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창업가가 미국에서 15명으로 순매출 150억 원을 만든 과정: 애드쉴드 유주원 대표의 이야기

YouTube에서 열기 ↗
개요

애드쉴드(Ad-Shield)는 웹사이트가 애드블록 때문에 잃는 광고 매출을 복구해 주는 '애드블록 리커버리' 솔루션을 만든다. 유주원 대표는 대학에 가지 않고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두 번의 실패와 구조조정을 거쳐 미국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 영상에서 유 대표와 초기 투자자인 베이스의 신윤호 대표는 그 과정을 되짚는다. 중심 질문은 '적은 인원으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며, 유 대표의 답은 타협 없는 인재 밀도와 소수정예 구조다.

9 분 분량

현재의 성과와 다음 목표

유 대표에 따르면 애드쉴드가 미국 진출을 시작했을 때 한국 매출은 월 1천만 원 정도였다. 2024년에 미국 진출을 시작하면서 미국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었고, 2025년 말에는 15명으로 순매출 약 150억 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인원이 20명 정도로 늘었다. 1인당 약 40억 원의 손실을 복구했고, 1인당 순매출은 약 10억 원이라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다음 목표는 30명으로 연 500억 원 규모를 내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유 대표는 이때 기업가치를 약 1조 원으로 예상했다. 이 목표가 30명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근거로 커서(Cursor) 같은 팀을 들었다. 적은 인원으로 엄청난 매출을 내는 사례가 이미 있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지금보다 10배 정도 성장하면 목표에 닿을 수 있고, 이를 위한 파이프라인과 수요도 충분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킹, 디미고, 그리고 대학 대신 택한 일

유 대표는 "하지 말라는 걸 하는 게 제일 재밌다"고 말한다. 중학생 때 우연히 해킹을 접했는데, 원래 못 하던 일을 해킹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그 길을 따라 디미고에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 그곳에서 천재 같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유 대표가 특히 떠올린 사람은 동기 효준이다. 그는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Y Combinator를 거친 팀의 대표가 되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이뤄내는 친구들을 보며 유 대표는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뛰어났던 동기들도 결국 대부분 대학에 갔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은 유 대표 거의 혼자였다. 좋은 커리어를 쌓은 개발자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을 때도 모두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 대표는 빨리 성장하려면 회사에 들어가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는 편이 낫고 학위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는데 왜 4년을 학위에 써야 하느냐는 생각이었다.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했고, 학교 선생님이 찾아와 말리기까지 했다. 유 대표는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아이였다고 스스로를 설명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프리랜서로 일했고, 이후 작은 앱 개발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경력 없는 고등학생이라 좋은 처우는 기대할 수 없었고, 월급은 1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학교는 안산, 회사는 서초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로 서초까지 가서 밤새 일하고, 새벽 4시 첫차로 안산에 돌아와 다시 수업을 듣는 생활을 반복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들은 대학이라는 안전한 선택지를 택했다. 유 대표는 창업에 뛰어든 만큼 "여기서 홈런을 쳐야 한다, 이걸 성공시키지 않으면 돌아갈 데가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회상한다. 초기에는 월 30만 원 정도의 고시원에서 지냈다. 시설이 열악했고, 밤에 소리를 지르는 이웃도 있었다. 그런 환경이 오히려 독기를 키웠고, 어떻게든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시간이 아까워 끼니는 편의점이나 라면으로 때웠다. 그때 라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은 1년에 한 번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만큼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마음이 강했던 시기였다.

첫 성공: 우회 앱과 유튜브 애드블록

2019년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시행하자, 유 대표는 며칠 만에 이를 우회하는 앱을 만들어 출시했다. 다운로드가 빠르게 늘었고, 몇 달 만에 사용자 약 100만 명을 모았다. 유 대표는 이때를 짜릿한 경험으로 기억한다.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기능 요청이 들어왔고, 그중 하나가 애드블록이었다. 당시 다른 애드블록은 웹 광고는 차단해도 유튜브 앱 광고는 지우지 못했다. 유 대표 팀은 유튜브 앱 광고까지 지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출시했고, 첫 달 매출이 약 2억 원 나왔다. 유 대표는 이것을 지금 여정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이제는 멈추셔도 될 것 같다": 투자자의 개입

그러나 첫 달 2억 원 이후로는 의미 있는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유튜브가 약관을 바꿔 해당 앱을 쓰면 유튜브 계정이 제한될 수 있게 되었고, 사업을 키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드블록 서비스를 2년쯤 운영했을 무렵, 유 대표는 신윤호 대표와 미팅룸에서 남은 자금이 적힌 엑셀 시트를 함께 봤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런웨이가 몇 달밖에 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신 대표는 "이제는 멈추셔도 될 것 같다, 그 정도 노력을 했다면 맞는 방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스스로 멈추고 싶어서 멈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첫 창업이라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될 때까지 밀어붙이려 했다. 신 대표도 당시 유 대표가 무척 좌절했다고 기억한다. 신 대표는 이것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내 프로덕트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어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럼에도 유 대표는 제품을 계속 개선해 어떻게든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신 대표는 처음 투자할 때 특정 제품이나 아이템의 성공만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이 창업자라면 많은 시도 끝에 결국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유 대표가 한 제품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아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고 한다. 유 대표는 이 대화를 이렇게 해석했다. 신 대표는 마지막 총알이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 총알을 계속 밀어붙이는 데 쓸지 방향을 바꾸는 데 쓸지 결정하라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었고, 꽤 부서지는 느낌이었다고 유 대표는 말한다.

