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 출신 한국 창업자 3인이 말하는 실리콘밸리식 일하는 방식: 갈아 넣는 성장과 '재미있게 일하기'는 양립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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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O의 '이오서재' 특별편에는 Y Combinator(YC)를 통해 처음 미국을 경험한 한국 창업자 세 명이 모였다. 진행은 쿼리파이(QueryPie)로 YC 윈터 2020 배치에 참여했고, 현재 Outsome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을 돕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피터 신 대표가 맡았다. 게스트는 한국인 최초의 YC 기업인 미미박스의 하형석 대표(윈터 2014 배치)와 AI 브라우저 어사이드(Aside)를 만드는 이상훈 공동창업자 겸 CTO(2025년 배치)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를 K뷰티 스타트업으로 소개하며, 현재 글로벌 약 200명 규모의 조직으로 30개국 정도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14 분 분량

대담은 두 권의 책, 필름출판사의 『오늘 일, 재밌었어』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매개로 진행됐다. 중심 질문은 두 가지다. YC가 요구한 극단적인 성장 압박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가. 그리고 그런 방식 속에서 사람을 소진시키지 않고 일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는가. 세 사람의 답은 서로 달랐다.

"죽기 전에 실리콘밸리라도 가보자": 미미박스가 YC에 간 경위

하형석 대표는 가장 어려웠을 때 미국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800만 원으로 시작해 외부 투자 없이 부트스트래핑으로 운영했고, 2년 차에 매출이 약 40억 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남은 돈은 3천만 원뿐이었다. 그래서 "미국을 가보고 죽자, 실리콘밸리를 가보고 죽자"는 마음으로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투자를 받고 싶었지만 뷰티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 없는 한국 VC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하 대표는 YC 합격을 실력보다 우연으로 설명했다. 당시 YC에는 미미박스 같은 소비자 스타트업이 없었고, 알고 지내던 파트너 케빈 헤일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지 않았다면 들어가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1월에 YC에 들어갔고, 약 6개월 뒤 시리즈 A로 12억 원을 투자받았다. 바닥나던 3천만 원이 다시 성장 자금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회상했다.

면접 일화도 소개했다. 폴 그레이엄, 샘 올트먼, 지메일을 만든 폴 부크하이트, MIT 교수 등이 앉아 있는 약 10분짜리 면접이었다. 당시 미미박스는 이커머스 제품이었는데, 첫 질문은 "아마존과 어떻게 경쟁할 거냐"였다. 한국 창업자답게 예상 질문을 잔뜩 준비해 갔지만 그 질문은 목록에 없었고, 횡설수설했는데도 합격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받아보니 폴 그레이엄이 직접 얼마를 투자하고 지분은 몇 퍼센트인지 알려줬다고 한다.

일곱 번 떨어진 어사이드, 그리고 '한국 느낌'을 지운 지원서

이상훈 CTO는 YC에 일곱 번째 지원 만에 합격했다. 전 직장들에서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B2C·B2B 제품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창업할 때는 "우리 손으로 0에서 1을 만들며 미국 시장에 도전해 보자"는 기조가 깔려 있었다.

처음 한두 번 떨어졌을 때는 제품 역량도 사용자도 없으니 탈락할 명분이 충분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탈락이 반복되자 속으로 화가 났고, "정말 우리가 부족한가"라는 의문이 점점 집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지면 이유를 알려줄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에는 AI 미팅 노트테이커 제품으로 지원했는데, YC 측은 제품은 좋지만 사용자의 95%가 한국인인데 미국에 와서 무엇을 할 거냐, 네트워크는 있느냐는 취지로 탈락시켰다. 일곱 번째 지원에서는 어사이드로 "미국 퍼스트, 한국 느낌은 전혀 내지 않고, 돈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통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피터 신 대표는 세 팀 모두 한국에서는 외면받다가 YC에서 인정받은 경우라는 공통점을 짚었다. 쿼리파이도 한국에서 투자 라운드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YC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했다. 그는 YC가 지표보다 카카오 출신 개발자인 대표와 글로벌 사업개발을 하던 자신으로 구성된 팀의 조합, 그리고 상당히 니치한 아이템을 차별점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2주짜리 일정을 3일로: YC 초기의 속도

하 대표는 YC 합격 당시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이었다. 들어가서는 미국 제품을 만들고 법인 전환까지 동시에 해야 했는데, 미국 웹사이트조차 없었다. 당시 CTO는 웹사이트 제작 기간을 2주로 잡았다. 그런데 담당 파트너였던 폴 부크하이트가 오피스아워에서 CTO가 어디 있는지 묻더니 "3일 만에 만들라"고 했다. 보통 CTO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오는데, 폴 부크하이트가 말하니 정말 3일 만에 나왔다며 웃었다.

