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유통을 데이터로 다시 짜다: 루트릭스 안정록 대표가 말하는 '나무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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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데이터 기반 나무 유통 스타트업 루트릭스의 안정록 대표는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하버드 건축대학원에서 조경 설계 석사를 공부했다. 그가 세운 루트릭스는 전국의 나무 농장을 직접 찾아가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디지털로 옮겨 표준화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로 시공 업체, 시행사, 설계 사무소, 개인 고객에게 필요한 나무를 연결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안 대표는 조경 산업에 왜 '로우 데이터'부터 없는지, 처음 세운 기술 중심 가설이 고객을 만나며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두가 AI를 이야기하던 해에 나무 회사로 투자를 받기까지 무엇을 겪었는지 이야기한다.

8 분 분량

EO 채널의 경진대회를 마감일 삼아 시작한 창업

안 대표는 루트릭스의 출발이 EO 채널과 직접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공동 창업진이 디자인·설계 분야 출신이라 마감일이 없으면 사업계획서가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대표가 유튜브에서 열리는 대회를 마감일로 삼아 사업계획서를 써 보자고 제안했고, 그 대회가 2021년 EO 채널의 '유니콘 하우스'였다.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로 참가했지만, 안 대표는 오히려 그 덕분에 창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타트업을 애초에 시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채널을 통해 첫 투자가 사실상 확정됐고, 그 뒤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설명한다. 최근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뒤 다시 연락이 닿아 이번 인터뷰가 성사됐다.

회사 이름에는 사업의 방향이 담겨 있다. '루트(root)'는 뿌리, 곧 조경 산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다. '릭스'는 매트릭스에서 따왔다. 데이터를 잘 활용하고 디지털로 전환해 나무 산업의 근본 문제를 풀자는 의미다.

누가 어디서 어떤 나무를 키우는지 아무도 모른다

안 대표가 보는 한국 나무·조경 산업의 핵심 문제는 기초 데이터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누가, 어디서, 어떤 나무를, 어떻게 키우고 있으며 가격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한국에 조경을 전담하는 정부 부처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어떤 나무가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생산·공급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으니 가격 변동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공백을 메워 온 사람들은 기존 중개업자다. 안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1년에 20만km씩 차를 몰고, 하루에 전화를 400통씩 받으며 나무를 연결해 왔다. 그는 이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배달의민족은 전국 음식점을 통합해 연결하고, 쿠팡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 그런데 나무는 왜 그렇게 안 될까. 안 대표는 결국 이것이 나무 데이터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무 데이터를 직접 수집·가공해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DMZ 접경 마을에서 자라 생태탐사대를 만들기까지

안 대표는 파주에서도 접경 지역 쪽에서 태어나 자랐다. 집은 산 중턱에 있었고, 작은 마당에서 할머니가 닭과 부추, 파를 키웠다. 집 앞에는 포도밭이, 옆에는 목장이 있었다. 뛰어노는 게 일이었고, 자연과 아주 가까운 삶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전환점은 용인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찾아왔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은 자기만의 과외 활동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엇을 꾸준히 할지 고민하던 그는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다가, 파주에서 살아온 경험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나 DMZ 제3땅굴을 소풍으로 가던 곳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몇 명과 'DMZ 생태탐사대'를 만들었다. 매달 연구 목적으로 민간인 통제구역에 들어가 여름에는 식생 조사를, 겨울에는 월동 조류 조사를 했다. 식생과 곤충을 조사하는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3년 내내 이어진 탐사 활동으로 작은 논문을 썼고, 환경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청소년 세계기후변화포럼에 한국 청소년 대표로 참가했다.

"자연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도 보호할 가치가 있다"

포럼에는 약 50개국에서 150명쯤 되는 학생이 모였다. 유니세프 측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자연·환경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안 대표는 자신이 생각한 답을 끝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자, 마지막에 손을 들었다. 자연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자랐고, 그것 자체가 행복이었기 때문에 이 활동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순간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꼽는다.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더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경생태공학부에 진학했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서, 연구만으로는 대중에게 자기 생각을 알리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찾은 답이 조경학이었다. 이후 약 3~4년 동안 공모전에 나가고 영어를 공부하며 미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고, 하버드에 합격했다.

센트럴파크와 옴스테드, 그리고 하버드 조경학

안 대표는 조경학의 기원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조경학은 1850년대 맨해튼 센트럴파크 조성과 함께 생긴 학문이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도시가 생기고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자,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웰빙이 크게 나빠졌다. 그때 옴스테드(Olmsted)는 도시화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도심 속에 자연이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 대표는 '썰'에 가깝다고 전제하면서, 당시 "지금 이만한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이만한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소개한다. 그만큼 도심 속 생활의 질이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도심에 처음으로 자연 공간을 만들자고 한 옴스테드가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면서 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봤고, 그래서 하버드에 처음으로 조경학 석사(Master of Landscape Architecture) 과정이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드는 조경 학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학교 중 하나라고 그는 말한다.