신 대표는 그때 사업 성공에 필요한 세 가지로 대표의 열정, 돈, 사람을 꼽았다. 그리고 유 대표에게는 열정이 남아 있고 초기 팀도 단단하니 새로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신 대표는 영상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회사는 생각보다 잘 망하지 않고, 회사가 망하는 이유는 대표가 포기하는 것 하나뿐이다. 그 전까지는 절대 끝나지 않는 게임이다. 멈추자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첫째, 유 대표는 젊어서 이 사업이 아니어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투자자라는 이유로 그 길을 막을 권리는 없다. 둘째, 대표가 포기하지 않는 한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

새벽 2시 한강에서 떠올린 '반대편'

전환의 아이디어는 새벽 2시쯤 한강을 걷다가 떠올랐다. "반대를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따져 보니 반대편, 즉 광고를 게재하는 매체 쪽의 문제가 더 컸다. 미국 주요 언론사 사이트에 들어가면 애드블록을 꺼 달라는 팝업이 많이 떴다. 유 대표는 애드블록 때문에 연간 300조 원 규모의 돈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고, 오히려 반대편에 시장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유 대표는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새벽에 초기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어 깨웠다. "이거 해보면 어떠냐, 될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애드블록을 만들며 쌓은 이해와 기술적 배경이 반대편에서 빛을 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를 다듬은 뒤 다음 날 팀을 설득했고, 그렇게 애드쉴드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위기와 구조조정

애드쉴드도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유 대표에 따르면 시작 후 1년 동안 매출을 만들지 못했고, 돈이 다시 떨어져 가면서 또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은 기존 제품을 접고 핵심 인력 5~6명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했다. 그리고 매체가 만족할 만한 적정 복구율을 내면서 연동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자 고객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이 경험에서 소수정예에 대한 철학이 생겼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사람은 늘렸지만 회사가 그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구조조정 이후 빠르게 움직여 회사를 살려내는 과정을 겪으면서, 소수정예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한국 매출 월 1천만 원에서 미국으로

애드쉴드의 한국 매출은 몇 년 동안 월 1천만 원 수준에 머물렀다. 유 대표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매출을 의미 있게 올리기 어렵다고 느꼈다. 애드블록 사용자도 대부분 해외에 있었기에 어떻게든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혼자 무작정 미국에서 시작하면 영어부터 배우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영어와 세일즈 역량을 갖춘 코파운더를 찾기로 했다.

그렇게 합류한 사람이 더스틴이다. 유 대표에 따르면 더스틴은 애드쉴드가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합류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잘 몰랐기 때문에 온 것 같다고 유 대표는 덧붙인다. 더스틴은 1년이면 매출 100억 원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다. 실제로는 처음 2년 동안 매출을 전혀 내지 못했고, 스타트업의 언어와 일하는 방식을 익히는 데도 2년 정도가 걸렸다. 지금은 미국에서 세일즈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고, 덕분에 현재의 성과가 가능했다고 유 대표는 말한다.

"매출이 다 미국에서 나오는데 왜 한국에 계시냐"

미국 매출이 생긴 뒤에도 유 대표는 한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그러자 신 대표가 유 대표를 불러 매출이 다 미국에서 나오는데 왜 대표가 한국에 있느냐며, 당장 미국으로 가라고 했다. 유 대표는 망설였다. 회사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데 미국에 가면 비용이 많이 들고, 영어도 안 되는 자신이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신 대표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고, 유 대표는 그때부터 미국에 계속 머물고 있다.

신 대표는 당시 판단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에는 시장이 없다는 것이 검증되었고, 미국에서는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았는데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월 1천만 원, 혹은 월 3~4천만 원 정도의 매출은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창업자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안정감이 성장에는 큰 허들이 되곤 한다. 그래서 딱 먹고살 만해진 시점에 누군가는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신 대표는 투자자로서 솔직히 푸시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 대표가 2주도 안 되어 이미 미국에 가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스타벅스 주문도 어려웠던 미국 생활

유 대표는 미국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 건너갔을 때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것도 어려웠다.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성과도 없었고 '현타'가 많이 왔다. 한국에서는 팀원들이 고생하며 제품을 만드는데, 대표는 미국에서 영어도 안 되는 채로 헛수고를 하고 있었다. 고객을 만나려 해도 잘 만나지지 않았고, 약속은 취소되고, 무시당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꾸준히 했다. 처음에는 미팅이라기보다 무작정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수준이었다. 영어를 늘리려고 루마(Luma)에 올라온 이벤트를 닥치는 대로 다니며 개발자든 VC든 붙잡고 대화하는 연습을 했다. 네트워킹 방식 같은 문화부터 배워 나갔다. 고객 영업은 주로 컨퍼런스에서 이루어졌다. 스키장을 빌려 영업하거나 수영장 풀파티에서 영업하는 식이었다.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유 대표에게는 이런 환경에서 네트워킹과 세일즈를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유 대표가 미국에서 직접 세일즈 성과를 많이 낸 것은 아닌데도, 대표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 전체의 초점이 미국으로 옮겨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미국 매출이 계속 늘었다. 유 대표는 자신이 헛수고를 하는 와중에도 모두가 미국에 집중한 것만으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신뢰를 얻기까지: 경쟁사보다 몇 배 나은 제품

