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 떨어진 YC, 일곱 번의 피벗: 샌프란시스코 해커하우스에서 AI 브라우저를 만드는 한국 창업팀
EO Korea샌프란시스코에서 2년째 제품을 만들고 있는 김효준 대표와 제품을 맡은 이찬희 님은 "내 업무를 실제로 대체하고 맡길 수 있는 AI 브라우저"를 만들고 있다. 이 영상은 이들이 왜 미국에 왔는지, 매출 6만 원짜리 회사가 어떻게 Y Combinator(YC)에 들어갔는지, 잘되던 제품을 접고 투자자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브라우저를 만들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라간다. 이들은 수많은 피벗 끝에, 자신들이 직접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오래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업무를 맡길 수 있는 브라우저"라는 목표
팀이 설명하는 제품의 핵심은 사용자가 직접 해야 할 일을 AI 에이전트가 대신 처리해 주는 브라우저다. 예를 들어 미국 B1 비자 신청 과정에서 여권 사진 등 자료만 넘겨주자 사람이 할 일은 마지막 단계의 클릭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팀은 브라우저 에이전트 벤치마크에서 Anthropic과 OpenAI의 모델을 제치고 현재 세계 1위, 즉 SOTA를 기록했다고 밝히며 "제일 똑똑한 브라우저 에이전트"라고 소개한다.
김효준 대표는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에 많지 않다고 본다. 특히 소비자용 브라우저를 직접 만드는 회사는 OpenAI, 자신들, 구글 정도라고 처음에 말했다가, 인터뷰 도중 Browserbase와 Perplexity 등을 떠올리며 "무려 다섯 개나 있네"라고 수를 고쳐 세기도 한다.
아홉 살 코더의 꿈과 아무것도 없던 첫 샌프란시스코
김효준 대표는 아홉 살 때부터 코딩을 했고, 꿈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AI 시대에 그런 제품을 만들려면 미국,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2024년 6월쯤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회고한다. 영어도 잘 못했고, 투자자들은 창업자가 출장을 가려면 미팅을 잡고, 제품을 팔아 오고, 성과를 들고 가야지 막연히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본인도 "제품을 잘 만드는 것 같으니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작정 간 것이었다. 현지에서 자신을 알리고 제품을 검증하려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었다. 아홉 살부터 코딩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세 명쯤 있어"라는 식이었고, 당시 만들던 AI 프로젝트 매니저 이야기를 하면 "어제 간 피칭 행사에서 너 같은 팀을 열 명 넘게 봤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쌓은 커리어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부터 다시 정의해야 했다. 이벤트를 돌아다니며 자기소개를 A 버전, B 버전으로 바꿔 보는 일종의 A/B 테스트를 했고, 반응이 오는 쪽을 더 밀어 봤다. 결국 통한 것은 직전에 뜬금없이 일했던 K팝 엔터테인먼트 회사 경력이었다. "24인 K팝 걸그룹 트리플에스(tripleS)를 만들어 봤다"고 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기억하고 "어떤 건데?" 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미국에 있어야 하는가: 두 사람의 다른 답
김효준 대표에게 미국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들은 이 도시에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고, 여기 없으면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면 한국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면 샌프란시스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 샌프란시스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지는 않는다. 즉 이곳에 없으면 그런 만남과 기회, 앞으로의 잠재적인 무언가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반면 이찬희 님은 미국에 오고 싶었냐는 질문에 웃으며 "아니요"라고 답한다. 어디에 있는지는 본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고, 미국이든 일본이든 집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팀이 미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일단 왔고, 와 보니 미국에서 잘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어차피 미국 고객을 더 만나야 한다면 여기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네 번 제안, 세 번 거절: 이찬희 님의 합류
이찬희 님은 2025년 1월에 합류했다. 김효준 대표와는 한국의 큰 마테크 SaaS 회사(AB180)에서 약 6년을 함께 일했고, 김효준 대표가 먼저 퇴사했다. 이후 김효준 대표가 네 번 정도 합류를 제안했는데 세 번은 거절했다고 한다.
김효준 대표는 당시가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투자금은 거의 바닥났으며, 연봉도 깎아야 했다. 마지막 제안에서 김효준 대표가 책에서 인용한 말이 이찬희 님을 움직였다. 창업은 결국 자기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과정이고, 사람들은 마흔이 넘도록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데 창업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찬희 님은 자기가 누구인지, 남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무언가를 스케일링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사람이라 그 말이 와닿았다고 한다. 게다가 회사 상황이 안 좋다는 말에, 롤러코스터는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 재밌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합류했다고 웃으며 말한다.
