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 출신 한국 창업자 3인이 말하는 실리콘밸리식 일하는 방식: 갈아 넣는 성장과 '재미있게 일하기'는 양립할 수 있나
EO KoreaEO의 '이오서재' 특별편에는 Y Combinator(YC)를 통해 처음 미국을 경험한 한국 창업자 세 명이 모였다. 진행은 쿼리파이(QueryPie)로 YC 윈터 2020 배치에 참여했고, 현재 Outsome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을 돕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피터 신 대표가 맡았다. 게스트는 한국인 최초의 YC 기업인 미미박스의 하형석 대표(윈터 2014 배치)와 AI 브라우저 어사이드(Aside)를 만드는 이상훈 공동창업자 겸 CTO(2025년 배치)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를 K뷰티 스타트업으로 소개하며, 현재 글로벌 약 200명 규모의 조직으로 30개국 정도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담은 두 권의 책, 필름출판사의 『오늘 일, 재밌었어』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매개로 진행됐다. 중심 질문은 두 가지다. YC가 요구한 극단적인 성장 압박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가. 그리고 그런 방식 속에서 사람을 소진시키지 않고 일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는가. 세 사람의 답은 서로 달랐다.
"죽기 전에 실리콘밸리라도 가보자": 미미박스가 YC에 간 경위
하형석 대표는 가장 어려웠을 때 미국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800만 원으로 시작해 외부 투자 없이 부트스트래핑으로 운영했고, 2년 차에 매출이 약 40억 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남은 돈은 3천만 원뿐이었다. 그래서 "미국을 가보고 죽자, 실리콘밸리를 가보고 죽자"는 마음으로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투자를 받고 싶었지만 뷰티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 없는 한국 VC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하 대표는 YC 합격을 실력보다 우연으로 설명했다. 당시 YC에는 미미박스 같은 소비자 스타트업이 없었고, 알고 지내던 파트너 케빈 헤일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지 않았다면 들어가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1월에 YC에 들어갔고, 약 6개월 뒤 시리즈 A로 12억 원을 투자받았다. 바닥나던 3천만 원이 다시 성장 자금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회상했다.
면접 일화도 소개했다. 폴 그레이엄, 샘 올트먼, 지메일을 만든 폴 부크하이트, MIT 교수 등이 앉아 있는 약 10분짜리 면접이었다. 당시 미미박스는 이커머스 제품이었는데, 첫 질문은 "아마존과 어떻게 경쟁할 거냐"였다. 한국 창업자답게 예상 질문을 잔뜩 준비해 갔지만 그 질문은 목록에 없었고, 횡설수설했는데도 합격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받아보니 폴 그레이엄이 직접 얼마를 투자하고 지분은 몇 퍼센트인지 알려줬다고 한다.
일곱 번 떨어진 어사이드, 그리고 '한국 느낌'을 지운 지원서
이상훈 CTO는 YC에 일곱 번째 지원 만에 합격했다. 전 직장들에서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B2C·B2B 제품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창업할 때는 "우리 손으로 0에서 1을 만들며 미국 시장에 도전해 보자"는 기조가 깔려 있었다.
처음 한두 번 떨어졌을 때는 제품 역량도 사용자도 없으니 탈락할 명분이 충분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탈락이 반복되자 속으로 화가 났고, "정말 우리가 부족한가"라는 의문이 점점 집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지면 이유를 알려줄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에는 AI 미팅 노트테이커 제품으로 지원했는데, YC 측은 제품은 좋지만 사용자의 95%가 한국인인데 미국에 와서 무엇을 할 거냐, 네트워크는 있느냐는 취지로 탈락시켰다. 일곱 번째 지원에서는 어사이드로 "미국 퍼스트, 한국 느낌은 전혀 내지 않고, 돈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통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피터 신 대표는 세 팀 모두 한국에서는 외면받다가 YC에서 인정받은 경우라는 공통점을 짚었다. 쿼리파이도 한국에서 투자 라운드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YC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했다. 그는 YC가 지표보다 카카오 출신 개발자인 대표와 글로벌 사업개발을 하던 자신으로 구성된 팀의 조합, 그리고 상당히 니치한 아이템을 차별점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2주짜리 일정을 3일로: YC 초기의 속도
하 대표는 YC 합격 당시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이었다. 들어가서는 미국 제품을 만들고 법인 전환까지 동시에 해야 했는데, 미국 웹사이트조차 없었다. 당시 CTO는 웹사이트 제작 기간을 2주로 잡았다. 그런데 담당 파트너였던 폴 부크하이트가 오피스아워에서 CTO가 어디 있는지 묻더니 "3일 만에 만들라"고 했다. 보통 CTO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오는데, 폴 부크하이트가 말하니 정말 3일 만에 나왔다며 웃었다.
성장 곡선도 극적이었다. 3개월의 YC 기간 중 처음 두 달 동안은 엄청난 노력을 쏟았는데도 회사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셋째 달에 전월 대비 66% 성장했고, 하 대표는 당시 배치 안에서 성장률이 가장 빨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50여 개 회사가 참여한 데모데이 이후 50곳 이상의 VC가 연락해 왔다고 한다. 이후 미미박스는 YC 정신을 이어가려고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의 YC 오피스와 같은 건물에 계속 사무실을 두었고, 피터 신 대표도 그곳에서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 주 7일 근무의 기억
피터 신 대표는 "유니콘은 이렇게까지 갈아서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상훈 CTO는 어느 정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의 배치에서는 팀별로 전주 대비 몇 퍼센트 성장했는지를 공유하고, 목표를 달성한 팀은 초록색, 못 한 팀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일종의 채찍질이었다. 다른 팀들도 열심히 갈아 넣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깔렸고, 주말 구분 없이 집에 틀어박혀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하 대표의 경험은 더 극단적이다. YC 첫날 54개 회사를 두고 어느 회사가 잘될지 투표를 했는데, 미미박스는 끝에서 여덟 번째였다. 아직 제품도 없는 회사보다 순위가 낮았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더라도 일단 열심히 하자고 결론 내렸다. 주 7일 근무를 도입했고, 함께 자고 지내며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만 쉬었다. 그는 그때가 회사의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고 인정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교훈은 시간의 양보다 집중에 있었다고 말한다. 미미박스는 고성장, 저성장, 역성장을 모두 겪었는데, 그는 회사가 커질수록 시스템보다 집중력이 중요하고, 하나를 더 절실하게 하는 회사가 더 빨리 크는 것 같다고 했다.
오피스아워의 단 하나의 질문: "지난주 대비 몇 % 성장했나"
YC의 무엇이 모두를 그렇게 달리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자기 배치 때는 오피스아워가 핵심이었다고 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 담당 파트너를 만나 지난주 성장률을 보고하는 자리다. 인사 같은 것은 없고 3%, 5%, 7% 하는 숫자만 묻는다. 그는 그 건조함이 엄청난 집중력을 줬다고 평가했다. 다른 파트너에게 따로 15분짜리 오피스아워를 신청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배치 디너나 성공한 CEO가 강연하는 수요일 디너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가 와서 시리얼을 만들어 팔던 이야기를 해도 "우리와 상관없는 얘기"라고 판단했고, 오피스아워만 갔다는 것이다.
피터 신 대표도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질문거리를 잔뜩 준비해 YC 파트너 에릭과의 오피스아워에 들어갔는데, 파트너는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며 "고객과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게 언제냐"고 물었다. 정곡을 찔린 그가 "우리는 YC를 하고 있어서…"라고 답하자 파트너는 아니라고 하며 바로 오피스아워를 끝냈다. 투자자가 아니라 창업 선배가 그렇게 말하니 깨닫게 되더라고 했다.
이상훈 CTO의 배치에서는 개별 오피스아워보다 비슷한 분야 회사들을 모은 그룹 오피스아워가 중심이었다. 원형으로 앉아 한 회사씩 돌아가며 얼마나 성장했는지, 매출이 얼마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야 했다. "이번엔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변화를 만들고 무언가를 유치해야 했고, 그 압박이 상당했다고 한다.
투자자가 늘면서 흐려진 집중, 그리고 그 질문을 되살린 미미박스
하 대표는 YC 오피스아워의 질문이 회사 성장의 본질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미미박스에서 성장의 의미와 프레임워크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투자자가 많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YC는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에는 관심이 없고 성장률만 묻는다. 반면 여러 투자자의 다양한 의견이 들어오면 누구는 디자인을, 누구는 다른 것을 중시하면서 회사의 집중력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YC 자체에 의지했다기보다 YC가 던진 질문 하나로 역대급 성장을 했는데 왜 그것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아쉬워했다. 10년이 넘은 미미박스는 최근 다시 YC 시절 같은 성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작년과 재작년에 YC에서 배운 내용을 돌아보고 그 프레임워크를 다시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YC 파트너가 하던 역할을 하 대표가 대신 맡아 리더들에게 주간 성장률을 물었고, 그러자 성장률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YC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문화가 되는 질문 하나를 배우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피터 신 대표는 팀원이나 공동창업자에게 "그래서 몇 퍼센트냐"고 묻는 일이 잔인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묻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YC가 알려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Why are you here?": 샘 올트먼과의 오피스아워
하 대표는 회사가 아주 잘될 때와 어려워졌을 때 샘 올트먼에게 오피스아워를 신청한 적이 있다. 샘 올트먼은 냉정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인사도 없이 앉아서 하 대표가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체크(이해했다)"만 반복했다. 혼자 한참 이야기하고 나자 샘 올트먼은 "그런데 왜 여기 있어? 그 문제 해결하면 되잖아"라고 되물었다.