성장 곡선도 극적이었다. 3개월의 YC 기간 중 처음 두 달 동안은 엄청난 노력을 쏟았는데도 회사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셋째 달에 전월 대비 66% 성장했고, 하 대표는 당시 배치 안에서 성장률이 가장 빨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50여 개 회사가 참여한 데모데이 이후 50곳 이상의 VC가 연락해 왔다고 한다. 이후 미미박스는 YC 정신을 이어가려고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의 YC 오피스와 같은 건물에 계속 사무실을 두었고, 피터 신 대표도 그곳에서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 주 7일 근무의 기억

피터 신 대표는 "유니콘은 이렇게까지 갈아서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상훈 CTO는 어느 정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의 배치에서는 팀별로 전주 대비 몇 퍼센트 성장했는지를 공유하고, 목표를 달성한 팀은 초록색, 못 한 팀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일종의 채찍질이었다. 다른 팀들도 열심히 갈아 넣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깔렸고, 주말 구분 없이 집에 틀어박혀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하 대표의 경험은 더 극단적이다. YC 첫날 54개 회사를 두고 어느 회사가 잘될지 투표를 했는데, 미미박스는 끝에서 여덟 번째였다. 아직 제품도 없는 회사보다 순위가 낮았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더라도 일단 열심히 하자고 결론 내렸다. 주 7일 근무를 도입했고, 함께 자고 지내며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만 쉬었다. 그는 그때가 회사의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고 인정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교훈은 시간의 양보다 집중에 있었다고 말한다. 미미박스는 고성장, 저성장, 역성장을 모두 겪었는데, 그는 회사가 커질수록 시스템보다 집중력이 중요하고, 하나를 더 절실하게 하는 회사가 더 빨리 크는 것 같다고 했다.

오피스아워의 단 하나의 질문: "지난주 대비 몇 % 성장했나"

YC의 무엇이 모두를 그렇게 달리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자기 배치 때는 오피스아워가 핵심이었다고 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 담당 파트너를 만나 지난주 성장률을 보고하는 자리다. 인사 같은 것은 없고 3%, 5%, 7% 하는 숫자만 묻는다. 그는 그 건조함이 엄청난 집중력을 줬다고 평가했다. 다른 파트너에게 따로 15분짜리 오피스아워를 신청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배치 디너나 성공한 CEO가 강연하는 수요일 디너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가 와서 시리얼을 만들어 팔던 이야기를 해도 "우리와 상관없는 얘기"라고 판단했고, 오피스아워만 갔다는 것이다.

피터 신 대표도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질문거리를 잔뜩 준비해 YC 파트너 에릭과의 오피스아워에 들어갔는데, 파트너는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며 "고객과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게 언제냐"고 물었다. 정곡을 찔린 그가 "우리는 YC를 하고 있어서…"라고 답하자 파트너는 아니라고 하며 바로 오피스아워를 끝냈다. 투자자가 아니라 창업 선배가 그렇게 말하니 깨닫게 되더라고 했다.

이상훈 CTO의 배치에서는 개별 오피스아워보다 비슷한 분야 회사들을 모은 그룹 오피스아워가 중심이었다. 원형으로 앉아 한 회사씩 돌아가며 얼마나 성장했는지, 매출이 얼마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야 했다. "이번엔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변화를 만들고 무언가를 유치해야 했고, 그 압박이 상당했다고 한다.