김효준 대표 쪽의 이유도 있었다. 그는 주장을 할 때 한 번 세게 하는 타입이고, 반증되면 바로 거둬들인다. 그런 스타일에 맞는 사람은 자신처럼 강하게 주장하고, 자신이 틀렸을 때 틀렸다고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이찬희 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합류 직후 본 문제: 만들기만 하고 쥐여 주지 않는 팀
이찬희 님은 합류 직후 몇 가지를 느꼈다고 한다. 첫째, 다들 잦은 피벗으로 피곤에 절어 있었다. 둘째, 제품은 잘 만드는 팀인데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팀의 이력을 보니 제품을 다 만들어 놓고도 사용자에게 쥐여 준 적이 없었고, 사용자가 없으니 동력도 없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이찬희 님이 떠올린 방법은 속된 말로 "채무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돈을 내면 그 제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더 좋아지길 바라게 되며, 팀은 그 피드백을 받으며 잘하면 된다. 이 팀에는 그런 피드백 루프가 없었고, 그래서 속도감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초기 기업에서 딱 두 가지, 속도와 지속성만 본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팀이 빠르게 움직일지, 어떻게 하면 이 일을 5년, 10년 할 수 있을지다.
연 매출 6만 원 회사에서 선판매 이틀 만에 100만 원: 캐럿의 탄생
그 무렵 이찬희 님에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영어 미팅이 많은데 80~90%는 알아듣지만 10%를 못 알아듣겠으니, 실시간으로 영어를 한국어 자막으로 번역해 주는 도구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것이었다. 김효준 대표의 반응은 "그냥 영어를 배우면 될 일 아니냐", 문제 자체도 그렇게 큰 문제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찬희 님이 보기에 회사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피벗을 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유의미한 매출이 없었고, 1년 동안 번 돈이 6만 원이 전부였다. 자신이 그보다는 더 벌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효준 대표에게는 말하지 않고 먼저 화면을 그렸고, CTO에게 "이거 가능해요?"라고만 물었다. 마침 CTO가 비슷한 것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들다 버린 적이 있었고, 된다고 판단한 뒤 판매부터 시작했다. "이런 걸 만들려고 한다, 5만 원을 먼저 입금해 주면 2주 뒤에 드리겠다"는 방식이었다. 이틀 만에 100만 원을 모았고, 그걸 들고 김효준 대표에게 이제 해야 한다고 보여 줬다.
김효준 대표는 말도 안 듣고 팔아 왔지만 "돈은 돈"이라고 말한다. 몇백만 원을 벌었고 그것이 회사의 기존 매출보다 많았으니, 자신이 틀릴 수도 있겠다며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2주 동안 만들어 출시한 제품이 캐럿(Carat)이고, 팀이 처음으로 많은 트랙션을 얻은 제품이 됐다.
이찬희 님은 캐럿이 자신이 재밌고, 자신에게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도 필요하다고 하니까 빠르게 만들어지고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제품이었다고 평가한다. 김효준 대표는 이 경험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멋있는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는 "짜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사소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는 중요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는 것이다.
해커하우스의 하루: 월세 6,800달러, 새벽 2시까지
현재 팀이 지내는 집의 월세는 6,800달러로, 연간 약 1억 2천만 원 정도를 쓰고 있다고 한다. 하루는 아침 8시쯤 일어나 아래층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9시부터 새벽 2시쯤까지 일만 하다 잠드는 식이다. 촬영 날 2~3일 만에 처음 밖에 나갔는데 햇볕이 참 좋더라며,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아 계속 모니터 앞에 있게 된다고 말한다. 식사는 대부분 배달로 해결하는데, 비싸지 않냐는 질문에 시간이 없어서 돈으로 시간을 사고 있다고 답한다.
이찬희 님은 올해 브라우저를 만들면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적으로도 버겁다고 털어놓는다. 제품 자체가 워낙 크고 알아야 할 부분이 많으며, 기존 플레이어만큼 기능이 받쳐 줘야 하니 개선할 점이 끝없이 나온다. 그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계속 모니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불안으로 돌아가는 동네"라고 표현하며, 다들 속으로는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여섯 번 떨어진 YC와 "미국에서 먼저 매출을 만들어 봐라"
김효준 대표는 2023년 11~12월쯤 처음 법인을 세운 뒤부터 YC에 지원했고, 여섯 번 떨어진 뒤에야 합격했다. 여섯 번째 지원 무렵에는 캐럿으로 매출도 꽤 내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인터뷰까지 갔지만 떨어졌는데, 거절 사유는 이랬다. 팀도 좋고 투자하고 싶은 젊은 테크니컬 파운더이지만 매출 대부분이 한국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계속할 거면 한국 기반 투자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서 먼저 매출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캐럿은 일본, 중동, 중국에서도 쓰고 싶어 하는 반응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만 반응이 없었다. 팀 앞에는 두 갈래가 있었다. 미국에 전부를 걸 것인가, 아시아 시장을 먹으면서 일단 시작할 것인가. 팀은 전자를 택했고, 아시아는 뒤로하고 미국에 집중하기로 했다.