하 대표는 공감을 받고 싶었고 다른 방법도 있다는 조언을 원했지만,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네가 해결하려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됐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아픈, 잔인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샘 올트먼을 프로덕트와 엔지니어링을 중시하는 YC 안에서 드물게 마케팅, 세일즈, 네트워킹을 강조하던 파트너로 기억했다. 늘 어떻게 팔고 있는지, 매출을 어떻게 내는지를 물었다. YC에 오는 창업자 대부분이 지나치게 프로덕트·엔지니어링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런 파트너가 필요했고, 지금 돌아보면 매우 유익했다는 평가다. 피터 신 대표는 샘 올트먼의 장기로, 스타트업이 피칭하면 그것을 자기 버전으로 다시 피칭해 "나라면 이렇게 소개하겠다"고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꼽았다. 하 대표는 머신러닝과 AI는 오랫동안 연구돼 왔지만 그것을 모두에게 보급시킨 사람은 샘 올트먼이며, 그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된 제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 투자자, 출발점이 다르다
미국 파트너들은 한국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피터 신 대표는 구조적인 차이를 먼저 들었다. 미국 펀드는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당 산업에 깊이 몸담았던 사람들이 파트너가 되는 경우가 많고, 실리콘밸리 기준으로는 60~70% 정도가 직접 엑싯을 경험한 창업자 출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반면 한국은 금융권 출신이 많아 IPO나 파생상품 같은 금융에 밝고, 그래서 후속 단계와 초기 단계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봤다. 바닥부터의 프레임워크에 목마른 초기 창업자에게는 미국 파트너가 잘 맞고, IPO 준비나 정책·기업 금융 같은 전략적 자금이 필요할 때는 한국에서 더 잘 맞는 투자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정리다.
하 대표는 태도의 차이를 강조했다. 미국 파트너와 창업자들은 자기 회사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는다. 한국에서는 유니콘이 되고, 이익을 내고, 글로벌에 진출하는 식의 마일스톤을 목표로 삼는다면, 미국에서는 제품이 세상을 다음 챕터로 열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피치덱도 다르다. 한국 스타트업 피치덱에는 "이 회사가 왜 망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반면, 미국은 "What if this goes right", 즉 잘되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업사이드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는 어느 쪽 파트너가 더 좋다는 뜻이 아니라 출발점과 시선이 다르다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
1천억 원까지는 잘하지만, 그 너머는 어렵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가 YC 탑 100 목록에서 가장 높았을 때 전체 포트폴리오 중 14위까지 올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창업자들이 갈아 넣어서 1천억 원 규모 회사까지는 정말 잘 만든다고 본다. 그러나 조 단위, 10조 원 규모의 데카콘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미국 창업자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가 든 예는 비용에 대한 감각이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미국은 물가와 인건비가 비싸다고 말하지만, 미국 사람 중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미미박스는 미국에서 사업한 지 10년이 넘었고 전체 매출의 60~70% 정도가 미국에서 나오지만, 하 대표는 CEO로서 그 마인드 전환이 여전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미국은 자본이 풍부해 투입했을 때 열 배가 될 것 같으면 계속 투자하는데, 큰 눈덩이를 더 크게 굴리는 경험이 자신에게는 아직 없고 배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후기 단계 스타트업 CEO들과 그 주변의 이사회, 코치들은 이를 매우 잘한다고 봤다.
피터 신 대표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면 머리의 뚜껑이 열리는 느낌, 상한선이 열린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창업자가 전력으로 달리다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시장이 실패자로 낙인찍지 않으며, 연대보증이나 파산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페이 포워드 문화도 가능하고, 미국에서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어필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This is not worth my time": 떠난 이사
피터 신 대표는 이와 관련해 뼈아픈 경험을 공유했다. 쿼리파이가 매년 세 배씩 성장하다가 미중 이슈로 성장이 한 번 꺾였을 때, 이사회에 있던 미국 투자자가 "이건 더 이상 내 시간을 쓸 가치가 없다"며 권한을 모두 내려놓고 나갔다. 수백억 원을 투자한 사람이었다. 넥스트 구글을 찾아가야 하는데 이 회사는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쓸 회사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피터 신 대표는 그 투자자가 이미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곳에서 충분한 수익을 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반대로 한국 VC나 PE에게 투자받은 다른 창업자들은 투자자와 함께 회사를 다시 원상 복구시키는 여정을 밟았다고 그는 전했다. 창업자로서는 전자가 훨씬 마음 아프지만, "이게 자본주의고 이게 실리콘밸리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연고 없는 미국에서 첫 매출을 만드는 법
현실은 결국 세일즈라는 전제에서, 세 사람은 미국에서 첫 고객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이야기했다. 이상훈 CTO는 어사이드의 세일즈가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말했다. PoC 기간이 너무 길었고, 돈을 받고 PoC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지만 "요구사항을 주면 입맛에 맞게 커스텀해 주겠다"는 방식으로 가다 보니 제품이 특정 회사의 요구와 특정 도메인에 점점 빠져드는 문제가 생겼다.
하 대표는 소비재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다른 그림을 그렸다. GDP와 인구 등을 고려하면 미국 고객 한 명의 구매력이 한국의 수십 배쯤 되는 것 같고, 소득이 높은 고객이 많아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용성이 크다고 봤다. 실질적으로 첫 사용자는 레딧에서 모았다. 돈이 없으니 직접 레딧에 들어가 바이럴을 만들자는 판단이었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팔던 피터 신 대표는 브렉스, 야놀자, 카카오페이 같은 기업을 상대하며 YC에서 "만들기 전에 팔라(sell before you make)"는 멘탈리티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는 면이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지금 Outsome에서 액셀러레이팅을 할 때 "없어도 있는 척 해라, 다 만들어졌다고 말하라"고 강조한다고 밝혔다. 비전이 진심인 사람들도 그 경계를 오가며, 실리콘밸리는 이를 관용하고, 그렇게 해서 성공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사례가 있기에 다들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CEO가 발표한 출시 날짜를 엔지니어들이 처음 듣는 경우가 실리콘밸리에 흔하고, YC에도 AI 제품이라며 테스트해 보라고 하면 실제로는 사람이 직접 작업하는 이른바 '휴먼 AI'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주문이 들어오고 돈이 입금된 뒤에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허슬링 멘탈리티라는 것이다.
『오늘 일, 재밌었어』라는 제목 앞에서
대담의 후반부는 이런 허슬 방식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넘어갔다. 영상에서는 『오늘 일, 재밌었어』를 일은 원래 고통이 아니며 즐거움과 성과는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책으로 소개했다.
제목을 들은 이상훈 CTO의 첫 반응은 "나는 재밌었나?"였다. 정말 힘들면 "바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고, 오히려 바쁘다고 말하는 건 가짜 바쁨이라고 할 정도로 일해 왔기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지점이었다고 했다.
하 대표는 "오늘 재밌었어"보다는 "올해 재밌었어"라면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미미박스는 200명 남짓한 조직이 수백만 명의 고객을 상대하므로 한 명이 맡는 고객이 만 단위다. 대표인 자신도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데 구성원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며, 줌아웃해서 지난 3개월 중 하루, 지난 6개월 중 며칠은 재밌는 날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이 고통이라는 것이 편견이라기보다 많은 사람의 실제 경험일 것이라고 봤다. 게다가 AI 이후 고성장 시대가 되면서 지금 YC 배치에서는 주간 성장률이 3%, 5%가 아니라 7%, 9% 수준으로 이야기될 것이고, AI 회사들은 직원당 매출이 일곱에서 여덟 배씩 늘고 있어, 일이 재미있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압박이 성과를 만들었나: 엇갈린 두 경험
피터 신 대표는 압박과 수치 강조만으로 성과가 나왔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하 대표는 어떤 종류의 압박인지가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회사의 퍼포먼스가 좋아야 구성원들도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므로 리더로서 퍼포먼스를 중시한다고 답했다.
이상훈 CTO의 답은 달랐다. YC 기간 어사이드는 압박이 매우 컸다. 그룹 오피스아워에서 어떻게든 초록색을 받아야 한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때 팀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고 개개인의 역량도 발휘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일할 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고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보다 보니 감정이 일에 섞여 들어갔고, "이 말을 하면 또 무슨 소리를 들을까" 하는 생각이 팀 분위기를 짓눌렀다고 한다.
명확함과 예측 가능함: 'Working with Dino' 문서
200명 조직의 분위기를 대표로서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두 가지를 한다고 답했다. 첫째, 연간 목표는 보통 하나이고 그것을 1년 내내 똑같이 말한다. 스스로를 오피스아워처럼 "고장 난 라디오"라고 표현하며, 누구든 자신을 찾아오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고,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둘째, 그의 영어 이름을 딴 'Working with Dino'라는 문서가 있다. 입사하면 주어지는 A4 3~4장 분량의 문서로, 그가 추구하는 것과 추구하지 않는 것이 적혀 있다. 대표로서 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올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함, 다른 하나는 예측 가능함이다. "디노의 오늘 기분이 어떨까"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OKR에도 목표는 하나만 들어 있다. 연 매출액 같은 것이 아니라 매우 미시적인 선행 지표 하나다. 예로 든 것은 한 주력 제품의 판매량으로, 작년에 200만 개를 팔았고 올해 목표는 1천만 개이며 전사가 여기에 정렬돼 있다고 한다. 목표를 하나로 중앙화하니 조직이 더 빨라지고 예측 가능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책이 강조하는 리더의 칭찬과 성과 인정에 대해 묻자, 하 대표는 칭찬이 자신의 약한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칭찬을 많이 받으며 자라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창업자란 사회적으로 하지 말라는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함과 예측 가능함, 그리고 구성원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인정에 대해서는 이른바 '금융 치료'가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답했고, 2분기가 1분기 대비 약 50% 성장해 소액의 보상이 있을 것 같다며 그것이 자신이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에서 '우리가 원하는 제품'으로
이상훈 CTO는 YC 3개월을 "몰아붙여서 단기 성과는 냈지만 오래 못 갔다"고 요약했다. 잘하지 못하는 분야였고, 성과 지표만 바라보며 팀이 공감하지 못하는 기능을 "고객이 만들어 달라고 하니 만들어 주면 돈을 준다"는 분위기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그때 팀은 가장 우울했고, 자신이 그저 코드만 입력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YC 기간에는 몰랐지만 끝나고 나서 깨달은 점이 있다고 했다. YC의 기조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라"였지만, 지금 어사이드는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 분야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려 하니 사용자마다 요구가 달라 제품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몰라 피로감이 컸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면 기준을 스스로 세울 수 있고, 그러면서 모든 일이 재미있어지고 모든 것이 연결됐다고 했다.
