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를 끄고 Claude Code로 디자인하다: Gamma 안채민 디자이너가 말하는 AI 시대 디자이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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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I 프레젠테이션 플랫폼 Gamma에서 AI와 이노베이션을 담당하는 첫 번째 프로덕트 디자이너 안채민은 지난 1년 사이 자신의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피그마에서 보냈지만, 지금은 전체 디자인 프로세스에 피그마가 들어오지 않는다. 흔히 "AI가 아직 이건 못 하잖아, 아직은 사람이 더 낫지"라고들 하지만 그는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것이 더 예뻐 보이는지, 더 기능적인지에 대해 누구나 자기 의견을 더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이 영상에서 그는 독일과 한국, 미국을 거친 자신의 커리어, Gamma의 일하는 방식, 그리고 AI가 디자이너의 일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이야기한다.

6 분 분량

흐려지는 역할의 경계

안채민 디자이너는 작년과 요즘의 일상을 비교하며 가장 큰 변화로 역할 간 경계를 꼽는다. 예전에는 엔지니어, PM, 디자이너 사이의 경계가 매우 분명했지만, 지금은 누구든지 디자인을 할 수 있고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흥미롭게 보는 지점은 전통적으로 각 역할을 맡아 온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어떻게 넓혀 가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협업해 가는지다.

독일에서 한국, 그리고 미국으로

그는 부모님이 대학원 과정을 밟던 독일에서 태어나 약 9년을 살았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초중고와 대학교를 마쳤고 군 복무까지 한국에서 했다. 대학원 진학 때는 유럽의 학교들도 몇 군데 고려했지만 결국 지원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미국에 가서 스타트업을 해야지"라는 막연한 문장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쓰는 툴과 프로덕트 대부분이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졌으니, 스타트업을 크게 해 볼 생각이라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렇게 시카고의 디자인 학교인 IIT Institute of Design에서 약 2년을 보낸 뒤 뉴욕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BCG 디지털 벤처스, 모네타 헬스, 그리고 스키퍼

뉴욕에서 처음 합류한 곳은 BCG 디지털 벤처스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회사는 BCG의 클라이언트들을 투자자로 삼아 그 클라이언트들을 위한 스타트업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2년 남짓 동안 세 개 정도의 스타트업을 만드는 데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고, 마지막으로 만든 스타트업인 모네타 헬스에 파운딩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모네타 헬스에는 CEO와 소수의 리더십만 있었고, 그는 디자인 리드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뿐 아니라 음성(보이스)까지 디자인하며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경험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회사는 불가피하게 프로덕트를 피벗하는 선택을 했고, 그는 이곳에 계속 남을지 다른 일을 해 볼지 고민에 빠졌다. 1년 정도의 고민 끝에 그는 스키퍼라는 AI 생산성 앱에 코파운더로 합류했다.

"성공의 모양은 하나가 아니다"

모네타, BCG, 스키퍼를 거친 3~4년 동안 그는 디자인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모네타에서 피벗을 거쳐 나오는 과정도, BCG에서의 시간도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너 이거 계속할래?"라고 묻는 시기였고, 마음은 점점 "안 할래"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 무렵 1년에 한두 번 한국의 부모님 댁을 찾았는데, 얼굴에 근심이 그대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평소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던 아버지가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성공의 모양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사람마다 자기만의 다양한 모양이 있으며, 스스로 방향을 잡고 그 모양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조언이 아버지 자신의 커리어와 모험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라 짐작하며,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아 디자인을 한 번 더 붙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회사를 고르는 두 가지 기준, 그리고 Gamma

그 이후 그는 두 가지 기준으로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로 했다. 첫째, 팀의 미션이 가슴 깊이 와닿아야 한다. 둘째, 그 사람들과 정말 재미있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 종일 서로 논쟁하고 치고받더라도 재미있게 일하고 재미있게 빌딩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리스트의 가장 위에 남은 회사가 Gamma였다.

그는 Gamma를 AI를 이용해 더 쉽고 빠르게 고품질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로, 현재 전 세계 7천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AI 기반 프레젠테이션 툴이라고 소개한다. 작년 6월에 합류한 그가 받은 첫인상은 "지루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회사의 여러 가치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Don't be boring"이다. 첫째로 지루한 사람이 되지 말고, 둘째로 지루한 프로덕트 경험도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 인상은 인터뷰 마지막 단계인 온사이트 인터뷰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열몇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6~7시간 동안 점심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프레젠테이션과 디자인 과제를 진행했다. 보통 이런 과정이 끝나면 진이 다 빠지기 마련인데, 마지막에 브랜트가 그를 밖으로 배웅하며 대화할 때 오히려 신이 나고 힘이 솟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미션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전에 프레젠테이션을 정말 많이 만드는 회사들에 있었던 그에게 이 미션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결정권을 가진 디자이너, 초기 스타트업보다 빠른 조직