첫 달에 캐럿 6개월치를 번 세일즈 어시스턴트
YC를 하면서 만든 제품은 테크 세일즈 팀을 위한 실시간 AI 미팅 어시스턴트였다. 세일즈 미팅 중 모르는 기술 질문이 나오면 AI가 실시간으로 답변을 띄워 추천해 주는 제품이다. 두 사람이 AB180에서 B2B 세일즈를 하며 겪은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세일즈 중 기술 질문이 나오면 바로 답하지 못하고, 답이 늦어지면 딜 기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솔루션 엔지니어가 동석하는데 솔루션 엔지니어는 수가 적다. AI가 그 역할을 해 주면 되겠다는 발상이었다.
초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같은 YC F25 배치 중 가장 반응이 좋은 회사 중 하나였고, Airbyte를 비롯한 여러 SaaS·테크 회사에서 함께 해 보자는 요청이 많이 왔다. 연 환산 매출(ARR)은 약 10만 달러를 찍었다. 이찬희 님에 따르면 캐럿으로 6개월 동안 번 금액을 이 제품은 첫 달에 모두 벌었다.
문제는 맞았지만 솔루션이 막혔다
그러나 12월에서 1월쯤 고객 이탈이 많이 일어났다. 김효준 대표는 문제 자체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며, 가장 큰 문제는 솔루션이었다고 진단한다. 사람이 질문하면 거의 0.8초 안에 답을 줘야 하는데, 세일즈 자리이니 고차원적이고 완벽한 답이어야 한다. 잘못된 답, 즉 할루시네이션이 나오면 리스크가 매우 크다.
당시 팀이 계산해 보니 사용자가 만족할 수준이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고객 데이터와의 연동을 쉽게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똑똑한 모델이 빠른 속도로 응답하는 것이었다. 후자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중국 모델에 의해 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봤지만, 전자는 도저히 답이 없었다. 고객은 제품을 신뢰하지 않으니 연동을 하지 않고, 연동이 안 되니 제품은 데이터가 없어 엉뚱한 소리만 하며 도움이 안 된다. 루프가 나쁜 쪽으로만 도는 구조였다.
특히 12월에는 홀리데이 시즌으로 주요 세일즈 담당자들이 휴가를 가면서 딜이 전부 보류됐고 성장도 멈췄다. YC 프로그램도 그 무렵 끝났다. 팀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는지 깊이 고민했다.
"브라우저를 만드는 게 더 쉬울 것 같다"는 제안과 "해고"라는 답
그러다 김효준 대표에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만든 제품이 Chromium 기반이라 사실상 브라우저였다. 연동을 못 해서 고통받던 문제를, 브라우저 위에 좋은 AI 에이전트를 올리고 그 에이전트가 사람처럼 로그인해 직접 조작하게 만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정말 대박이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이찬희 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찬희 님의 반응은 "당신 이사회 열어서 해고한다"였다. 이찬희 님은 피벗을 하지 말자고 계속 주장했다. 이 팀의 과거를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에 꽂혀 기존 제품을 끝까지 해 보지 않았고, 사용자에게 주고 개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이것이 위험 신호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세게 말해 두고, 한편으로는 기존 제품을 계속했을 때 얼마나 걸릴지를 계산해 봤다. 결론은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CTO와 이야기한 뒤 그날 바로 기존 세일즈 제품을 접고 앞으로 브라우저만 하기로 했다. 이것이 일곱 번째 피벗이었다. 회사와 제품 이름(Aside)은 그대로 유지했는데, 이찬희 님은 이름을 바꾸자고 했지만 김효준 대표가 절대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던 초기 설계와 투자자에게도 숨긴 이유
브라우저를 만들기로 하고 회의실에 앉았을 때 팀은 막막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그려야 할지 몰랐고, 알아야 계획을 세울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초기에 아키텍처를 잡아 둔 문서를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적혀 있다며, 깨지면서 배웠다고 말한다.