YC가 끝난 뒤 주변에서는 YC 포트폴리오가 됐으니 행복하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어사이드 팀에는 오히려 심한 슬럼프가 왔다고 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제품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치우쳤고, 이전 제품을 만들 때와 비교해 팀의 속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방향을 바꿔 나온 것이 지금의 AI 브라우저 어사이드다. 그는 이제 자신이 만든 제품을 직접 쓰고, 사용자 피드백이 계속 들어오며, 자신이 만든 기능을 몇만 명이 쓰는 경험 속에서 제품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제품을 만들었으면 최소한 우리가 써야 하고, 쓰면서 불편한 점과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다. 피드백을 받고 개선하는 사이클이 돌며 제품이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재밌게 일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재미있어지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고 그는 말했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의 퇴사자 이메일 리스트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1천 명이 넘는 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나고 나서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스스로 상상하지 못한 성장을 했을 때였다고 한다. 회사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미션으로 모인 곳인데, 10 정도 성장하리라 예상했던 것이 20, 30, 40이 됐을 때의 시너지가 재미를 줬다는 것이다. 피터 신 대표는 성과나 재미를 너무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점심때 좋은 카페에 가는 것처럼 중간중간 자주 느낄 수 있게 팀을 운영하는 편이 더 재미있게 함께 가는 방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과 삶의 경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해법
마지막 주제는 직함 뒤의 개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이상훈 CTO는 냉정하게 말해 일과 개인 생활을 잘 분리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여자친구와 만나면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무거운 노트북을 늘 들고 다녀 다툼이 많았다. 그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니 일을 해도 재미없고 개인 생활을 해도 재미없다는 점을 위험 신호로 느꼈다. 그래서 집에서는 경계를 허물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되, 밖에 나갔을 때만큼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 하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무실에 있을 때였다. 죽을 때를 떠올려 보면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걸 하는 생각보다 회사에서 그걸 더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그쪽으로 최적화해 거의 주 7일 출근하고, 이 사실을 주변에 명확히 말했다. 이전에는 일과 삶을 모두 통제하려 했지만 휴가를 가면 짜증이 났고, 휴가 직전에는 늘 중요한 일이 생겨 휴가지에서 다투기도 했다. 지금은 아내와 휴가를 각자 따로 간다. 그는 사람마다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다르고, 그것을 찾아가며 자신에게 솔직해지니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됐으며, 대놓고 이야기하자 가족도 인정해 주더라고 말했다.
책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농담에 하 대표는 늘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지금은 K뷰티와 K컬처 붐까지 겹쳐 창업자에게 가장 좋은 때이고, 1을 넣으면 3이 나오는 시기라 재미있다고 했다.
미미박스 초기 이야기도 나왔다. 하 대표는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 특별히 깊이 아는 분야가 없다는 것이라며, 궁금한 분야가 생기면 그 분야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방식으로 배운다고 했다. 당시 데이터와 엔지니어링 쪽에 병목이 많았는데, 초기 엔지니어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월세 없이 자기 집에서 함께 살게 했다. 일상을 같이 보내니 엔지니어링과 데이터에 대해 훨씬 빨리 배웠고, 12시간 근무가 가능해졌으며, 아침을 먹을 때도 일 이야기를 했다. 당시 어린 자녀들이 아침에 일어나 엔지니어들 방에 가면, 듀얼 모니터 한쪽에는 코드가, 다른 쪽에는 핑크퐁 유튜브가 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구성원과 같은 미션을 두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를 만든 것이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에 가야 하는가
마무리 질문은 소프트웨어나 K뷰티로 큰 획을 긋고 싶은 창업자가 미국으로 가야 하느냐였다. 하 대표는 과거에는 미국이나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창업한다면 한국이든 어디든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실리콘밸리 플레이북이 책으로 나올 만큼 배울 곳이 많아 위치와 무관하게 글로벌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으니, 미국에 가서 경험해 보는 것은 하나의 옵션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 시장이 미국인만의 것도, 중국 시장이 중국인만의 것도 아니라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계속 성장한다는 뜻이므로 더 큰 시장에 더 빨리 나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생존법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CTO는 어사이드가 YC를 거치며 미국 회사가 됐으니, 이제는 미국이든 어디든 더 큰 규모로 성장해 전 세계가 자신들의 제품을 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처음 창업한다면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고 보는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프로그램과 교류 기회가 많으며, 무엇보다 유명한 사람들과 한두 번이라도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와 대화의 결이 달라진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미국에서 성공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쓰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피터 신 대표는 두 책을 관통하는 테마를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로 정리했다. 재미있으려면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하고, YC에서 다른 창업자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관계가 중요하며, 실리콘밸리의 페이 포워드 문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시스템을 만들어 온 곳이 미국이고 그 중심이 실리콘밸리라서 페이 포워드 문화가 가장 강한 것 같다며, 먼저 간 이들의 이야기가 YC에 지원하거나 미국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지도가 되어 다음 미미박스, 다음 어사이드가 더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는 말로 대담을 마쳤다.
책 제목이 제일 잘 어울리신 거 같은데.
오늘 재밌었어요.
오늘 재밌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 그 이제 와이프 재미없어. [웃음]
내가 재밌기 위해서 누군가가 재미없어.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까지 재밌을 필요는 [웃음] 없을 텐데.
오버하네, 약간.
안녕하세요. 창업자의 책장을 채우는 시간, 이오서재의 1호 호스트 피터 신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좀 조합이 특이하죠. 각각의 장에서 좀 유명하신 분들이 오셨는데 우리가 오늘 이렇게 세 자리에 모인 이유,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희 모두 다
YC, YC 창업자라는 거죠. 한국인 최초, 한국인 최초 YC 기업의 우리 하형석 대표님 모셨습니다.
YC 1호 그리고 YC의 고인물 미미박스 대표 하형석입니다. 미미박스는 이제 K-뷰티 스타트업이고 저희가 YC의 윈터 14,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에 그 프로그램을 했고요. 지금은 글로벌리 한 200명 정도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고 아까 얘기했던 K-뷰티를 가지고 30개국 정도에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30개국이면 뭐 지구 절반 아니에요?
그렇죠. [웃음]
그리고 또 YC의 뉴비, 최근에 핫한 우리 Aside의 CTO님 이상훈 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Aside 팀에서 CTO를 맡고 있는 이상훈이라고 하고요. 저희는 이제 작년 폴 배치에 들어와서 뉴비입니다. 저희는 이제 일곱 번 만에 YC를 붙어 가지고, YC가 되게 좀 특별한 그런 게 있는데 한번 여러 가지 썰들을 좀 풀어 보면서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6년 차 선배님 그리고 5년 차 후배 이렇게 딱 중간에 있는 윈터 20의 쿼리파이로 YC를 참여했었던 피터 신이라고 하고요.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미국 진출을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제 시청자분들도 되게 궁금하실 텐데 우리가 YC 기업을 한국에서, 미국에서 키워 나갈 때 어떻게 조직을 구성했고 어떤 식으로 우리가 함께 협업하고 일했는지, 워라밸은 또 어떻게 지켜졌는지 이런 대화들을 이 두 책과 같이 한번 얘기해 보도록 할게요.
필름출판사에서 나온 신간 『오늘 일, 재밌었어』 책과 그리고 이오 출판사에서 출판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가지고 오늘 대담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단 첫째 주제로, YC로 사실 우리는 미국을 처음 경험한 거잖아요.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이제 관문을 YC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먼저 일단 YC가 어떤 곳이었는지 우리 형석님부터, 일단 궁금해요.
Y Combinator는 이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고요. 근데 그 당시도 이제 액셀러레이터라는 개념조차 좀 없었어요. 스타트업도 벤처, 막 이런 거였으니까. 저희는 회사가 제일 어려웠을 때 미국 진출을 했어요. 제가 800만 원으로 시작해서 그 2년 차 매출 한 40억까지는 그냥 부트스트래핑했었어요. 그래서 외부 투자를 안 받고 운영하다가 매출은 40억이지만 3천만 원밖에 안 남았으니까 [콧방귀] 아, 미국을 가보자. 미국을 가고 죽자. 실리콘밸리를 가보고 죽자. 왜냐면은 모두의 로망이니까. 그리고 저희도 투자를 받고 싶었지만 문전박대였어요. 뷰티 스타트업, 그런 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한국 VC분들 사이에서. 그래서 YC를 지원했었고 YC에는 저희 같은 소비자 스타트업이 없었으니까
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됐어요. 케빈 헤일이라는 파트너를 알고 있었고 그 파트너가 저희를 적극적으로 추천해 줬었고, 그러면서 됐지, 안 그랬으면은 YC에 들어가기는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YC를 1월에 들어가고 그다음 이제 6개월 정도 있다가 시리즈 A로 저희가 12억 투자를 받으면서 아까 그 3천만 원밖에 안 남았던 돈이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는 자금으로 이어졌죠.
네. 뭐 약간 영화 스토리가 따로 없는. 진짜 자본금이 없는데 장렬하게 전사하자라는 각오로 이제 가신 거고 그렇게 해서 이제 시리즈 A 라운드를 도셨는데, 우리 또 이제 여기 쪽에 앉아 계신 우리 상훈님 같은 경우에는 YC를 지원하는 데 있어서 일곱 번, 무려 일곱 번이나 이렇게 지원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이게 이제 집념인지 아니면 광기인 건지 일단 되게 궁금할 것 같아요.