입사 후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래서 잘됐구나"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에게 매우 큰 자유도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Gamma는 디자이너가 많고 PM이 적은 회사였고, 적어도 작년까지는 디자이너가 어떤 영역을 맡으면 그에 대한 상당한 결정권을 가졌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공유되면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프로젝트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라고 그는 덧붙인다.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매우 지저분하고,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 특정한 목표를 이루도록 돕는다"는 미션에 대한 공통 분모와 이해라고 그는 본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흘러가더라도 가설을 입증하거나 지워 나가고, 그 방향에 완전히 커밋한다. 이 절차가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는 점이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이전에 몸담았던 두세 명 규모의 초기 스타트업보다도 더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학습 문화다. 그는 곧 80명 규모가 되는 회사의 거의 모든 사람이 AI에 호기심이 많고,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스킬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그는 Gamma가 몇 년 전 AI로 완전히 피벗하면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경험했고, 자신이 합류했을 때 이미 대규모 글로벌 사용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핵 위크에서 온 전환점

Gamma 이전에도 그는 AI 관련 프로덕트와 스타트업에서 많이 일했지만, 당시에는 한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인식이 바뀐 순간을 그는 정확히 기억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Gamma는 매년 1월 첫째 주에 핵 위크(Hack Week)를 연다. 회사 전원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평소 실험해 보고 싶던 아이디어를 엔지니어 한 명과 함께 구현한 뒤 금요일에 전사 앞에서 하나씩 발표하는 행사다. 그 무렵 그는 Opus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엔지니어 없이 혼자 해 보기로 했다.

그전에도 바이브 코딩 툴을 정말 많이 써 봤지만 항상 막히는 지점이 있었다. 엔지니어가 아니다 보니 버그가 생겨도 왜 생기는지 알 수 없었고, 그 단계 이후로 작업을 끌고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막힘 없이 작업이 쭉쭉 나아갔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AI가 능동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수준이 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는 이때 "정말로 바이브 코딩 시대가 왔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한다.

피그마 80%에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으로

그의 이전 일상은 피그마에서 80%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Claude Code와 Claude를 이용해 디자인 프로세스의 거의 전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꼽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 테스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답을 바로 얻을 수 있고, 엔지니어에게 의존하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그 답을 직접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는 이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한다.

주니어에게: 큰 회사와 파운딩 디자이너는 다른 게임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그는 따를 필요는 없지만 한번 고려해 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가 본 적 없는 어려운 취업 시장이다. 커리어의 많은 시간을 작은 스타트업에서 보낸 입장에서 그는 큰 회사로 가는 길과 파운딩 디자이너로 가는 길이 위아래 관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말한다.

큰 조직에서는 잘 정의된 문제의 한 조각을 깊게 파는 법과 그 시스템을 잘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반면 초기 팀에서는 아무것도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를 만들어 볼 기회가 있다. 그는 AI 덕분에 지금 초기 팀이 역사상 가장 많아지고 있으며,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1천만 달러는 작은 투자 금액이 되어 버렸다고 본다. 도구가 평등해진 이 시대에 한 사람이 무언가를 끝까지 만들어 보는 경험이 쌓이면 판단력을 기를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권한다. 누군가에게는 듣기 싫은 말일 수 있지만, 정말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가장 현실적으로 한 번쯤 고려해야 할 옵션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은 커먼 센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그는 결국 디자인을 커먼 센스를 충족시키는 역할로 본다.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 줬을 때 그 사람들이 그것을 쓸 수 있느냐다. 자신이 만든 것과 가설을 어떻게 검증하고 발전시켜 나가는지에서 디자인에 대한 태도가 드러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내 생각을 얼마나 조리 있게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느냐가 어떤 면에서 디자인 스킬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의 기능이 출시되기까지 이끌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논쟁도, 방어도, 공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런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지금부터 갈고닦기를 적극 추천한다.

해외를 꿈꾸는 한국 디자이너에게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 디자인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진입 장벽이 막연히 높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해외에서 지켜본 바로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정말 잘하는데도 자존감이 낮은 경우를 많이 본다고 한다. 그는 자신감이 과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되면 삶에서 손해 보는 일이 적어진다며, 조금은 '망상적인(delusional)' 사람이 되어 지금 한국에 있더라도 Anthropic 같은 곳에 바로 지원해 보는 시도를 계속해 보라고 권한다.

아직 치고 있는 AI의 파도

그는 AI의 파도가 한 번 치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치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프로덕트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어떤 경험을 의도하고 설계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가 아직 모두 초기 단계라는 것이다. Gamma에서 그런 일을 시작한 그는 "이건 더 할 수 있는데, 이게 더 나아질 수 있는데" 싶은 지점들이 Gamma뿐 아니라 자신이 쓰는 모든 툴에서 조금씩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최전선에서 모양새를 잡아 가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