투자자에게도 비밀로 하고 만든 이유를 묻자, 말하면 뭐라고 할지 너무 뻔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지금 들어도 미친 소리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 반응도 똑같았다. 갑자기 무슨 브라우저를 만드냐, 돈은 어떻게 버냐, 드디어 정신이 나갔냐, 누가 돈을 내고 브라우저를 쓰냐는 반응이 많았다. 팀의 생각은 "보여 주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다"였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더 좋은 말을 원했는데, 자신들은 어차피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니 말로 설명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왜 브라우저인가, 그리고 왜 어려운가
이찬희 님은 브라우저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본다.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업무는 브라우저나 브라우저와 호환되는 무언가에서 이뤄진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이 생각하는 것들이 브라우저라는 도구에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동기화되고 있고,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검색하니 디지털 공간에서 사용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제품은 결국 브라우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동시에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팀의 브라우저는 크롬 기반인데 소스 코드만 약 25GB이고, 빌드에도 막대한 자원이 든다. 그래서 바이브 코딩도 거의 안 되고, 이찬희 님 본인도 못 하며 CTO만 할 수 있다고 한다. 김효준 대표는 구글을 빼면 샌프란시스코에서 크롬 브라우저를 빌드할 수 있는 사람이 50명도 안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세 번의 피벗이 가르쳐 준 것: 다시 우리가 사용자가 되는 제품으로
김효준 대표는 작년부터 지금까지를 세 번의 피벗으로 정리한다. 첫 번째 피벗(캐럿)은 팀 자신이 사용자가 된 피벗이었다. 두 번째(세일즈 어시스턴트)는 미국 시장에서 마켓과 돈을 좇은 피벗이었다. 세 번째이자 아마 마지막이 될 브라우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들이 사용자가 되고 재밌게 만들 수 있으며 스스로 잘 쓸 수 있는 제품을 향한 피벗이라는 것이다.
그는 역설적으로 한 바퀴 돌아오니 알게 됐다고 말한다. 무엇을 해야 더 빠르게 움직이고, 5년, 10년을 해도 지치지 않고 지금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는지 따져 보니, 답은 스스로 쓰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었다. 이찬희 님이 초기 기업에서 본다던 속도와 지속성이라는 기준과도 맞닿는 결론이다. 그걸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을 뿐, 결국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김효준 대표는 말한다.
베타 런칭, 이제 시작
촬영 일주일 전 팀은 베타 런칭을 했다. 올린 트윗 세 개 정도가 모두 바이럴됐고, 하루이틀 만에 웨이팅리스트에 1,000명 이상이 모였다. YC 내부 커뮤니티에 런칭했을 때는 당일 1위를 찍어 피처드됐고, Arc와 Dia에 갇혀 있었는데 드디어 넘어갈 수 있겠다며 반기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팀은 이것을 "이제 시작"이라고 규정한다. 아직 베타 런칭만 했을 뿐 정식 런칭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브라우저들만큼 기능을 갖추고 끝없이 나오는 개선점을 따라잡아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브라우저 만드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그때 찬희 님 반응이 어땠죠? >> 당신 이사회 열어서 해고한다고요. >> 한국이었으면 전혀 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어요. >> 공인인증서 자동으로 뚫어주는 그런 브라우저가 됐겠죠.
>> 근데 왜 투자자한테도 비밀로 하고 만드신? 지금 들으면 미친 소리 같기도 한데 너무 뻔했어요. 보여주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다. 이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얼마 없어요. 퍼플렉시티, 오픈AI, 저희, 물론 구글 제외하고.
와 진짜 이거 디자인 한 1시고, 이미 1시긴 한데. >> 더 심하게 걸리면 좀 끔찍한데.
>> 안녕하세요. 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년째 업사이드라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 김효준이라고 합니다. 제 월 어땠을까요? 싸가 갖고 >> 똑같네요. [웃음] >> 정확히는 그걸 썼던 거 같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한 8시간은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보니까.
안녕하세요. 똑같이 업사이드 팀에서 제품 쪽 담당하고 있는 이찬희입니다. 저희 지금 한국에 CTO인 상훈 님 계십니다.
>> 저희가 지금 만들고 있는 거는 내 업무를 실제로 대체하고 맡길 수 있는 AI 브라우저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가 미국 B1 비자 서류와 여권 사진만 줬더니 제가 해야 되는 거는 마지막 단계 클릭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벤치마크에서 앤트로픽이나 오픈AI 같은 모델들을 제치고 현재 세계 1위 SOTA를 찍었습니다. 제일 똑똑한 브라우저 에이전트인 거죠.
이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얼마 없어요. 그중에 컨슈머를 위한 진짜 에이전트 브라우저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세 군데 정도예요. 오픈AI, 저희, 물론 구글 제외하고.
아홉 살 때부터 코딩을 하면서 꿈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AI 시대는 미국,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와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야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쓰는 걸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2년 전 딱 2024년 6월쯤에 처음으로 SF에 오게 됐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저는 아무것도 없이 왔었어요. 영어도 잘하지 못했었고. 투자자들은 뭐라고 했었어요? 파운더가 출장을 갈 거면 미팅을 잡고 가고 제품을 팔아 와야 되고 뭐 잡고 가야지, 그냥 무작정 가면 안 된다. 뭐 저도 그냥 처음엔 막연했었어요. 아 나 되게 제품 잘 만드는 거 같고 미국에서도 잘 통할 것 같다, 나 그냥 글로벌 제품 만들자라는 식으로 그냥 무작정 갔었는데.