우선은 창업할 때, 여태 이제 전 직장이나 그런 데서도 한국을 타게팅하는 B2C나 B2B 같은 걸 이제 많이 만들었으니까 이제는 우리 손으로 0에서 1을 만들면서 미국 시장을 한번 이제 도전을 해 보자의 기조는 깔려 있었어요. 사실 첫 번째, 두 번째 떨어질 때는 그래, 뭐 한 번에 붙을 수 없으니까, 아직 제품에 대한 스킬이나 유저도 없고 하니까 그래 얘네들이 떨어뜨릴 명분이 충분하다 느낌으로 그냥 그러려니 했다가 조금씩 이제 떨어지는 게 반복이 되다 보니까 이게 내적으로 화가 나는 거예요. 이게 진짜 우리가 부족한 건가부터 시작해서 점점 이게 집착으로 바뀐 거 같아요.
그래도 이제 YC는 좋았던 거는 면접까지 가서 면접에 떨어진 거는 그래도 나름 이제 떨어진 이유를 알려 줄 때가 있거든요. 여섯 번째 떨어졌을 때는 그 AI 미팅 노트테이커 캐러스로 이제 지원을 했었는데 그때는 너네 제품 다 좋고 정말 좋다. 근데 유저 95%가 한국인이네. 그럼 너네 미국 와서 너네가 뭐 어떻게 할 거야? 뭐 네트워크가 있어? 약간 이런 식으로 해서 떨어진 거예요. 저희가 이제 일곱 번째 Aside로 이제 지원을 할 때는 미국 퍼스트에 마치 한국 느낌을 전혀 내지 않고 돈이 되는 걸로 이제 한번 진짜 해 보자 해 가지고 좀 어느 정도는 선호했던 것 같긴 해요.
맞아요. 사실 약간 공통점들이 있는 게 이제 저희들 셋 팀 다 약간 한국에서는 좀 외면받았다가 오히려 YC에 인정받은 케이스인 거 같고요. 그렇죠.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도 쿼리파이가 사실은 한국에서 투자 라운드를 제대로 클로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YC에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도 저희도 한 번에 돼서 이제 되게 좋았던 경험이었었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일단 대표가 카카오 출신의 개발자고 저는 사업 개발을 글로벌리 하다 보니까 좀 그런 팀의 다이내믹을 좀 많이 본 거 같아요. 지표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리고 아이템 자체가 조금 되게 니치했던 거, 그런 것들이 좀 차별점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제 상훈님 얘기하신 것도 그렇고 일곱 번 이렇게 도전하시면서 정체성을 좀 계속 우리가 버려 가면서 미국에 이제 정착을 하게 되는데, 어쨌든 이제 1세대 YC 파운더로서 진짜 야생이었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좀 못 들어봤을 만한 썰 같은 거 있으면.
네. 면접을 들어갔는데 뭐 폴 그레이엄 앉아 있고 샘 알트만 앉아 있고 폴 부케이트, 지메일 만든 분 앉아 있고 MIT 교수님 앉아 있고 쫙 한 10분 정도 앉아 계셨는데 저희가 그 당시 프로덕트가 이커머스였었는데 저희한테 아마존과 어떻게 경쟁할 거냐라는 게 첫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꽤나 이제 한국인 창업자 스타일로 예상 질문을 가지고 갔었음에도 그 질문은 없었더라고요. 횡설수설을 했는데도 뭐 잘돼서 들어갔었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면접을 보고 나서 저녁에 폴 그레이엄이 전화를 줘요.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딱 떠 가지고 받으면은 아, 나 폴 그레이엄인데, 이거 얼마 투자할 거고 몇 %야.
와우.
그랬고 이제 YC에 지원했었을 때 저희는 한국에서 했어요. 저희가 들어가서는 미국 프로덕트를 만들었어야 됐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법인 전환까지 했었어야 됐고 막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하고 있었었는데 저희가 미국 웹사이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CTO분이 그 당시 계셨을 때 CTO분이 타임라인을 2주로 잡고 있었어요. 2주로 잡고 있었는데 이제 저희 담당 파트너였던 폴 부케이트가 오피스 아워 때 너희 CTO 어디 있어? 그래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 했더니 3일 만에 만들어, 이러고요. 근데 보통 원래 CTO분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다 안 된다고 얘기하시는데 폴 부케이트가 얘기하니까 한 3일 만에 나오더라고요. [웃음]
네. 사흘 만에 나왔고, YC의 오피스를 저희가 딱 3개월 동안 진행하면서 첫 2개월 동안은 회사가 성장을 안 했어요. 2개월 동안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넣었음에도 안 됐고 마지막 3개월째에 먼스 오버 먼스로 66% 성장하면서 저희가 그 당시 YC 안에서 성장률이 제일 빨랐던 거 같아요. 그 50몇 개 중에. 데모데이 때 50개 이상의 VC들이 연락을 줬죠.
제가 일단은 미미박스 대표님하고는 저희가 이제 YC를 막 지원하는 그 와중에 그 당시에 이제 샌프란시스코 거기 이제 스트리트 이름이
미션 스트리트. 미션 스트리트에서 YC 그 오피스 바로 위에 있는
맞아요. 저희가 YC의 정신을 계속 이어가려고 YC와 같은 건물에 계속 사무실 썼어요.
그중에 이제 하나가 저희였고 그래서 이제 그때 이제 항상 좀 많이 배우고 그랬던 기억들도 나고요. 처음에는 정말 이제 같이 막 숙식 같이 하시면서 팀 빌딩도 거기에서 하시면서 이제 개발도 하시고 그랬는데, 이게 진짜 이렇게까지 갈아야 되나? 유니콘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갈려서 만들어야 돼? 이런 것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좀 궁금합니다. 편하게.
우선은 갈아 넣어야 된다는 거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기는 해요. 오피스 아워 때 이제 팀별로 저번 대비 몇 % 성장했어 하면서 이제 달성한 애들은 이제 초록색으로 색칠을 해 주고 달성 못 하면 빨간색으로 색칠을 해 줘 가지고 약간 채찍질 같은 걸 좀 하거든요. 근데 이제 그 애들도 열심히 갈아 넣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릴 데가 없다의 기조가 어느 정도 좀 깔렸던 거 같긴 해요.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엄청 많이 시간을 할애하고 뭐 사실 주말, 쉬는 거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집에만 갇혀 있고 열심히 그냥 만들고 유저 인터뷰하고 그랬던 거 같아요.
저희는 YC 처음 갔을 때 54개의 회사 중에 딱 첫날 인기 투표를 해요. 인기 투표라기보다는 이 회사가 잘될 거 같다, 안 될 거 같다. 그래서 54개 중에 저희가 꼴찌에서 여덟 번째 했거든요. 아직 프리프로덕트 회사보다 순위가 낮은 거예요.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거, 열심히 하자.
빨리빨리 근성.
아, 예.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우선 열심히 하자 해 가지고 주 7일 근무를 도입시키고
와.
그 같이 자고 지내고 토요일 날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쉬고 그래서 주 7일을 그냥 갈아 넣었고요. 근데 뭐 그때가 저 회사가 가장 성장률이 높은 때이기는 했던 거 같아요. 지금 돌이켜서 이제 생각해 보면은 저희도 엄청 고성장했을 때가 있고 저성장했을 때가 있고 역성장했을 때가 있는데 회사가 커질수록 시스템보다는 집중력이 중요한 거 같아요.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를 더 잘하는 회사가 더 빨리 크는 거 같습니다.
YC가 무슨 골이 있길래 그렇게 다들 달려가시는지, 오피스 아워 이런 얘기도 해주셨는데 타임테이블이 있었나요? 아니면 데모데이를 위해서 이렇게 다 같이 그냥 미친 듯이 달려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아마 시대별로 좀 다를 것 같아요. 저희 때는 그 오피스 아워라는 게 있고요. 그러면 오피스 아워는 우리 담당 파트너들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우리의 지난주 성장률을 얘기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와, 뭐 만나서 뭐 인사 이런 거 필요 없고 그냥 3%, 5%, 7%, 우리 지난주 대비 몇 % 성장했냐. 근데 그 드라이함이 엄청난 집중력을 줬던 거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뭐 어떤 파트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 담당 파트너 지정해서 오피스 아워, 뭐 15분짜리도 할 수 있었고 튜즈데이에 저희는 그 같은 배치 디너 있었고요. 저희는 그거 한 번도 안 갔고, 웬즈데이에 성공한 이제 CEO가 와서 설명해 주는 디너, 그것도 안 갔죠. 고도의 집중.
고도의 집중.
아니 우리와 상관없는 얘기니까. 네. 그 이제 에어비앤비 브라이언 체스키가 와서 뭐 얘기하면, 우리 시리얼 만들어서, 그 우리랑 상관없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그거는 안 갔었던 거, 딱 오피스 아워만 갔어요.
그러니까 저희도 에릭 매지스랑 이제 오피스 아워 딱 들어갔는데 첫 번째, 뭐 엄청 질문 이제 할 것들 준비해서 갔는데 이런 거 질문하지 말고 너 그래서 when was the last time you talked to customer? 고객이랑 마지막으로 얘기했던 게 언제야? 정곡을 찔렀어요. 그냥 I mean we do... YC... 그러니까 노노, 이거. 그래서 바로 오피스 아워 끝냈어요. 그 이후에, 그러니까 약간 창업 선배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이거 뭐 투자자도 아니고 창업 선배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깨게 되는 거 같아요.
저희는 사실 오피스 아워보다는 그룹 오피스 아워가 있었어요. 비슷한 걸 하는 애들끼리 모아놨거든요, 저희 배치 때는. 그 애들끼리 이제 원형으로 모여 가지고 자, 회사 하나씩 돌아가면서 얼만큼 성장했고 매출 얼만큼 나왔고 아니면 뭐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다 얘기해라고, 그러면 죽 얘기를 해요. 애들이 막 뭐 5% 성장했고 뭐 저기 했는데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거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갈려야 되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 딱히 뭐 이번에 변화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변화를 계속 줘야 됐고 어떻게든 뭔가 유치를 했어야 됐고 그거에 되게 압박을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오히려.