하버드를 나와도 설계로는 빚을 갚기 어렵다는 현실

하버드에 들어가서 졸업만 하면 인생이 다 풀릴 줄 알았다고 안 대표는 털어놓는다. 그러나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은 설계 회사에 들어가도 연봉이 1억, 2억, 3억씩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는 개인 사정도 있었다. 아버지는 스무 살이 되면 집을 나가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안 대표는 그게 진담인 줄 몰랐다. 그러나 정말로 스무 살이 된 해의 1월 1일에 집을 나와야 했다. 그때부터 학비는 모두 학자금 대출로, 생활비는 과외로 충당했다. 그는 "뒤에 쌓여 있는" 대출이 많다고 말하며, 졸업하면 당연히 1~2억은 벌 줄 알았지만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1학년 무렵에 알게 됐다고 말한다.

다만 그가 좋아한 것은 조경이라는 학문이었지 꼭 설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자연 공간을 대중에게 알리고 보여주는 이 산업 안에서 설계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설계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진로 고민을 이어갔다. 3년 과정 중 2년을 마친 뒤 군대에 갔고, 군 복무 중에도 그 고민은 계속됐다.

군대에서 떠올린 방향: 데이터와 코딩으로 하는 조경 설계

군 복무 중 그는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직군 관련 공부를 많이 했다. 당시 조경 산업에는 코딩으로 설계하는 식의 개발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돌아가 3학년 때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제너레이티브 디자인을 더 깊이 공부하고, 그 분야로 스타트업을 하거나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점의 구상은 아직 나무 유통이 아니라 설계 기술 쪽에 가까웠다.

결혼식 가는 차 안에서 들은 소나무 이야기

사업 아이디어의 실마리는 우연한 대화에서 나왔다. 포스코에서 조경 현장을 담당하던 고려대 후배와 먼 곳에서 열리는 지인 결혼식에 함께 차를 타고 가게 됐다. 창업 전이었고, 안 대표는 현장에서 무엇이 가장 불편한지 가볍게 물었다. 후배는 소나무를 심을 때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하루 종일 돌려 가며 가장 예쁜 면을 찾아 심는데, 그게 며칠씩 걸려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공부하던 안 대표는 나무를 미리 스캔해 형태를 파악하고, 설계 단계부터 그 나무에 맞춰 설계한 뒤 그대로 시공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후배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렇게 해주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때는 대화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안 대표는 그 뒤로 나무에 대한 정보가 정말 그렇게 없는지 생각하게 됐다. 돌이켜 보니 자신도 3D 모델을 만들 때 늘 쓰던 나무 모델만 썼다. 실제 존재하는 나무가 아니라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모델과 이미지로 설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시공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그런 설계가 그대로 구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이 산업의 문제가 나무 데이터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데이터를 싹 다 모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라이다 스캐닝에서 '넓고 적당한 정보'로의 전환

초기 루트릭스의 가설은 기술 중심이었다. 나무를 라이다로 스캔하고 그 데이터와 함께 나무를 팔면 큰 유통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농장을 통째로 스캔해 구매자에게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라이다 기반 기술 개발까지 마쳤다.

그러나 여러 고객을 만나 보니 고객이 원한 것은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엄청나게 상세한 정보가 아니었다. 가격, 규격, 수량을 명확히 알고 사진 정도만 받으면 구매하겠다는 것이었다. 한 농장에 대한 깊은 데이터보다, 적당한 수준의 데이터를 가진 농장을 많이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안 대표는 그 이유를 구매자의 작업 방식에서 찾는다. 공원 하나나 아파트 단지 하나를 조경하려면 나무만 50~100가지가 넘는 품목을 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나무는 소나무 전문 중개업자에게, 느티나무는 느티나무 전문에게, 잔디는 잔디 전문에게 일일이 물어 가며 구해 왔다. 구매자들은 이 여러 사람을 거치지 않고 누군가 한 번에 해결해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많은 농장의 여러 품목을 어느 정도 정확한 정보로 갖춘 회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루트릭스도 초반에는 깊은 데이터를 모으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더 많은 농장을 알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나무 하나만 맡겨 달라": 첫 거래를 만들기까지

농장 데이터를 모아도 사 줄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었다. 팀이 농장을 돌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안, 안 대표는 반대편에서 구매자들을 찾아다녔다. 나무 하나만이라도 맡겨 주면 전국을 뒤져서라도 찾아드리겠다고 부탁했다.

첫 성과는 인천 검단의 한 현장이었다. '시그니처 가든'에 들어갈 포인트 목, 즉 가장 중요한 나무를 찾는 일이었다. 루트릭스는 직경 70cm 정도 되는 큰 팽나무를 전국을 뒤져 찾아냈고, 고객이 원하던 수형과 크기에 딱 맞았다고 안 대표는 말한다. 이 거래로 실제 유통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어 대형 카페 앞에 왕벚나무 12주를 심으려는 고객의 요청도 처리했다.