처음에는 막 저 알리고 이제 제품의 밸리데이션 하려고 했죠. 근데 제가 뭔 얘기를 해도 다들 크게 와닿지 않아 하는 거예요. 아홉 살 때부터 코딩했다고 하면 '근데 그런 애들 세 명 정도 있어' 이러고, 뭐 AI 프로젝트 매니저를 그 당시에 만들고 있었는데 '나 어제 갔던 피치 나이트에서 너 같은 팀 10여 명 정도 봤어'. 제가 했던 커리어는 아무도 모르고 하다 보니까 나에 대해서 어떻게 소개할지도 다시 정의하고 있구나.
나중에는 이벤트를 돌아다니면서 A/B 테스트를 했었어요. A 버전으로도 해보고 B 버전으로 해보고, 어 이거 반응하면 조금 더 해보고. 그러다가 답을 찾은 것도, 제가 직전에 K팝 연예 기획사에 뜬금없이 좀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트리플에스라는 아이돌 만드는, 나 24인 K팝 걸그룹 만들어봤다 하니까 그제서야 좀 기억이 되기 시작하더라고. 어떤 건데 하면서.
미국에 있어야 되는 이유는 사실 명확해요. 저희는 이 도시에서 기회 만들어야 되는 사람들이고 여기 없으면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제가 한국에 가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자고 하고, SF에 있으면 SF에 있는 친구들이 보자고 해요. 반대로 제가 한국에 있는데 SF에 있는 친구들이 보자고 하지는 않아요. 그 얘기는 뭐냐면 제가 여기에 없으면 그런 만남이나 그런 기회나 앞으로 포텐셜 무언가들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찬희 님도 미국에 오고 싶으셨던 거죠? >> 저요? 아니요. [웃음] >> 왜 비행기도 안 타려 했었어요? 사실 어디에 있느냐는 저는 그렇게 막 중요하진 않거든요. 뭐 미국에 있을 수도 있고 뭐 일본에 있을 수도 있고 그냥 집에서 할 수도 있고. 근데 이제 이 팀이 그냥 미국 가고 싶다라고 해서 일단 미국에 왔고, 그냥 있으니까 여기서 미국에서 잘 되는 거 확인했고, 어차피 미국 고객들 더 만난다고 하면 그냥 여기 있어야겠다.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내가 어디든지 그냥 있을 수는 있으니까 그냥 간다.
저는 작년 초에 합류했어요. 25년 1월. 이제 효준 님이랑 AB180에서 한 6년 정도 같이 일을 했었고, 효준 님이 먼저 퇴사하고 뭔가 그 효준 님이 한 네 번 정도 오셨는데 세 번은 깠거든요.
>> 찬희 님을 데려오려고 했을 때 사실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속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투자금도 거의 다 떨어졌고, 연봉도 깎아야 되고.
마지막에 효준 님이 다른 책에서 인용한 말에 혹해 가지고 들어온 건데, 창업이라는 거가 결국에는 이제 자기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과정이다. 근데 사람이 40이 넘을 때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 상태로 사람들이 살아간다. 창업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보니까 그 틈에서 좀 더 나은 게 있다. 약간 이런 게 썼는데 제가 사실 원하는 것들이 좀 그런 거긴 했었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어떻게 남들을 도와줄 수 있고, 스케일링시켜 볼 수 있고, 뭘 해 볼 수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호기심이라고 하면 호기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보니까.
그리고 마침 또 회사가 안 좋다길래, 마치 롤러코스터 타듯이, 롤러코스터 올라가는 게 재밌는 게 아니라 내려가니까 재밌잖아요. 그래가지고 내려가는 거 재밌지 하면서 그냥 여기 무작정 조인을 했죠.
저는 예를 들어 주장을 할 때 되게 세게 하는 타입이에요. 물론 반증이 되면 바로 거둬들이고. 근데 이런 스타일에 맞는 사람이 결국에는 나처럼 강하게 주장을 하고, 내가 아니라고 했을 때는 아니라고 잡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라고 했을 때는 저는 정말 찬희 님밖에 없었어요.
딱 들어오고 나서 느꼈던 거는 몇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다들 피벗에 피곤에 쩔어 있다. 두 번째로는 제품을 되게 잘 만드는 팀인데 왜 사람들한테 안 보여주지? 이 팀의 전적을 보니까 제품을 다 만들어 놓고 사람들한테 쥐어 준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유저가 없었기 때문에 그 동력이 없었던 거죠.
그거를 뭔가 만들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지라고 생각했을 때, 약간 속된 말로 채무 관계를 만드는 게 저는 항상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돈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나는 일단 돈을 냈으니까 이 제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는 그걸 먹으면서 잘하면 돼요. 그러니까 그런 피드백 루프가 없었다는 거 알았고, 아 그냥 속도감을 좀 만들면 좋겠다.