근데 YC 오피스 아워가 진짜 그 약간 회사 성장의 본질이었던 거 같아요. 지난주 대비 몇 % 성장이냐. 근데 저희가 딱 그 성장에 대한 의미나 아니면은 프레임워크가 희미해지기 시작한 게 투자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였던 거 같아요. 근데 YC는 아까 얘기했던 하나의 질문만 하잖아요. 네가 지난주에 뭘 했는지도 관심 없고 너네 회사가 어떤지도 관심 없는데 성장률만 물어보잖아요. 근데 이제 다른 투자자들과 다양한 색깔의 의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떤 분은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분은 뭘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회사의 집중력이 좀 희미해지는 거 같습니다.
그런 게 되게 성장하는 데 되게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아까 말씀하실 때 아, 근데 YC 프로그램이 꼭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이런 말씀하셨잖아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들은 혹시 궁금하네요. YC 환상이 깨지는 순간들.
YC 이름값은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제품 나올 때마다 얘네 YC 출신이래 약간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일단 써 봐요.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어서 어느 정도 YC 네임드, 약간 그런 혜택은 좀 봤던 거 같고 YC에서 만난 친구들의 혜택도 많이 보는 거 같고, 그러니까 파트너분들이 이제 말씀해 주시는 약간 이제 조언이나 그런 것도 뭐 사실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건 있는 거 같고. 저는 이제 YC 하는 동안에는 사실 잘 몰랐는데 끝나고 났을 때, 그냥 지금에서 이제 느끼는 거지만 YC의 기조 중에 하나는 유저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라라는 기조가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 제 생각은, 지금 사실 제가 만들고 있는 제품은 유저가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거든요. 근데 이렇게 했을 때 오히려, 유저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려고 하니깐 더 피로감이 느껴졌어요. 왜냐면 뭔가 우리가 이쪽 분야에서 뭔가 전문적인 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유저마다 얘기하는 것들이 다 달라서 제품을 어떻게 이제 깎아 내야 되는지의 그런 피로감이 엄청 많았다가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드니까 사실 우리가 그냥 기준을 세우고 우리가 만들면 되잖아요. 오히려 그러면서 모든 일이 재밌어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다 연결이 됐던 거 같아요.
저는 YC 때 저희가 경험했던 게 솔직히 YC에 의지했다기보다 YC가 던져 준 그 질문 하나로 우리 회사가 역대급 성장을 했었던 터라 그거를 왜 더 지키지 못했을까,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미미박스가 이제 10년 넘은 스타트업인데 이제 최근 들어서 또다시 YC 때 같은 성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작년, 재작년. YC에서의 그 내용들을 잘 생각해 보고 그걸 다시 프레임워크로 적용했고 YC 파트너들이 했던 거를 제가 대신하고 우리 리더들에게 주간 성장률을 물어보면서 그 성장률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결국 YC에서 제일 얻을 수 있는 게 어떤 회사의 문화가 되는 하나의 질문을 배우는 게 저는 중요했다고 보고, 그거를 지켰으면 좋았겠다.
맞아요. 이게 팀원분들한테나 이제 코파운더나 뭐 이런 사람들한테 지표를 물어보는 게 참 잔인한 이야기잖아요. 우리 좋은 거 알겠고 우리 열심히 하는 거 알겠는데 그래서 몇 퍼센트? 이걸 이제 얘기해야 되는 거를 어떻게 얘기해야 되고 어떻게 그거를 소통해야 되는지를 YC가 좀 알려 준 거 같아요.
저도 이제 회사가 엄청 잘될 때와 어려워졌을 때 이제 샘 알트만을 한번 찾아간 적이 있어요. 샘 알트만한테 오피스 아워 신청했는데 샘 알트만이 되게 약간, 뭔지 아시죠? 약간 냉정해 보이는. 그래서 딱 만났는데, 이제 인사 딱 안 하고 앉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체크, 딱 그러시는 거예요. 이해했다. 체크. 체크. 그러면 저만 계속 주절주절 얘기하고 있죠. 근데 왜 여기 있어? Why are you here? 그 문제 해결하면 되잖아. 그래서 그런 것들이, 뭐랄까요? 그 아까 얘기했던 되게 그 잔인한 경험이었거든요.
나는 뭔가 내가 되게 힘들고 뭔가 공감받고, 야, 이런 방법도 있어라는 거를 원했지만 결국에는 그 질문을 저에게 되돌려 주면서 네가 해결하면 되잖아. 네가 해결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장기적으로 봤었을 때는 그게 좀 도움이 됐죠.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마음이 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샘 알트만은, 실리콘밸리나 YC가 워낙 프로덕트와 엔지니어링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런 파트너이기보다는 마케팅과 세일즈를 많이 얘기하는 파트너였어요. 네트워킹을 얘기하고, 그리고 항상 판매를 어떻게 하고 있어? 매출 어떻게 내고 있어?라고 물어보는 파트너였지. YC 내부에서는 조금 깊이하는 파트너였고, 근데 결국에는 YC에 오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너무 프로덕트와 엔지니어링 센트릭이어서 그런 분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누군가는 세일즈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마케팅을 생각했었어야 되는데 샘 알트만이 지금 돌이켜 보면은 굉장히 유익한 파트너가
맞아요. 맞아요. 샘 알트만의 주특기가 이렇게 어떤 스타트업이 피칭을 하면 그거를 자신의 버전으로 다시 피칭을 해서 나라면 이렇게 소개할 거 같아라고 하는 것들. 그러니까 스토리텔링이나, 그러니까 사업가들이나 투자자의 마인드셋을 좀 잘 이해하는 그런 파트너였던 거 같아요.
결국에는 머신 러닝도 AI도 오랫동안 연구해 왔지만 모두에게 보급시킨 건 샘 알트만이죠. 근데 그게 그분의 역량을 제일 잘 발휘한 프로덕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만난 파트너들은 한국이랑 좀 다른 느낌인가요? 미국을 가야만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가? 이런 게 좀
일단은 이제 저는 좀 구조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펀드를 운영하는 어떤 자금의 성격이 조금 다른 거 같아요. 미국은 일단 민간 자본으로 운영이 되다 보니까 훨씬 더 일단 성과라든지 아니면 이 산업 섹터에 푹 담가봤던 사람들이 파트너로 역임을 하시는 거 같아요. 그래서 실리콘밸리 기준이면 한 60에서 70%가 다 파운더 출신, 엑시트를 본인이 했던 사람들이 하는 거고, 한국은 조금 더 금융권, 그래서 IPO를 했다든지 그런 금융 상품, 뭐 파생 상품이나 이런 것들을 좀 잘 안다든지. 그래서 약간 이제 후속 단과 초기에서의 어떤 좀 약간 괴리가 있는 거 같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아무래도 여기 오신 이제 파운더분들 같은 경우에 워낙 버텀에 대한, 프레임워크에 대한 갈증이 있으니까 그런 소통을 좀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하면 미국 파트너들이 좀 더 잘 맞죠. 그런데 이제 나중에 이제 저희가 IPO를 준비한다든지 좀 전략적인 어떤 그 돈이 이제 투입돼야 된다, 그럴 때는 어떻게 보면 이런 정책 금융이나 아니면 어떤 또 민간 금융이나 뭐 기업의 금융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그런 스트래티직한 인베스터들은 조금 한국에서도 더 잘 만날 수 있는 거 같고, 뭐 그 정도 차이.
그리고 뭐 되게 기본적으로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차이가 있는데, 미국 파트너들이나 미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나 이런 분들은 정말 이제 내가 아니면 우리 회사가 세상을 구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근데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는 아, 글로벌 진출, 미국 진출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미국분들은 아, 내가 세상을 벌써 구하고 있고 내가 구할 거야. 미국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얘기예요. 당연히 우리가 짱이고 우리가 구하는 건데라고 생각이 있어서,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라면 약간 유니콘을 만들어야 되고 이익을 내야 되고 뭔가 어떤 마일스톤들이, 글로벌 진출해야 된다라고 되어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내 프로덕트가 세상에 이루어져야 되고 네가 세상을 구해야 되고 그리고 우리 세상을 넥스트 챕터로 열어 줘야 된다라는, 그 출발점이 다르니까 아까 질문들이 다 다른 거 같아요. 또 하나는 이제 피치덱들을 보통 보면 한국의 이제 스타트업 피치덱들 보면 이제 투자받을 때 되면 이 회사가 왜 망하지 않을 거냐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많죠.
미국은 딱 하나입니다. What if this goes right? 하나 되면은 우리가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업사이드.
예. 업사이드 하나만 딱 있어서 그 어프로치 자체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아까 얘기했던, 그렇기 때문에 뭐 미국 파트너들이 더 좋다, 한국 파트너들이 안 좋다 이런 건 아니라 그냥 출발점이 다르고 시선이 다릅니다.
저희가 YC 이제 탑 100을 항상 이제 공지했잖아요. 저희가 랭킹이 제일 높았을 때 YC 전체 포트폴리오 14위였거든요. 14위까지 올라갔고, 한국 창업자들이 잘하는 게 아까 얘기했던 갈아 넣어서 1천억짜리 회사까지 진짜 잘하는 거 같아요. 근데 조 단위, 10조 데카콘까지 가는 거에 있어서 미국 창업자들과 한국 창업자들의 차이가 저는 현격히 나는 거 같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거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해 봤었는데 한국에 있는 분들은 미국 가면 아, 물가가 비싸다, 뭐가 너무 비싸다, 인건비가 비싸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미국분들 중에서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이제 저희가 미국에서 사업한 지 10년이 넘었고 저희 전체 매출에 한 6, 70%가 미국에서 나옴에도 불구하고 저 개인적으로 이제 CEO로서 그 마인드 시프트가 좀 어려워요. 미국은 워낙 캐피털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거를 넣었을 때 우리가 열 배가 된다 그러면 계속해서 투자를 하잖아요. 근데 그 큰 눈덩이를 더 크게 굴리는 거에 대한 프랙티스가 아직 저 개인적으로 없는 거 같고, 그거를 배우기가 쉽지 않은 거 같은데 미국에서 어느 정도 시리즈 C 정도 되는 스타트업 CEO들이나 아니면 그 주변의 보드나 코치들은 그거를 되게 잘하는 것 같습니다. 레이터 스테이지에.