투자자가 늘면서 흐려진 집중, 그리고 그 질문을 되살린 미미박스

하 대표는 YC 오피스아워의 질문이 회사 성장의 본질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미미박스에서 성장의 의미와 프레임워크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투자자가 많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YC는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에는 관심이 없고 성장률만 묻는다. 반면 여러 투자자의 다양한 의견이 들어오면 누구는 디자인을, 누구는 다른 것을 중시하면서 회사의 집중력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YC 자체에 의지했다기보다 YC가 던진 질문 하나로 역대급 성장을 했는데 왜 그것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아쉬워했다. 10년이 넘은 미미박스는 최근 다시 YC 시절 같은 성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작년과 재작년에 YC에서 배운 내용을 돌아보고 그 프레임워크를 다시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YC 파트너가 하던 역할을 하 대표가 대신 맡아 리더들에게 주간 성장률을 물었고, 그러자 성장률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YC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문화가 되는 질문 하나를 배우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피터 신 대표는 팀원이나 공동창업자에게 "그래서 몇 퍼센트냐"고 묻는 일이 잔인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묻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YC가 알려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Why are you here?": 샘 올트먼과의 오피스아워

하 대표는 회사가 아주 잘될 때와 어려워졌을 때 샘 올트먼에게 오피스아워를 신청한 적이 있다. 샘 올트먼은 냉정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인사도 없이 앉아서 하 대표가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체크(이해했다)"만 반복했다. 혼자 한참 이야기하고 나자 샘 올트먼은 "그런데 왜 여기 있어? 그 문제 해결하면 되잖아"라고 되물었다.

하 대표는 공감을 받고 싶었고 다른 방법도 있다는 조언을 원했지만,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네가 해결하려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됐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아픈, 잔인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샘 올트먼을 프로덕트와 엔지니어링을 중시하는 YC 안에서 드물게 마케팅, 세일즈, 네트워킹을 강조하던 파트너로 기억했다. 늘 어떻게 팔고 있는지, 매출을 어떻게 내는지를 물었다. YC에 오는 창업자 대부분이 지나치게 프로덕트·엔지니어링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런 파트너가 필요했고, 지금 돌아보면 매우 유익했다는 평가다. 피터 신 대표는 샘 올트먼의 장기로, 스타트업이 피칭하면 그것을 자기 버전으로 다시 피칭해 "나라면 이렇게 소개하겠다"고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꼽았다. 하 대표는 머신러닝과 AI는 오랫동안 연구돼 왔지만 그것을 모두에게 보급시킨 사람은 샘 올트먼이며, 그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된 제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 투자자, 출발점이 다르다

미국 파트너들은 한국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피터 신 대표는 구조적인 차이를 먼저 들었다. 미국 펀드는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당 산업에 깊이 몸담았던 사람들이 파트너가 되는 경우가 많고, 실리콘밸리 기준으로는 60~70% 정도가 직접 엑싯을 경험한 창업자 출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반면 한국은 금융권 출신이 많아 IPO나 파생상품 같은 금융에 밝고, 그래서 후속 단계와 초기 단계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봤다. 바닥부터의 프레임워크에 목마른 초기 창업자에게는 미국 파트너가 잘 맞고, IPO 준비나 정책·기업 금융 같은 전략적 자금이 필요할 때는 한국에서 더 잘 맞는 투자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정리다.

하 대표는 태도의 차이를 강조했다. 미국 파트너와 창업자들은 자기 회사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는다. 한국에서는 유니콘이 되고, 이익을 내고, 글로벌에 진출하는 식의 마일스톤을 목표로 삼는다면, 미국에서는 제품이 세상을 다음 챕터로 열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피치덱도 다르다. 한국 스타트업 피치덱에는 "이 회사가 왜 망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반면, 미국은 "What if this goes right", 즉 잘되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업사이드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는 어느 쪽 파트너가 더 좋다는 뜻이 아니라 출발점과 시선이 다르다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

1천억 원까지는 잘하지만, 그 너머는 어렵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가 YC 탑 100 목록에서 가장 높았을 때 전체 포트폴리오 중 14위까지 올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창업자들이 갈아 넣어서 1천억 원 규모 회사까지는 정말 잘 만든다고 본다. 그러나 조 단위, 10조 원 규모의 데카콘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미국 창업자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가 든 예는 비용에 대한 감각이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미국은 물가와 인건비가 비싸다고 말하지만, 미국 사람 중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미미박스는 미국에서 사업한 지 10년이 넘었고 전체 매출의 60~70% 정도가 미국에서 나오지만, 하 대표는 CEO로서 그 마인드 전환이 여전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미국은 자본이 풍부해 투입했을 때 열 배가 될 것 같으면 계속 투자하는데, 큰 눈덩이를 더 크게 굴리는 경험이 자신에게는 아직 없고 배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후기 단계 스타트업 CEO들과 그 주변의 이사회, 코치들은 이를 매우 잘한다고 봤다.