저는 딱 초기 기업에는 두 가지만 보거든요. 속도랑 지속성만 봐요. 어떻게 하면 이 팀이 빠르게 움직일 거고, 어떻게 하면 이거를 한 5년, 10년 할 수 있을지. 네.
>> 그 와중에 찬희 님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어요. 우리가 지금 영어 미팅이 되게 많은데 나 여기서 8, 90% 정도 알아듣는데 10% 못 알아듣겠다. >> 실시간으로 영어 자막을 한국어로 이제 번역해 주는 걸 만들자. 그러면 재밌을 것 같다 하니까 >> 너 그냥 영어를 배우면 될 일 아니냐? 그 뭔가 문제 자체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거 같다라고 얘기를 했었죠.
사실 회사가, 저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고, 그때 피벗을 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유의미한 매출이 없었고, 그 1년 통틀어서 6만 원 번 게 전부였더라고요. 근데 내가 6만 원보다 더 벌어올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효준 님한테 말을 안 하고 그림을 먼저 그렸고, CTO인 상훈 님한테 이거 가능해요라고만 물어놓고. 마침 상훈 님이 비슷한 걸 사이드 프로젝트로 했다가 버린 게 있었대요. 오케이, 어떻게 해도 되겠다 해서 그걸 가지고 이제 먼저 팔기 시작한 거. 지금 나 이런 거 만들려고 한다, 먼저 5만 원 입금해 주면 내가 2주 뒤에 드리겠다. 이틀 만에 100만 원을 모아오고 효준 님한테 보여줬어요. 이제 해야 된다고.
>> 제 말은 안 듣고 팔아 오셔 가지고. 돈은 돈이잖아요. 몇백을 벌었고 그게 저희 매출보다 더 많은 거니까. 어, 그러면 한번 해보자. 그 내가 틀릴 수도 있겠다. 오케이. 그냥 눈 딱 감고 그때부터 2주 동안 만들어서 제품 출시했고, 처음으로 좀 많은 트랙션을 얻은 제품이 캐럿이라는 제품이 됐었는데.
캐럿은 사실 그거의 측면에서 봤을 때 내가 재밌고, 내가 필요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거에 의해서 빠르게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제품이었던 거죠. 되게 신기했었어요. 많은 깨달음도 있었고. 문제라는 게 멋있는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들이 느끼는, 되게 짜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가 있고, 이런 것들을 풀어야 되는구나라고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죠.
지금 쓰고 계신다는 여기는 월세가 얼마예요? >> 6,800불. >> 연에 저희가 지금 한 1억 2천 정도 쓰고 있는 거죠? 저희가 집을 좀 잘 구했고요.
하루 일과라고 했을 때 아침에 한 8시쯤에 일어나 가지고 아래에 있는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9시부터 새벽 한 2시까지 일만 하다 자요. 오늘 오랜만에 한 2, 3일 만에 밖에 나갔거든요. 근데 햇볕이 참 좋더라고요. 근데 그냥 계속 모니터 앞에 보면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해야 될 게 많고 또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요.
>> 보통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 시켜 먹죠. >> 음. >> 시키면 너무 비싸지 않아요? >> 근데 시간이 없어서. >> 그냥 예. 음. >> 돈이랑 시간 바꾸고 있어요.
>> 올해 이제 브라우저 하면서 정말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적으로도 안 돼서 그냥 부담이 좀 큰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제품 자체가 워낙에 좀 크고 다룰 부분은 많고, 기존 플레이어만큼 기능이 받쳐주고 뭐 잘돼야 되니까 한도 끝도 없이 이제 더 잘해야 될 포인트들이 나오는데. >> 그걸 따라잡기에는, 뭔가 그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그냥 계속해서 앞에 앉아 있어야 되고. 그리고 이 동네는 그냥 불안으로 돌아가는 동네인 거 같아요. 실상 >> 다들 속이 곪아 있어.
YC 지원은 제가 창업 처음 법인 설립한 게 2023년 12월, 11월 정도였을 거예요. 그때부터 했었어요. 여섯 번 떨어지고 된 거예요.
하더라니 >> 아니라
>> 뭐 저희 여섯 번째 리젝션쯤이었을 거예요. 그 당시에는 이제 캐럿이라는 프로덕트를 통해서 매출도 꽤 잘 내고 있었고 정말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격적으로 지원하고 인터뷰 갔었는데, 리젝션 사유가 너네 팀도 좋고 우리가 투자하고 싶은 되게 영 테크니컬 파운더인데, 너네 매출이 대부분 한국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계속할 거면 한국 VC 투자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서 너가 먼저 매출 만들어 봐라.