맞아요. 약간 샌프란시스코 딱 저는 공항 도착하면 그때부터 뭔가 머리에 뚜껑이 열려 있는 느낌. 상한선이 좀 열려 있다라는 생각을 좀 하게 되는데, 지금 하형석 대표님 얘기하신 것처럼 어쨌든 거기는 창업자가 우주를 향해, 유니콘을 향해 달렸을 때 그 달리는 그 과정을 좀 받아줄 수 있는 시장, 받아줄 수 있는 투자자가 있다라는 게 좀 위안인 거 같아요. 내가 그냥 마음껏 달려도 여기서 내가 떨어지거나 실패하더라도 난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시장이 나를 실패자로 이렇게 오인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다시 재기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좀 있다 보니까 내가 매장당한다든지 내가 파산을 한다든지 이런 상상을 좀 안 하고 그냥 진짜 상한선 없이 그냥 달릴 수 있는 그런 약간 분위기가 형성된 거
보증 없이. [웃음] 연대 보증 없이.
연대보증 없이.
사업당하는 거 없이.
그냥 미국의 자본주의가 다 받아줄게, 약간 요런 느낌이 있어서 페이 포워드도 되는 거 같고 돈을 쓰더라도 좀 더 미국에서 쓰는 것도 뭔가 어필이 되는 거 같고요. 네.
저희가 아까 말씀하신 거 생각나는데, 이것도 약간 형석님 말한 거 비슷하게 뼈아픈 경험인데 저희가 매년 세 배씩 성장하다가 그 중국, 미국 이슈로 한번 성장이 꺾였었어요. 근데 저희 보드에 계셨던 분이 꺾이는 걸 보면서 아, 이거 this is not worth my time. 이거 나의 시간에 그냥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 여기 권한이고 뭐고 다 내려놓을 테니까 나 나갈게, 이러더니 가셨어요. 그때까지 투자하신 그분도 몇백억을 투자하셨던 분인데
미국의 쿨함.
너 아니면은 넥스트 구글을 찾아서 난 가야 되네, 그렇지?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너는 더 이상 나에게 내 시간을 쓸 수 없는 회사야.
네.
그래서 아마 그분은 이제 아마 뭐 오픈AI나 앤트로픽에서 이미 충분한 [웃음] 이제 IR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또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죠.
그렇죠. 그렇죠. 근데 이제 제가 반대 경험을 했던, 이제 뭐 다른 한국 VC나 한국 PE들에 투자받았던 분들은 이제 그걸 다시 원복시켜야 되니까 그 여정이 조금 달랐던 거 같아요.
맞아요.
물론 제가 말했던 전자가 훨씬 창업자로서는 마음이 아프죠. 그 얘기를 듣는 내가. 그렇지만 아, 이게 아까 자본주의고 이게 실리콘밸리구나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결국 지금 저희가 오늘 다루는 책도 그렇고 우리의 현실, 미미박스, Aside 우리의 현실은 사실 세일즈죠.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달러 사인이 필요하죠. 그래서 돈을 못 벌면 생존이 안 되는데 연고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미국에서 첫 번째 고객의 지갑을 어떻게 터셨는지 궁금합니다.
세일즈가 생각보다 저희는 어려웠다고 느끼는 게 이 PoC 기간이 너무 길었어요. 돈을 받고 PoC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약간 이제 너네가 우리한테 요구사항을 주면 우리가 너네 입맛에 맞게 약간 커스텀 같은 거 많이 해 줄게도 했을 때 [콧방귀] 이게 또 어려웠던 거는 제품이 이 회사의 얘기에 점점 이제 빠지니까 특정 도메인이나 그런 데 좀 빠질 수 있는 문제들도 있었고 해서, 저희는 Aside로 세일즈 하는 거 자체가 되게 어려운 행위였던 거 같아요.
대표님 어떠셨습니까?
네. 저희는 뭐 이제 소비재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GDP나 아니면 인구나 모든 거를 고려했었을 때 미국 한 고객의 스펜딩 파워는 한국의 한 수십 배인 거 같아요. 그래서 우선은 그 고객들이 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고객들이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프로덕트에 대한 훨씬 더, 뭐랄까요? 유연성이 있다였고요. 아주 실질적으로 첫 번째 유저들은 저희는 레딧에서 모았던 거 같아요. 돈은 없고 뭔가 바이럴을 내야 되는데 레딧에 들어가서 우리가 직접 바이럴을 하자 해서 그 고객들을 모으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저희는 이제 그 당시에 이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니까 이제 저희가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도 뭐 브렉스라든지 뭐 한국에서 야놀자, 뭐 카카오페이 뭐 이런 데들이다 보니까 저희가 YC에서 배웠던 거는 sell before you make, 약간 멘탈리티. 근데 이게 사실은 리걸과 일리걸의 경계를 약간 왔다 갔다 하잖아요. 그래서 뭐 애플 인텔리전스도 그렇고 없는데 막 있다고 얘기하고. 저는 그런 걸 좀 많이 배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거를 저는 지금 Outsome에서 액셀러레이팅을 할 때도 그런 걸 좀 많이 강조해요. 없어도 있는 척해라. 다 만들어졌다 이렇게 얘기를 해라. 그래서 약간 그런 임기응변, 그러니까 되게 정말 이 프로덕트에 진심이고 비저너리한 사람들도 사실은 리걸과 일리걸의 경계를 좀 왔다 갔다 하면서, 그리고 또 실리콘밸리가 그걸 또 관용해 주고, 그리고 우선 뭐 너무나 성공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으니까 다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있죠.
맞아요.
네. 네. 그리고 뭐 지금도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분들 얘기 들어보면 CEO가 나와서 날짜를 발표하는데 우리는 처음 들었다 이런 분들 많잖아요. [웃음]
맞아요. 팀 쿡이 나와서 뭔가 날짜를 박으면 아, 우리가 그때 맞춰야 되는구나라는 문화가 아직까지 있어서, 사실 AI도 그렇고 YC에서 이미 AI가 있었어요. 휴먼 AI가. 그래서 우리 AI 제품 나왔는데 한번 테스트해 봐라 그러면 휴먼이 직접 작업하고 이런 스토리들이 너무 많고, 그래서 일단 주문이 들어오고 계좌 이체가 되면 그때 쇼핑해도 늦지 않는다, 뭐 그런 것들
맞아요.
그런 허슬링 멘탈리티가 있겠죠.
그렇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스타트업의 허슬, 성장, 성과도 중요하지만 이 방식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오늘 함께 소개하는 『오늘 일, 재밌었어』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화이자가 선택한 조직문화 전문가 브리그루프는 이 책에서 말합니다. 일은 원래 고통이 아니다. 즐거움과 성과는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다. 이 책은 팀원별 몰입 방식을 파악하는 법, 회의 후과를 인정하는 리더의 한마디, 위기 상황에서 팀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방법, 번아웃 없이 일과 삶을 지키는 루틴까지, 과로 없이 몰입하고 번아웃 없이 성과 내는 팀의 일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안합니다. 오늘도 버티는 팀에서 오늘 일 재밌었다고 말하는 팀으로 가고 싶은 분들이라면 『오늘 일, 재밌었어』를 꼭 확인해 보세요.
좋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제 좀 자연스럽게 우리가 두 번째 책에 대해서 얘기를 좀 나눠 보려고 합니다. 사실 실리콘밸리 하면 이제 허슬링 문화, 996, 정말 쉬지 않고 번아웃 오는 VC들, 파운더들 진짜 많죠. 각자마다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좀 가져가시는 느낌이나 이런 게 좀 다를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공감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저 『오늘 일, 재밌었어』라는 저 제목을 들었을 때 나 재밌었나라는 생각이 먼저 일단 들었고요. 매일매일 일이 재밌나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도 이 사람이 진짜 힘들면 아, 나 바빠요 이런 얘기도 안 나오잖아요. 오히려 나 바빠요라고 하면 약간 가짜 바쁨이다, 약간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정도로, 여태 일을 하면서 그냥 잘 생각을 좀 하지 않았던 포인트였던 거 같아요.
이제 오늘 일 하면은 재밌을 것 같지 않고요. 근데 이제 올해 재밌었어라고 하면 좀 공감이 될 거 같아요. 왜냐면은 다들 하루하루는 좀 힘들지만 재밌었던 포인트가 있었을 거 같고, 그리고 제가 회사 내에서도 자주 하는 얘기가 저희가 약간 200명 남짓한 조직인데 저희가 서비스하고 있는 고객은 몇백만 명이거든요. 그러면 한 명당 맡아야 되는 고객 수가 만 단위죠. 만 단위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저도 쉽지 않은데 구성원들은 더 어려울 것이지만 조금 약간 줌아웃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줌아웃했었을 때 지난 3개월 중에 하루가 재밌는 날이 있었고 지난 6개월 중에 며칠이 재밌는 날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힘들어 이런 얘기를 좀 계속 이제 잘하면서 듣다 보니까 그게 당연히 이제 회사에서도 뭐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근데 이 책이 사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일은 원래 고통이다, 그 편견을 깨자.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즐기면서 재밌게 해야 된다. 약간 이런 게 좀 확장된 거 같은데 이렇게 좀 열심히 하면서도 재밌게 하고 이런 것들이 좀 가능할까요?