온라인으로 메일만 보내면 상대는 애드쉴드를 외국 회사로 여겨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동창업자이자 공동대표가 성과가 없어도 몇 년 동안 모든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며 애드쉴드를 알리고, 제품이 더 좋으니 써 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몇 년을 꾸준히 하자 그제야 써 주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회가 오자 팀은 경쟁사보다 최소 3배, 10배 이상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유 대표에 따르면 실제로 경쟁사보다 3배, 5배 이상의 성과를 내며 신뢰를 쌓았다. 자기 입이 아니라 고객의 입에서 "이게 정말 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유 대표는 이 시장을 '땅따먹기 게임'으로 본다. 몇 배 이상의 압도적 가치를 줄 때 비로소 고객이 움직였고, 중요한 땅을 먼저 선점하면 고객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시장의 크기를 실감한 계기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조중동 같은 주요 언론사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확보하면 매출이 얼마나 될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두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작은 고객 몇 곳을 온보딩했더니 그 정도 매출이 나왔다. 한국 시장이 작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말 작고, 미국은 정말 크다는 것을 그때 체감했다. 이 경험으로 미국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유 대표는 말한다.

아우토반과 자전거: 속도를 위한 소수정예

유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속도다. 성장 속도를 유지하고 더 가파르게 성장하려면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유 대표는 이를 아우토반에 비유한다. 아우토반에 자전거가 한 대만 들어와도 전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한 명을 더 뽑는다고 속도가 빨라진다는 보장은 없었다는 것이 유 대표의 경험이다.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 구조를 고민한 끝에 내린 답은, 일을 열심히 하는 소수가 모여 에너지를 낼 때 가장 빨리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채용에 매우 보수적이며, 1인당 매출이 올라가는 경우에만 채용을 결정한다.

애드쉴드에는 독특한 채용 원칙이 있다. 유 대표가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자고 해도, 팀원이 보기에 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절대 영입하지 않는다. 유 대표는 보통 A급 인재는 B급을, B급 인재는 C급을 뽑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지 않으면 회사는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모든 구성원이 스톡옵션을 가진 주주이기 때문에, 더 뛰어난 사람이 와서 회사가 잘되어야 자신들의 보상도 올라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채용에서 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적 역량이 얼마나 높은가, 둘째는 스스로를 창업 멤버로 여기고 헌신할 생각이 있는가다. 유 대표는 누군가 한 명이 워라밸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조직 전체가 워라밸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애드쉴드는 이를 원하지 않으며, 지금의 에너지로 큰 업사이드를 만들고 그만큼 많이 나눠 갖자는 방향을 택했다. 또 열심히 사는 사람은 항상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한다. 애드쉴드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입사 전에도 열심히 했고 어느 조직에 가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할 사람이며, 그런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인재 밀도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애드쉴드만큼 똑똑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모인 회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빠르게 치고 나가 1등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AI에서 출발하는 워크플로우

유 대표는 적은 인원으로 큰 매출을 낼 수 있는 것도 AI 덕분이라고 본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고, 그 안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업무의 시작부터 AI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방식에 AI를 덧붙여 효율을 조금 높이는 것이 아니라, AI로 워크플로우를 새로 만들고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AI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조직은 관성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 대표의 판단이다. 그래서 유 대표는 매일 AI로 무언가를 자동화해 팀에 보여주고, 기존 방식을 대체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유 대표는 애드쉴드의 성장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본다. 컴스코어(Comscore) 상위 10위에 드는 대형 매체사들이 제품을 쓰기 시작했고, 케이스 스터디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온보딩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뷰에 나온 이유와 한국 창업가에게 남긴 말

유 대표는 이 인터뷰 제안을 신 대표와 주변에서 여러 번 받았지만 몇 번이나 거절했다. 잘되는 것을 알리는 게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불필요한 노이즈 때문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연한 이유는 영어도 못하고 부족했던 자신도 작지만 성과를 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를 보고 용기를 얻어 도전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랐다고 한다.

신 대표는 애드쉴드의 성공 여부를 떠나, 미국에서 소프트웨어를 이렇게 팔 수 있다는 것을 1년 만에 검증해 준 사례 자체가 귀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 고군분투하는 창업가가 많은 만큼, 고객에게 3배 이상의 가치를 주기만 하면 글로벌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한국에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본다. 미국도 똑똑한 이민자들이 와서 열심히 일해 일궈낸 나라인데, 한국인만큼 똑똑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치열하게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 대표 자신도 효준을 비롯한 친구들이 무작정 미국에 가서 결과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큰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도전하는 사람이 더 생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