일본에서도 막 와서 쓰고 싶어 하고, 막 중동에서 쓰고 싶어, 중국에서도 그러는데 미국만 반응이 없고. 그러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였죠. 미국에 뛰어들 것이냐, 아시아 시장들 먹으면서 일단 시작할 것이냐. 저희는 전자 선택을 했고, 아시아 포기하고 그냥 미국 가자.
일단 저희가 YC 하면서 만들고 있었던 프로덕트는 테크 세일즈 팀을 위한 실시간 AI 미팅 어시스턴트였어요. 세일즈 미팅을 하던 중에 모르는 기술 질문이 나왔을 때 답변을 실시간으로 AI가 띄워서 추천을 해 주는 거죠.
저나 찬희 님은 이제 AB180이라는 한국의 제일 큰 마테크 SaaS 회사 파운딩 멤버였는데, 거기서 B2B 세일즈 하면서의 경험을 떠올렸던 거죠. 세일즈 할 때 짜증 나는 게 기술적인 질문들 나올 때 그거 답변을 바로 못 하는데, 그 답변이 끌리면 리드타임이 길어진다. 그런데 동석하는 사람을 솔루션 엔지니어라고 하는데 솔루션 엔지니어들은 얼마 없어요. 사실 AI로 이 역할 해주면 되겠다.
How do you sales first pipeline API? Let me my TM and get back to you. Now
>> 처음에 런칭 반응이 굉장히 폭발적이었어요. 같은 YC F25 배치 중에서 제일 반응을 많이 얻은 회사 중 하나였고, 에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되게 SF 테크 회사들이나 표시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많이 왔었죠. 수치적으로 저희가 애뉴얼라이즈드 레베뉴가 100K 정도 찍었었어요. >> 캐럿을 6개월 동안 했던 금액만큼을 업사이드 첫 달에 다 벌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한 12월쯤, 1월쯤 됐을 때 사실 고객 이탈이 되게 많았었어요. 문제 자체는 저는 아직도 밸리드하다고 생각해요. 솔루션이 제일 큰 문제였던 거죠. 사람이 질문을 하면 답변을 거의 한 0.8초 안에 줘야 되는데, 심지어 세일즈 자리잖아요. 정말 고차원적이고 완벽한 답변을 줘야 돼요. 잘못된 답변, 할루시네이션이면 리스크가 정말 큰 거죠.
저희가 그때 계산해 봤을 때 정말로 이제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게 나오려면 또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연동을 뭔가 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되게 똑똑한 모델이 빠른 속도로 이제 리스폰스를 해야 되는데. 후자는 내년 초 아니면 올해 말쯤에 중국 모델에 의해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근데 전자는 도저히 답이 없다.
효준 님이 많이 말했었던 건데, 내가 이 프로덕트를 신뢰하지 않으니까 연동을 안 해요. 그러니까 우리 제품은 데이터가 없으니까 멍청한 소리만 하는 거예요. 딱히 도움이 안 돼요. 그 루프가 안 좋은 쪽으로만 도는 거죠.
>> 특히 12월에는 다들 홀리데이 브레이크 때문에 중요한 세일즈 리드나 이런 사람들은 휴가 가서 전부 다 홀드가 되면서 성장, 그로스도 멈추게 됐고, YC도 그때쯤 끝났고, 저희도 이제 생각이 좀 깊었죠. 우리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든 거죠. 우리가 예전에 만들었던 프로덕트가 생각해 보면 그냥 크로미움 기반으로 만들어서 사실상 브라우저다. 근데 오히려 그때 연동을 못 하는 분들이 고통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 브라우저 위에다가 좋은 AI 에이전트 만들고, 거기다가 클로드 같은 엄청 똑똑한 에이전트를 올리면, 그리고 이 에이전트가 그냥 패스워드를 이용해서 사람처럼 자동으로 할 수 있게 만들면 이거 정말 대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제가 그때쯤 샌프란시스코에 아직 있던 찬희 님한테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죠. 근데 그때 찬희 님 반응이 어땠죠? 당신 이사회 열어 가지고 해고한다 했죠. [웃음]
저는 사실 진짜 피벗을 안 하는 거를 계속해서 이제 주장했었어요. 왜냐면 제가 이전에 이 팀이 했었던 걸 보니까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에 꽂혀 가지고 기존의 것들을 뭔가 끝까지 해보지 않았던 거, 뭔가 사람들한테 쥐어 보고 더 뭔가 개선시키고 그런 것들을 하지 않았던 게 보였고, 그게 일단은 좀 위험 신호라고 느껴졌었고요.
그래서 한번 워딩 세게 하고, 저는 저대로 이제 상황 지켜보면서, 이제 기존에 우리가 하고 있던 제품을 계속 이어나간다 했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를 계산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이제 그냥 아 이대로는 답이 없겠다라고 좀 해서 상훈 님이랑 얘기하고 있었고, 그냥 당일에 아 업사이드 접자, 우린 앞으로 이제 브라우저만 한다. 끝.