저는 편견이라기보다는 많은 분들의 경험이 하루하루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AI가 들어오면서 더 고성장 시대가 된 이때에, 아까 얘기했던 주간, 이제 YC 배치 가면은 3%, 5%가 아니라 아마 7%, 9% 이렇게 얘기할 거거든요. 최근 뭐 AI 회사들 보면은 직원당 매출도 뭐 일곱 배, 여덟 배씩 늘기 시작했으니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 약간 관점을 바꿔서 정말 우리가 이제 투자 라운드를 돈다든지 마일스톤을 찍고 달릴 때 압박, 압박, 압박만 해서 사실은 성과가 나왔는지도 사실 좀 궁금하기도 해요. 압박하고 뭔가 이렇게 좀 딱 정해서 수치로만 좀 강조해 가지고 달렸을 때, 그럴 때 좀 부작용도 있었을 것 같은데 두 분 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떤 종류의 압박일까가 되게 중요한 거 같은데, 저는 회사의 퍼포먼스가 되게 중요하지 않나? 회사가 퍼포먼스가 좋으면은 그만큼 구성원들이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게 리더로서 좀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YC 했을 때 Aside는 압박이 되게 많기는 했어요. 왜냐면 당연히 이제 그룹 오피스 아워 같은 거 할 때라던가 그럴 때 어떻게든 우리는 연두색을 만들어야 된다. 막 온갖 걸 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 하는데 그때가 진짜 오히려 팀의 생산성도 많이 저하됐던 거 같고 개개인의 역량이 다 발휘되지 못했던 시기였던 거 같고, 오히려 그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잖아요. 근데 그게 생각보다, 사람이 일을 할 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된다 생각은 하지만 이게 쌓인 게 많다 보니까, 그리고 한 곳에서 계속 얼굴을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는 데 감정
같은 게 좀 섞여 들어가서 오히려 더 팀 분위기라던가, 아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또는 이걸 하면 무슨 소리를 또 들을까,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되게 좀 들었던 거 같아요 저는.
방금 분위기 얘기하셨는데, 아마 조직이 더 커지고 100명, 200명이 되면 진짜 대표의 그날그날의 컨디션도 되게 중요하고, 대표로서 그 회사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들이 되게 중요한데, 그래도 큰 조직을 지금 이끌고 계시니까 어떻게 푸시나요?
제가 딱 대표로서 두 가지를 하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는 저희가 연간의 목표는 보통 하나이거든요. 그래서 그 목표를 1년 내내 얘기한다. 똑같이. 그래서 거의 오피스 아웃처럼 고장 난 라디오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오시면 제가 무슨 얘기를 할지 모두가 알고 있어요.
와.
그래서 저한테 오지 않으셔도 안다, 라는 게 있고요. 두 번째는 디노와 일하는 방법. 제가 영어 이름이 디노인데 Working with 디노라는 파일이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 입사하면 그 파일이 주어지고 저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이 다 적혀 있어요. A4용지 한 세네 장 정도인데, 내가 추구하는 거, 내가 추구하지 않는 게 적혀 있어서. 아까 얘기했던 그 대표로서 추구하는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명확함, 우리가 올해 뭘 해야 되는지. 두 번째는 예측 가능함. 디노는 오늘 감정이 어떨까에 대해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제 OKR도 그거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올해 딱 이거 하나. 그래서 그게 올해 매출액 얼마 이런 게 아니라 굉장히 마이크로 레벨로 선행 지표 하나가 딱 들어가 있고요.
그 혹시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예를 들어 저희는 주력 제품 중에 눈이 리보일이라는 게 있는데, 그거 올해 1천만 개 판매가 저의 목표이고, 작년에 200만 개 팔았고 올해 천만 개 판매이고, 전사가 거기에 다 일치화되어 있게 합니다. 그래서 다들 저에게 오지 않아도 그걸 알도록 하는 게 제 나름대로는 시스템입니다. 근데 하나로 센트럴라이즈시키니까 조직이 더 빨라졌고 예측 가능해졌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아, 오늘 이렇게 대표님 얘기하시는데 약간 중음의 목소리 톤이 너무 일단 힐링이 되는, 그런 안정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요즘 사실 이 책도 그렇고 안정형 리더가 되게 대세예요. 안정형 리더의 어떻게 보면 표본 같은 답변들을 해 주신 거 같아요. 혹시 답안지를 읽고 오신 건 아니시죠? 아닙니다. [웃음] 그래서 여기에서, 이 책에서 딱 꼬집어서 두 가지를 얘기하더라고요. 첫 번째, 리더는 칭찬을 잘해야 된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성과를 잘 인정해 줘야 된다. 이런 것들을 좀 부각시켜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대표님은 그 안에서의 두 가지 팁이 혹시 있으신지, 실무적인.
제가 아까 약한 부분이 칭찬인 거 같고요. 그렇게 칭찬을 많이 받고 크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사회적으로 벌써 창업자라는 거 자체가 하지 말라는 걸 한 사람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까 얘기로 다시 돌아가지만, 저는 제가 딱 할 수 있는 게, 칭찬도 잘 못하고 다 못하지만, 명확함과 그리고 예측 가능함. 그리고 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조직이 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성과 인정 요런 것도 혹시 팁 있나요? [콧방귀] 금융 치료 뭐 이런 건가요?
그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네. 네.
이게 나가는 시점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2분기가 1분기 대비 한 50% 성장했는데, 아주 소액의 금융 치료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제가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거인 거 같아요.
네. 이 질문은 사실 상훈님이 좀 더 공감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 가장 최근에 어쨌든 YC 투자를 받으셔서 지금 사실 데스밸리를 지나가고 있으신 단계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허슬링을 해야 되고 또 몰아붙여야 되고 그런 상황인데, 단기간 성과는 냈지만 좀 오래 못 간 그런 경험들, 이런 것들을 토대로 어떻게 업무하는 방식을 바꾸셨는지, 요런 것들도 혹시 경험담이 있으신지.
일단 YC에서 Aside를 만들 때 그 3개월이 그냥 몰아붙여서 단기 성과는 냈지만 그냥 오래 못 갔다로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어쨌든 저희가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잘 못하는 영역이기도 했고 분야이기도 했고, 그리고 너무 성과 중심으로 지표만을 바라보고, 우리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그냥 고객이 이거 만들어 주세요 하니까 만들어 주면 돈을 준다는 약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만들었던 케이스들이 생각보다 많다 보니까, 그때가 제일 팀에서 약간 우울하고 코드만 그냥 입력하는 사람인 거 같고,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 브라우저를 만들면서 느끼는 건 일단 제품을 만들었으면 우리가 최소한 써야 된다인 거 같고, 우리가 써야, 내가 쓰면서 내가 불편하고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위주로 약간 찾아서 하는 느낌으로 바꾸다 보니까 오히려 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하나의 분명한 골, YC에서도 추구하는 그런 집중, 이런 모든 것들이 사실 자율성, 그리고 뭔가 본인이 직접 틀을 깨서 어떤 업무를 추진하는 거, 이런 것들의 문화를 강조하는 그런 업무 프레임워크 같은데, 결국엔 이런 것들도 저희가 동료들이랑 터놓고 얘기하는 그런 문화가 자리 잡아야 되고, 사실 이런 문화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한국에선 특히 우리 재밌게 일하자라고 하면 그냥 일을 좀 대충할 수도 있는 그런 어떤 날로 우리가 핑곗거리로 삼기도 하는데, 이런 온도 차를 혹시 좁혀내는 그런 방법들이 있을까요?
저희는 졸업자 이메일 리스트도 있거든요. 그래서 미미박스에 현직자도 있지만 졸업자 이메일 리스트가 지금 1천 명이 넘는데
와.
이분들과 얘기해 보면 지나서 가장 재밌었던 경험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성장을 했었을 때였던 거 같아요. 회사라는 조직 자체가 여러 명이 하나의 미션으로 모이는 거잖아요. 근데 그 미션에서 내가 10 정도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20, 30, 40이 됐었을 때, 그 시너지가 그 재미를 줬던 거 같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현직자나 과거 퇴사자 인터뷰하면 아 너무나 그때 성장이 재밌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저희도 비슷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사실 YC 끝나고 나면, 너네는 어쨌든 YC 포트폴리오니까 행복하지 않니, 알아주지 않니, 좋지 않니, 이런 질문들을 되게 많이 받았지만, 저희 팀은 오히려 YC 끝나고 나서 팀 자체에 그냥 슬럼프가 엄청 빡세게 왔던 것 같아요. 왜냐면 어떻게든 이 Aside를, 돈을 못 버는데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느낌에 너무 치우쳐 있었고, 이거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옛날에 캐 만들 때랑 비교를 했을 때 팀의 속도가 너무 저하된 게 느껴져서 오히려 진짜 재미없다였고. YC에서는 유저들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라였지만, 저희는 그걸 바꿔서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자로 바꿨잖아요. 그거로 바꾸면서 나온 게 AI 브라우저 Aside인데, 이걸 만드는 지금 자체가, 제가 내가 만든 제품을 쓰기도 하고 유저의 피드백이 계속 들어오니까 아까 제품이 살아 있다라는 느낌도 많이 들고 해서, 자연스럽게 그 재미가 저는 오히려 지금이 더 느껴지는 거 같아요.
정말 빌더, 개발자분들이 자기가 상상하는 그런 것들을 만들면서, 그것들을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스레드나 되게 바이럴 잘 되고 있죠. 그 창조의 과정에서 정말 재미를 느끼고 계시
그런 거 같아요. 유저가 실제로 생기고 내가 만든 기능을 몇만 명의 사람이 쓰니까 그냥 그 행위 자체가 조금씩 즐거워지는 거예요. 깨끗이 많고 피드백 오고, 이게 계속 개선하는 사이클을 계속해서 하면서 실제 제품이 나아지고 있다라는 그 확신이 좀 들면, 자연스럽게 재밌게 일하자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그냥 재밌어지는 느낌이 드는 거 같기는 해요.