피터 신 대표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면 머리의 뚜껑이 열리는 느낌, 상한선이 열린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창업자가 전력으로 달리다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시장이 실패자로 낙인찍지 않으며, 연대보증이나 파산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페이 포워드 문화도 가능하고, 미국에서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어필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This is not worth my time": 떠난 이사

피터 신 대표는 이와 관련해 뼈아픈 경험을 공유했다. 쿼리파이가 매년 세 배씩 성장하다가 미중 이슈로 성장이 한 번 꺾였을 때, 이사회에 있던 미국 투자자가 "이건 더 이상 내 시간을 쓸 가치가 없다"며 권한을 모두 내려놓고 나갔다. 수백억 원을 투자한 사람이었다. 넥스트 구글을 찾아가야 하는데 이 회사는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쓸 회사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피터 신 대표는 그 투자자가 이미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곳에서 충분한 수익을 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반대로 한국 VC나 PE에게 투자받은 다른 창업자들은 투자자와 함께 회사를 다시 원상 복구시키는 여정을 밟았다고 그는 전했다. 창업자로서는 전자가 훨씬 마음 아프지만, "이게 자본주의고 이게 실리콘밸리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연고 없는 미국에서 첫 매출을 만드는 법

현실은 결국 세일즈라는 전제에서, 세 사람은 미국에서 첫 고객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이야기했다. 이상훈 CTO는 어사이드의 세일즈가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말했다. PoC 기간이 너무 길었고, 돈을 받고 PoC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지만 "요구사항을 주면 입맛에 맞게 커스텀해 주겠다"는 방식으로 가다 보니 제품이 특정 회사의 요구와 특정 도메인에 점점 빠져드는 문제가 생겼다.

하 대표는 소비재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다른 그림을 그렸다. GDP와 인구 등을 고려하면 미국 고객 한 명의 구매력이 한국의 수십 배쯤 되는 것 같고, 소득이 높은 고객이 많아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용성이 크다고 봤다. 실질적으로 첫 사용자는 레딧에서 모았다. 돈이 없으니 직접 레딧에 들어가 바이럴을 만들자는 판단이었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팔던 피터 신 대표는 브렉스, 야놀자, 카카오페이 같은 기업을 상대하며 YC에서 "만들기 전에 팔라(sell before you make)"는 멘탈리티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는 면이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지금 Outsome에서 액셀러레이팅을 할 때 "없어도 있는 척 해라, 다 만들어졌다고 말하라"고 강조한다고 밝혔다. 비전이 진심인 사람들도 그 경계를 오가며, 실리콘밸리는 이를 관용하고, 그렇게 해서 성공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사례가 있기에 다들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CEO가 발표한 출시 날짜를 엔지니어들이 처음 듣는 경우가 실리콘밸리에 흔하고, YC에도 AI 제품이라며 테스트해 보라고 하면 실제로는 사람이 직접 작업하는 이른바 '휴먼 AI'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주문이 들어오고 돈이 입금된 뒤에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허슬링 멘탈리티라는 것이다.

『오늘 일, 재밌었어』라는 제목 앞에서

대담의 후반부는 이런 허슬 방식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넘어갔다. 영상에서는 『오늘 일, 재밌었어』를 일은 원래 고통이 아니며 즐거움과 성과는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책으로 소개했다.

제목을 들은 이상훈 CTO의 첫 반응은 "나는 재밌었나?"였다. 정말 힘들면 "바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고, 오히려 바쁘다고 말하는 건 가짜 바쁨이라고 할 정도로 일해 왔기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지점이었다고 했다.

