산, 바다, 섬 이런 데까지 다 찾아가면서 나무 데이터 수집을 해 왔고 그리고 앞단에서도 계속 구매 고객분들한테 저희를 알리다 보니 시간이 딱 지나면서 한 3년 차 때쯤에 그 사이클이 돌아왔던 거 같아요. 돌아왔고 저희도 그때까지 이제 유통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경험을 해 보면서 문제없이 이제 드릴 수 있다. 저희한테 맡겨만 주시면 정말 만족스러운 서비스 해 드릴 수 있다라고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게 이제 2024년도에 폭발적으로 이제 매출이 커지는 그 단계였습니다.
네. 너무 감사하게도 24년도 하반기에 그래서 저희가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을 해요. 23년도에 비해서 거의 20배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저희 팀원들도, 저희 투자자들도 이 비즈니스 모델에 신뢰가 생겼고요. 그래서 25년도에 또 열심히 달렸죠. 이제 유통 프로세스는 잘 이해가 됐고 저희는 더 확장을 하기 위해서, 스케일업 하기 위해서 다음 투자를 빨리 돌자라고 해서 한 1년 뒤에 바로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25년도 상반기에 IR을 준비해서 라운드를 돌기 시작을 했어요. 근데 잘 아시겠지만 25년도는 또 AI의 시대였죠. AI와 로보틱스. 그래서 저희는 플랫폼으로 이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오히려 플랫폼 베이스여서 안 됐던 거예요. 저희도 그럼 이걸 막 SaaS로 포장을 해야 되나, 플랫폼으로 포장을 해야 되나 여러 가지 고민을 했었는데 뭘로도 사실 설득이 안 됐었어요. 근데 저는 이 산업에 대한 미션과 비전이 너무나도 뚜렷했고 그래서 정말 오랜 기간 라운드를 돌았습니다. 거의 한 4월, 5월쯤부터 막 IR 준비하고 시작을 했는데 12월까지도 커밋이 안 됐던 거예요.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했고요, 작년이.
근데 25년도에 제가 IBK창공 그 데모데이에 최종 발표까지 이제 가게 돼서 500명 넘는 정말 큰 분들 앞에서, 또 정말 대형 스크린 앞에서 IR을 하는데 딱 그날 아침에 제가 원래 그냥 평소에 하던 IR대로 하려다가 안 되겠다, 이거 오프닝 멘트 바꿔야겠다라고 해서 제가 이제 했던 말이 뭐였냐면 그 앞에 수많은 분들에게 이제 질문을 던졌어요. AI와 로보틱스 지금 엄청나게 핫하고 많은 투자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AI와 로보틱스 다음 시대가 무엇일 거라고 생각을 하시냐? AI가 사람의 생각을 다 해주고 로봇들이 이제 우리의 노동을 다 대신해 주면 그다음은 어떤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하시냐? 저는 우리 인간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나무. 그 나무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가 우리 루트릭스다라고 오프닝을 했습니다. 근데 정말 다행히도 그 발표 이후에 감사하게도 연락을 많이 주셨고 그때 막바지에 오버부킹이 됐어요. 그래서 시리즈 A 라운드를 정말 어려웠지만 마지막에는 다행히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트릭스 성공하면 또 뭐 하고 싶냐? 네. 루트릭스 돈을 많이 벌면 뭐 하고 싶냐? 이런 얘기를 해 주시는데 저는 이제 루트릭스에서 돈을 많이 벌면 강남에 빌딩을 하나 사서 다 무너뜨린 다음에 나무 한 그루만 심고 싶어요. 아니 이거 나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근데 그분들에게 저는 또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이 나무 한 그루라는 게 얼만큼 대단하고 소중한 거길래 이 회사는 이 금싸라기 땅에 큰 빌딩을 하나 무너뜨려 놓고 나무 한 그루만 심었을까? 이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건가? 이게 정말 그렇게 좋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저희의 미션은 아름다운 자연의 감동이 더 많은 대중들의 일상이 되게 하자예요.
그거는 제가 청소년 기후변화포럼 때 느꼈던 철학에서 출발을 한 건데 좋은 공간을, 좋은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본 분들이 나중에 결정권자가 되었을 때도 좋은 결정을 내릴 거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공간들을 많이 보여 줄 수 있는 회사가 되자라는 건데요. 그러니까 사실 처음부터 출발하면 사실 지금은 하버드에서 열심히 설계 공부하신 분이 설계를 열심히 해도 그 설계 그대로 절대 안 됩니다. 99% 이상 설계 변경이 돼요. 한두 개라도. 그 이유가 실제로 우리나라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몰라서 그래요. 우리나라에 어떤 나무가 좋고 어떤 나무가 지금 현재 가장 많이 있고 적게 있고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쓰던 나무만 되도록이면 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만들어지는 자연 공간이 엄청나게 좋아질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이 데이터를 수집을 해서 좋은 정보들을 잘 제공해 드렸을 때 훨씬 더 좋은 공간들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좋은 공간들을 즐기는 대중들이 더 많아지면 자연에 대한 관심도가 더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자연을 보호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저는 만들고 싶은 거죠.
사실 스타트업 정말 어렵기는 해요. 정말로 되게 소중한 사람을 보내야 될 수도 있고 계좌가 0원이 되면서 벌벌 떨어볼 수도 있고 고소당해 볼 수도 있고 창업을 한다는 거 자체가 정말로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근데 제가 되게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는 일단 죽지 않으면 성장한다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창업을 시작해서 중간중간 작은 실패들이 있을 수는 있어요. 근데 그 실패를 한다 그래서 죽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 실패가 오히려 저의 경험으로 돌아와서 다음 시도에서 더 좋은 에너지가 되거든요. 그래서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라는 마음으로 창업을 해 보시고, 그래서 실제로 회사가 망하더라도 제가 죽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또 다음에 어떤 일을 하시더라도 훨씬 더 성장한 모습으로 무슨 일이든 더 잘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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