이제 일곱 번째 피벗 >> 업사이드에서 업사이드 >> 예, 이름은 똑같아요. 이름만 똑같아. 제가 이름 바꾸자고 했는데 절대 이름 바꾸기 싫다.
>> 저희가 처음에 시작할 때 되게 막막했었어요. 이제 브라우저 만들어야겠다라고 얘기를 하고 나서 회의실에 앉았는데 뭘 어디서부터 그려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사실 알아야지 뭔가 플래닝을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때 초기에 아키텍처 잡아 놓은 문서 지금 보면 웃겨요. 그냥 말도 안 되는 것들이 그려져 있는데, 뭐 깨지면서 배운 거죠.
근데 왜 좀 투자자한테도 비밀로 하고 만드신 거예요? >> 아, 이걸 말하면 당연히 뭐라 할 게 너무 뻔해 가지고. [웃음] >> 아, 지금 들으면 미친 소리 같게 너무 뻔했어요. 지금 얘기하면, 얘기를 했을 때 주변 반응도 다 똑같았어요. 갑자기 뭐 브라우저를 만드냐? 돈은 어떻게 버냐? >> 드디어 정신이 헤까닥한 거냐? >> 누가 브라우저를 돈을 내면서 쓰냐?
그런 반응들이 많았는데 저희는 생각했죠. 보여주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다. 내연기관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더 좋은 말을 원했어요. 저희 어차피 지금 자동차를 만들어야 되는 상황인 거고, 저희가 뭐라고 해봤자 의미가 없는 거죠.
저는 그냥 브라우저 자체가 갖는 잠재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디자인이나 코딩이나 이런 것들 제외하면 사실 대부분의 업무는 브라우저 혹은 브라우저와 컴패터블한 무언가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반대로 말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브라우저라는 어떤 도구에 직접적으로 가장 빠르게 동기화되고 있고, 디지털 공간에서 나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프로덕트는 결국엔 브라우저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모르는 건 바로 검색을 할 테니까.
저희 브라우저가 크롬 브라우저 베이스인데 소스 코드가 한 25GB 정도 되고요. 그거를 빌드하면 한 1 정도 먹어요. 그래서 바이브 코딩도 거의 안 되고요. 저도 못 하고요. 저희 CTO님이요, 우진 님은 알 수 있어요. 지금 아무도 방법을 몰라요, 그걸 어떻게 손대는지. 근데 장담하는데 크롬 브라우저를 빌드할 수 있는 사람은 구글 빼고 샌프란시스코에 50명도 안 될 거예요.
그리고 이거를 할 수 있는 회사는 네 >> 개. SF에 세 개밖에 없어. >> 저희 포함하면 >> 아 우리 포함해서, 그럼 브라우저 유즈랑 >> 아 네 개다. 브라우저베이스, 브라우저 유즈 >> 저희, 오픈AI 끝. >> 아 퍼플렉시티, 다섯 개. >> 예, 무려 다섯 개나 있네.
작년부터 지금까지를 생각을 해보면 세 가지 정도의 피벗이 있었던 거 같은데, 재밌는 거는 첫 번째 피벗은 저희들이 유저가 됐던 피벗이었어요. 두 번째는 미국 시장에서 마켓과 돈을 쫓아서 하는 피벗이었어요. 세 번째,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브라우저, 아마도 마지막이 될 피벗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유저가 되고, 저희가 재밌게 만들 수 있고, 저희가 너무 잘 쓸 수 있는 그런 제품을 향한 피벗이 되는 거죠.
역설적으로 그냥 한번 돌아오니까 그냥 알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무엇을 해야 우리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한 5년, 10년 정도 했을 때도 막 지치지 않고 지금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을지 하니까, 그 우리 스스로가 쓰는 제품을 만드는 거를 그냥 잘하는 거다라는 걸 깨달았던 거죠. 그걸 알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을 뿐이고, 그냥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을 뿐이에요.
>> 저희 일주일 전에 이제 베타 런칭을 했었고요. 트윗 세 개 정도 올린 게 다 바이럴이 됐었어요. 그래서 한 하루 이틀 만에 웨이트리스트 1천 명 이상 모였고, YC 내부 커뮤니티에 런칭을 했을 때 그날 이제 1위 찍어서 피처드가 됐고. 이 프로덕트 한번 써보고 '어 나 드디어, 아크랑 디아에 갇혀 있었는데 넘어갈 수 있어' 하면서 좋아하는 반응들이 되게 많았어요.
이제 시작이죠. 왜냐면 지금 시점에서 아직 베타 런칭만 했고 런칭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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