하 대표는 "오늘 재밌었어"보다는 "올해 재밌었어"라면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미미박스는 200명 남짓한 조직이 수백만 명의 고객을 상대하므로 한 명이 맡는 고객이 만 단위다. 대표인 자신도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데 구성원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며, 줌아웃해서 지난 3개월 중 하루, 지난 6개월 중 며칠은 재밌는 날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이 고통이라는 것이 편견이라기보다 많은 사람의 실제 경험일 것이라고 봤다. 게다가 AI 이후 고성장 시대가 되면서 지금 YC 배치에서는 주간 성장률이 3%, 5%가 아니라 7%, 9% 수준으로 이야기될 것이고, AI 회사들은 직원당 매출이 일곱에서 여덟 배씩 늘고 있어, 일이 재미있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압박이 성과를 만들었나: 엇갈린 두 경험

피터 신 대표는 압박과 수치 강조만으로 성과가 나왔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하 대표는 어떤 종류의 압박인지가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회사의 퍼포먼스가 좋아야 구성원들도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므로 리더로서 퍼포먼스를 중시한다고 답했다.

이상훈 CTO의 답은 달랐다. YC 기간 어사이드는 압박이 매우 컸다. 그룹 오피스아워에서 어떻게든 초록색을 받아야 한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때 팀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고 개개인의 역량도 발휘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일할 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고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보다 보니 감정이 일에 섞여 들어갔고, "이 말을 하면 또 무슨 소리를 들을까" 하는 생각이 팀 분위기를 짓눌렀다고 한다.

명확함과 예측 가능함: 'Working with Dino' 문서

200명 조직의 분위기를 대표로서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두 가지를 한다고 답했다. 첫째, 연간 목표는 보통 하나이고 그것을 1년 내내 똑같이 말한다. 스스로를 오피스아워처럼 "고장 난 라디오"라고 표현하며, 누구든 자신을 찾아오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고,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둘째, 그의 영어 이름을 딴 'Working with Dino'라는 문서가 있다. 입사하면 주어지는 A4 3~4장 분량의 문서로, 그가 추구하는 것과 추구하지 않는 것이 적혀 있다. 대표로서 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올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함, 다른 하나는 예측 가능함이다. "디노의 오늘 기분이 어떨까"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OKR에도 목표는 하나만 들어 있다. 연 매출액 같은 것이 아니라 매우 미시적인 선행 지표 하나다. 예로 든 것은 한 주력 제품의 판매량으로, 작년에 200만 개를 팔았고 올해 목표는 1천만 개이며 전사가 여기에 정렬돼 있다고 한다. 목표를 하나로 중앙화하니 조직이 더 빨라지고 예측 가능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책이 강조하는 리더의 칭찬과 성과 인정에 대해 묻자, 하 대표는 칭찬이 자신의 약한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칭찬을 많이 받으며 자라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창업자란 사회적으로 하지 말라는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함과 예측 가능함, 그리고 구성원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인정에 대해서는 이른바 '금융 치료'가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답했고, 2분기가 1분기 대비 약 50% 성장해 소액의 보상이 있을 것 같다며 그것이 자신이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에서 '우리가 원하는 제품'으로

이상훈 CTO는 YC 3개월을 "몰아붙여서 단기 성과는 냈지만 오래 못 갔다"고 요약했다. 잘하지 못하는 분야였고, 성과 지표만 바라보며 팀이 공감하지 못하는 기능을 "고객이 만들어 달라고 하니 만들어 주면 돈을 준다"는 분위기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그때 팀은 가장 우울했고, 자신이 그저 코드만 입력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YC 기간에는 몰랐지만 끝나고 나서 깨달은 점이 있다고 했다. YC의 기조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라"였지만, 지금 어사이드는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 분야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려 하니 사용자마다 요구가 달라 제품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몰라 피로감이 컸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면 기준을 스스로 세울 수 있고, 그러면서 모든 일이 재미있어지고 모든 것이 연결됐다고 했다.

YC가 끝난 뒤 주변에서는 YC 포트폴리오가 됐으니 행복하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어사이드 팀에는 오히려 심한 슬럼프가 왔다고 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제품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치우쳤고, 이전 제품을 만들 때와 비교해 팀의 속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방향을 바꿔 나온 것이 지금의 AI 브라우저 어사이드다. 그는 이제 자신이 만든 제품을 직접 쓰고, 사용자 피드백이 계속 들어오며, 자신이 만든 기능을 몇만 명이 쓰는 경험 속에서 제품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제품을 만들었으면 최소한 우리가 써야 하고, 쓰면서 불편한 점과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다. 피드백을 받고 개선하는 사이클이 돌며 제품이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재밌게 일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재미있어지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고 그는 말했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의 퇴사자 이메일 리스트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1천 명이 넘는 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나고 나서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스스로 상상하지 못한 성장을 했을 때였다고 한다. 회사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미션으로 모인 곳인데, 10 정도 성장하리라 예상했던 것이 20, 30, 40이 됐을 때의 시너지가 재미를 줬다는 것이다. 피터 신 대표는 성과나 재미를 너무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점심때 좋은 카페에 가는 것처럼 중간중간 자주 느낄 수 있게 팀을 운영하는 편이 더 재미있게 함께 가는 방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과 삶의 경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해법