이렇게 구매자가 자연스럽게 늘자 요구하는 품목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러면 다시 생산자를 찾아 전국을 돌며 데이터를 쌓았다. 안 대표는 루트릭스가 마켓플레이스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구매자가 모두 고객이라고 설명한다. 생산 데이터가 쌓이면 구매 쪽 영업으로 넘어가고, 구매자의 요구가 다양해지면 다시 생산 쪽 데이터 수집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통해 지금까지 매출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3~7년, 긴 사이클을 버틴 시간

조경·나무 산업은 사이클이 매우 길다. 설계 사무소를 찾아가도 그 설계가 실제 시공으로 이어지기까지 3년, 5년, 길게는 7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당장 영업을 나가도 빨라야 "다음 하반기에 있으면 부탁해 보겠다", "이 견적은 내년 건이니 실제 시공에 들어가면 연락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창업 1~2년 차에는 인사를 다니며 견적이라도 받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시기를 보냈다. 동시에 농장 데이터 수집도 계속했다. 남쪽 지방에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나무를 보고 올 정도로 산, 바다, 섬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다녔다고 그는 말한다.

2년 정도가 지나자 반응이 달라졌다. "너희 어느 정도 하고 있네, 한번 구매해 볼게"라며 조금씩 거래로 이어졌다. 안 대표는 3년 차쯤 그 사이클이 돌아왔다고 본다. 그때쯤엔 루트릭스도 유통을 어느 정도 경험해, 맡겨만 주면 문제없이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2024년의 폭발적 성장

그 결과가 2024년에 나타났다. 안 대표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에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 2023년 대비 거의 20배 성장했다. 이 성과로 대표 자신과 팀원, 투자자 모두 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유통 프로세스는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제 스케일업을 위해 다음 투자를 빨리 받자는 판단이 섰다.

AI의 해에 '플랫폼'으로 투자받기

2025년 상반기, 루트릭스는 IR을 준비해 투자 라운드를 시작했다. 하지만 안 대표의 표현대로 2025년은 AI와 로보틱스의 시대였다. 루트릭스는 플랫폼으로 받아들여졌고, 투자 시장에서 플랫폼이 외면받는 흐름 속에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를 SaaS로 포장해야 할지, 플랫폼으로 포장해야 할지 여러 고민을 했지만 어느 쪽으로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산업에 대한 미션과 비전이 뚜렷했기에 라운드를 오래 이어갔다. 4~5월쯤 IR을 준비해 시작했지만 12월까지도 투자 확약이 나오지 않았다. 안 대표는 지난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한다.

돌파구는 IBK 창공 데모데이였다. 최종 발표까지 올라가 500명 넘는 청중과 대형 스크린 앞에서 IR을 하게 됐다. 그날 아침, 평소대로 발표하려던 그는 오프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물었다. AI와 로보틱스가 지금 매우 뜨겁고 많은 투자가 몰리는데, 그다음 시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AI가 사람의 생각을 대신하고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면 그다음엔 어떤 시대가 오겠느냐. 그리고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인간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 자연의 가장 기본 단위가 나무이며, 그 나무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가 루트릭스라고.

안 대표에 따르면 이 발표 뒤 많은 연락이 왔고, 막바지에는 오버부킹이 됐다. 시리즈 A 라운드는 매우 어려웠지만 결국 잘 마무리됐다.

강남 빌딩을 허물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은 이유

루트릭스가 성공해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강남에 빌딩을 하나 사서 허물고 나무 한 그루만 심고 싶다고 답한다. 나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바로 그 사람들이 궁금해하기를 바란다. 이 회사는 왜 금싸라기 땅의 큰 빌딩을 허물고 나무 한 그루만 심었을까,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대단하고 소중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루트릭스의 미션은 "아름다운 자연의 감동이 더 많은 대중의 일상이 되게 하자"이다. 안 대표는 이 미션이 청소년 기후변화포럼에서 느낀 철학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좋은 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본 사람들이 나중에 결정권자가 되었을 때 더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공간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

그는 이 미션을 데이터 문제와 다시 연결한다. 지금은 하버드에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설계를 해도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99% 이상이 한두 개라도 설계 변경을 거친다. 이유는 한국에 실제로 어떤 나무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가 좋은지, 무엇이 많고 무엇이 적은지 정확히 모르니 늘 쓰던 나무만 쓰게 되고, 그 결과 만들어지는 자연 공간의 질도 크게 좋아질 수 없다. 안 대표는 루트릭스가 데이터를 모아 좋은 정보를 제공하면 더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져 자연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한다.

"죽지 않으면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스타트업은 정말 어렵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수도 있고, 계좌 잔고가 0원이 되어 떨어 볼 수도 있으며,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가 좋아하는 말은 "일단 죽지 않으면 성장한다"이다. 창업 과정에서 작은 실패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실패로 죽지는 않고, 오히려 경험이 되어 다음 시도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가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마음으로 창업해 보라고 권한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니,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 훨씬 성장한 모습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