저도 이 질문 좀 고민해 봤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어떤 성과라든지 어떤 재미나 이런 것들을 너무 나중에 주진 않는, 그러니까 약간 틈틈이 뭐 잠깐 점심을 먹을 때 좀 좋은 카페를 간다든지, 아니면 중간중간에 뭔가 좀 자주 느낄 수 있게끔 그런 식으로 팀을 운영할 때 조금 더 재밌게 같이 갈 수 있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미미박스의 하형석이라는 사람 이면에 하형석이라는 사람이 있고요. Aside의 이상훈 CTO라는 사람 이면에 이상훈이라는 사람이 있고, 저 역시도 Outsome의 피터 신 이외에 육아를 하고 뭔가 삶을 살아가는 제가 있는 건데, 그런 삶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하고 마무리를 지어 볼까 합니다. 두 분 같은 경우는 일과 삶을 좀 나누는 그런 류의 파운더이신지, 보통 루틴이나 이런 것들 어떻게 가져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개인적으로 일이랑 개인적인 생활과 분리를 잘하냐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냉정하게 말하면 거 같아요. 사실 그것 때문에 여자 친구랑도 많이 다툼이 있었고, 너는 왜 나를 만나면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냐, 왜 항상 무겁게 노트북을 들고 다니냐, 약간 이런 느낌을 많이 답도 있고 했는데, 저도 이게 되게 위험 시그널이라고 느꼈거든요. 왜냐면 일이랑 개인적인 삶이랑 분리가 안 돼 있으니까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개인적인 삶을 해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명확히 기준을 세운 게, 집에서는 일이랑 개인적인 그거랑 경계를 허물지는 못할 거라고 이미 인정을 했고, 최소한 밖에 나갔을 때는 온전히 옆에 있는 사람한테만 집중하자라는 기준을 세워서 그렇게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가족도 있고, 그러면서 많은 고민의 시기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미미박스도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무실에 있을 때이더라고요.
네. 그래서 헛쌤이 되게 명확하네요. [웃음] 네. 우리 대표님 유니콘 무조건 갑니다. 대표님 무조건 가요. [웃음] 무조건.
그래서 그거를 주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얘기했어요. 죽을 때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까라고 생각하면, 아 내가 회사에서 그거 더 해 볼걸, 이런 거 더 해 볼걸, 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예 그걸로 최적화시켰고요. 거의 주 7일 출근을 하고, 근데 그게 저 자신에게도 뭔가 나를 받아들이는 게 됐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전에는 컨트롤을 하려고 두 개를 해 보니까 휴가 가서 짜증이 나더라고요.
이것도 공감하죠.
그죠?
휴가 가서 싸워요. 휴가 가서 싸우고.
휴가 가기 전에 항상 뭔가 되게 중요한 일이 있고.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이제는, 저 가족이 있지만 와이프와도 휴가를 각자 따로 갑니다. 네. 그래서 제가 혼자 휴가를 가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야, 이거는 경외심이 좀 드네요.
근데 아까 얘기했던 대로 모두가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이 다를 텐데,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좀 있었고, 그걸 찾아가고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니까 훨씬 더. 근데 제가 아예 그렇게 가족한테 얘기하니까 가족도 그걸 인정하더라고요, 아예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면. 그래서 그게 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 책 제목이 제일 잘 어울리시는 거 같은데요?
아, 오늘 재밌었어?
오늘 재밌었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 그 와이프는 재미없을 [웃음] 내가 재밌게 해서 누군가가 재미 [웃음] 책의 저자는 이렇게까지 재밌을 필요는 없을 텐데, 약간 그런 고민.
오버하네 약간.
이게 항상 재밌진 않았고요. 그러니까 지금이 창업자로서, 아니면 모든 스타트업으로서 가장 좋은 때잖아요. 저희 같은 경우는 K-뷰티의 붐까지 있죠. K-컬처의 붐이 있죠. 그러니까
이때도 저하죠.
그죠? 이게 생각보다 내가 1의 인풋을 넣어도 3이 나오는 때여서 재밌는 때인 거 같습니다.
와, 투자자 입장에서 정말 [웃음] 믿고 자본을 맡겼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대표님의 어떤.
계좌번호 보내 드릴게요.
네. [웃음]
저희가 일 없는가요? 좋습니다. 그 초기에 고금 분토 하셨던 그런 이야기 저 되게 감명 깊게 들었었거든요. 그 얘기도 혹시 조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 어떤
미미박스의 초기 시절.
그러니까 저의 가장 큰, 뭐랄까요, 장점이자 단점이 제가 특별하게 잘하는 게 없습니다. 한 분야를 되게 깊게 알거나 한 분야를 잘하는 게 없는데, 제가 궁금한 분야가 있으면 대부분 그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으로 하는데요. 그 당시에 저희 회사의 데이터 팀이나 아니면 엔지니어링 팀에 대한 보틀넥들이 많았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 초기 엔지니어분들하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분들을 저희 집에서 다 같이 살게 했어요. 그래서 렌트를 받지 않고 그분들과 그냥 일상을 지내니까 훨씬 더 되게 빨리 배웠던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저도 엔지니어링에 대해서 더 알게 됐고 데이터에 대해서 더 알게 됐고, 그리고 12시간 근무가 가능해졌고, 그리고 밥 먹을 때도 일 얘기를 하게 되고 아침 먹을 때도 일 얘기를 하게 돼서.
뭐 육아도 이렇게 분담하셨다는 얘기들.
그렇죠. 그렇죠. 저희 애들이 그 당시 아기들이 있었는데, 일어나자마자 3천방에 가면 그 엔지니어분들 항상 듀얼 스크린이 있으시니까 한쪽에는 코드가 떠 있고 다른 쪽에 유튜브를 띄워서, 아 핑크퐁이, 네네 그렇죠, 아기들을 봐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웃음] 그래서 어떤 회사와 구성원으로서 같은 미션을 가지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게 되게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회사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 저는 대표님이 사실 되게 정말 관계 중심적이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제가 이렇게 커피챗 하거나, 그 당시에 FF에 있을 때도 제일 바쁘실 때도 연락도 받아 주시고, 그래서 저도 이 자리에 오늘 있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되게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는 그런 또 에피소드들이 좀 많았던 거 같아요.
오늘 두 권의 책,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우리가 관통하는 하나의 어떤 테마가 있다라고 하면, 어떻게 보면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재밌으려면 다른 사람하고 나눠야 되고, 우리가 같이 창업가로서 YC를 가면서 다른 창업자들이랑 이렇게 같이 했던 것처럼 관계의 중요성, 이런 것들이 둘 다 좀 강조되는 거 같고, 어떻게 보면 실리콘밸리의 사실 가장 큰 문화 중에 하나인 페이 포워드도 그런 관계의 어떤 연장선에서 나온 프레임워크라고 생각을 하고요. 또 이렇게 대표님이 지금 시간을 내 주셔서, 또는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내서 독자분들이나 시청자분들한테 우리의 프레임워크를 나누는 것처럼, 먼저 간 사람들이 이렇게 좀 자리를 이끌어 주고 미국 진출이나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때 도와주는 거, 이런 것들이 사실은 좀 더 중요할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일단 되게 궁금할 거는, 미국 진출하는 게 나을까? 나는 이런 꿈이 있고 소프트웨어로 또는 K-뷰티로 큰 획을 긋고 싶은데 미국으로 나가는 게 맞을까요? 일단은 대선배님이신 형석 대표님한테 먼저. 좋습니다.
네. 과거에는 미국으로 가야지, 아니면 글로벌로 가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만약에 제가 창업한다고 하면, 지금은 한국에서든 어디서든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플레이북도 책으로 나와 있는 것처럼 너무나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실질적으로 나의 로케이션과 상관없이 저는 글로벌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다라고 생각해서, 미국을 가보고 경험해 보는 것도 옵션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미국 시장도 미국 사람의 것이 아니고 중국 시장도 중국 사람의 것이 아니잖아요. 근데 살아남는다라는 거는 계속해서 성장할 때 살아남는 거니까, 더 큰 시장에 더 빨리 나가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그래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게 제 생각에 살아남는 방법이지 않을까?
예. 상훈님은 또 미국에 진출하는 스타트업들, 한 말씀하시면.
저는 어쨌든 미국 회사가 작년에 마이시를 하면서 됐으니까, 저는 다음 목표는 미국이든 어디든 어쨌든 이제는 더 덩치가 커지자에 좀 더 초점이 되어 있어서, 저희가 만든 제품 자체를 전 세계적으로 다 썼으면 좋겠다라는 엄청난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실 저는 한국뿐만 아니라 그냥 다른 나라도 상관은 없다고 하지만, 창업을 처음 한다고 하면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일단 인프라가 되게 잘 깔려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미국은 되게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많고 교류 같은 거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랑 한두 번쯤 얘기를 했을 때와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때랑 그 얘기하는 결의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기회가 되면 미국에서 시작해 가지고 확장하는 게 제일 좋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대박이 나면 다른 나라에서도 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그런 관점에서는 좀 더 미국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실리콘밸리 문화의 핵심에도 어떻게 보면 미국에 넘어왔던 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이런 자본주의나 법치주의나 이런 것들이 만들어졌죠. 그래서 멜팅 팟 안에서 시스템으로 결합돼서 이렇게 나아가는 그런 국가가 미국이고, 그 중앙에 있는 게 실리콘밸리라서 결국에 페이 포워드 문화가 제일 강한 거 같아요. 오늘 이 대화 자체가 이 영상을 보시는 누군가한테는, YC를 지원하는 사람, 미국을 진출하는 사람, K-뷰티를 만드는 사람,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지도,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먼저 간 우리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기 때문에 넥스트 미미박스가 나오고 넥스트 Aside가 더 빠른 시일 내에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오늘 일, 재밌었어』 그리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 이렇게 두 가지 책으로 오늘의 이오서재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들, 하우투, 그다음에 실전 팁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서 그 궁금증을 해결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또 시간 내주신 우리 대표님, 우리 YC 자주 또 모이시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인사드리겠습니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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