마지막 주제는 직함 뒤의 개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이상훈 CTO는 냉정하게 말해 일과 개인 생활을 잘 분리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여자친구와 만나면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무거운 노트북을 늘 들고 다녀 다툼이 많았다. 그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니 일을 해도 재미없고 개인 생활을 해도 재미없다는 점을 위험 신호로 느꼈다. 그래서 집에서는 경계를 허물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되, 밖에 나갔을 때만큼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 하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무실에 있을 때였다. 죽을 때를 떠올려 보면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걸 하는 생각보다 회사에서 그걸 더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그쪽으로 최적화해 거의 주 7일 출근하고, 이 사실을 주변에 명확히 말했다. 이전에는 일과 삶을 모두 통제하려 했지만 휴가를 가면 짜증이 났고, 휴가 직전에는 늘 중요한 일이 생겨 휴가지에서 다투기도 했다. 지금은 아내와 휴가를 각자 따로 간다. 그는 사람마다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다르고, 그것을 찾아가며 자신에게 솔직해지니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됐으며, 대놓고 이야기하자 가족도 인정해 주더라고 말했다.

책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농담에 하 대표는 늘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지금은 K뷰티와 K컬처 붐까지 겹쳐 창업자에게 가장 좋은 때이고, 1을 넣으면 3이 나오는 시기라 재미있다고 했다.

미미박스 초기 이야기도 나왔다. 하 대표는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 특별히 깊이 아는 분야가 없다는 것이라며, 궁금한 분야가 생기면 그 분야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방식으로 배운다고 했다. 당시 데이터와 엔지니어링 쪽에 병목이 많았는데, 초기 엔지니어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월세 없이 자기 집에서 함께 살게 했다. 일상을 같이 보내니 엔지니어링과 데이터에 대해 훨씬 빨리 배웠고, 12시간 근무가 가능해졌으며, 아침을 먹을 때도 일 이야기를 했다. 당시 어린 자녀들이 아침에 일어나 엔지니어들 방에 가면, 듀얼 모니터 한쪽에는 코드가, 다른 쪽에는 핑크퐁 유튜브가 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구성원과 같은 미션을 두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를 만든 것이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에 가야 하는가

마무리 질문은 소프트웨어나 K뷰티로 큰 획을 긋고 싶은 창업자가 미국으로 가야 하느냐였다. 하 대표는 과거에는 미국이나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창업한다면 한국이든 어디든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실리콘밸리 플레이북이 책으로 나올 만큼 배울 곳이 많아 위치와 무관하게 글로벌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으니, 미국에 가서 경험해 보는 것은 하나의 옵션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 시장이 미국인만의 것도, 중국 시장이 중국인만의 것도 아니라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계속 성장한다는 뜻이므로 더 큰 시장에 더 빨리 나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생존법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CTO는 어사이드가 YC를 거치며 미국 회사가 됐으니, 이제는 미국이든 어디든 더 큰 규모로 성장해 전 세계가 자신들의 제품을 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처음 창업한다면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고 보는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프로그램과 교류 기회가 많으며, 무엇보다 유명한 사람들과 한두 번이라도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와 대화의 결이 달라진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미국에서 성공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쓰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피터 신 대표는 두 책을 관통하는 테마를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로 정리했다. 재미있으려면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하고, YC에서 다른 창업자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관계가 중요하며, 실리콘밸리의 페이 포워드 문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시스템을 만들어 온 곳이 미국이고 그 중심이 실리콘밸리라서 페이 포워드 문화가 가장 강한 것 같다며, 먼저 간 이들의 이야기가 YC에 지원하거나 미국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지도가 되어 다음 미미박스, 다음 어사이드가 더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는 말로 대담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