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가 아니라 '매스'다: 어피닛 이철원 대표가 말하는 인도 금융 소외 계층 시장과 12년의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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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O의 대담 프로그램 '이오서재'는 김지윤 에디터의 진행으로 두 게스트를 함께 초대했다. 한 명은 인도에서 AI 기반 금융 서비스를 운영하는 어피닛의 이철원 대표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에서 31년째 살며 방송인이자 한국과 인도를 잇는 사업가로 활동하는 럭키다. 한국에서 인도로 간 창업가와 인도에서 한국으로 온 사업가가 함께 인도 시장을 이야기한 자리다.

7 분 분량

1부의 중심 질문은 이것이다. 많은 사람이 '너무 작은 틈새'라고 여긴 시장에서 이 대표는 왜 큰 기회를 봤을까. 그리고 그 판단을 들고 버틴 12년 동안 회사는 어떤 위기를 겪었을까. 이 대표의 답은 그가 자주 쓴다는 단어 '매스니치(mass niche)'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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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닛은 무엇을 하는 회사이고, 지금 어디에 와 있나

이 대표는 어피닛을 이렇게 소개했다. 인도의 금융 소외 계층에게 스마트폰 기술과 스마트폰 데이터, AI를 활용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대상은 기존 제도권 금융이 커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미션은 '모두를 위한 금융(Finance for All)'이다.

그는 인도 비즈니스를 한 지 약 24년이 됐고, 어피닛은 2014년에 창업해 12년째라고 했다. 부침이 많았지만 지금은 빠르게 성장하는 국면이라는 설명이다. 이 대표가 밝힌 수치로는 작년 매출이 약 1,400억 원, 이익이 약 400억 원이었다. 올해는 매출 약 2,500억 원, 이익 600억 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상장도 막바지 준비 단계에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 성장을 회사의 역량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인도라는 시장이 워낙 좋고, 그중에서도 핀테크 산업이 빠르게 크고 있다는 점을 함께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5년에서 10년 이상 인도 시장은 계속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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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창업의 정체와 '남 탓', 그리고 절에서의 리셋

어피닛은 이 대표의 두 번째 창업이다. 첫 회사는 2006년에 세운 액세스모바일로, B2B 회사였다. 자체 시스템과 기술을 아시아 통신사에 팔고, 서비스가 잘되면 거기서 나온 매출을 나누는 구조였다. 이 대표는 이 모델이 통신사에 매우 많은 것을 의존했다고 돌아봤다.

아이폰과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판이 바뀌었다. 이 대표의 표현으로는 통신사의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애플과 구글의 플랫폼, 즉 애플리케이션 기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통신사에만 기대는 B2B가 아니라 B2C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회사는 정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대표는 그 시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굉장히 괴로웠고, 모든 게 남 탓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 탓, 직원들 탓, 통신사 탓을 했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막막했고 에너지도 없었다. 그러다 문경의 한 절에 들어갔다. 처음 사흘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사흘째 밤부터 경험이 달라졌다. 50분마다 죽비로 쳐서 깨우는데, 자신은 1분쯤 앉아 있었다고 느꼈을 때 죽비가 내려왔다고 한다. 실제로는 50분이 지나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스님들이 왜 몇 달씩 수양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 경험으로 일종의 리셋이 됐고, 2014년에 다시 사업을 시작할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당시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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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니치'라는 말이 나온 이유

어피닛의 10년을 다룬 책의 제목은 『매스니치 서바이벌』이다. 이 대표는 '매스니치'가 자신이 굉장히 자주 쓰는 말이고, 작가와 인터뷰할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책 제목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설명한 논리는 이렇다. 어피닛이 겨냥하는 고객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다. 한국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소득 약 2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니치 마켓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이 구간에 10억에서 12억 명 정도가 들어간다. 그래서 이 대표는 이 시장이 니치처럼 보이고 들리겠지만 사실은 '매스'이고, 어피닛은 매스니치를 타깃으로 하는 회사라고 말했다.

처음 이 세그먼트에서 사업하겠다고 했을 때는 많은 인도인도 "그게 되겠어?"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럴 때 내기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묻는 질문에 다 답하면 상대가 인도를 더 잘 안다고 인정하고 그 말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로는 제대로 맞힌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질문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인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스마트폰은 무엇인가. 당시는 샤오미가 막 나오던 때였는데, 사람들은 삼성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샤오미의 특정 모델이 7,000루피, 약 12만 원짜리라고 짚었다. 둘째,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무엇인가. 산트로나 마루티 스즈키 차량 같은 것들이다. 셋째가 그가 가장 놀랍다고 꼽은 질문이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월정액 요금제 같은 패키지가 많이 퍼져 있지만,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팩은 10루피, 약 160원짜리 팩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런 사례가 '매스니치'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라고 했다. 상대는 작은 시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인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풀어 가면서 비즈니스로 성장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시장을 그냥 비즈니스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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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고객층, 두 배가 된 대출 금액

인도 시장의 성장을 보여주는 근거로 이 대표는 자사 대출 데이터를 들었다. 2020년 대출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평균 대출 금액(티켓 사이즈)은 10만 원이 안 됐다. 지금은 20만 원이 넘는다. 그는 그 사이 어피닛이 겨냥하는 고객 세그먼트가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 더 큰 금액을 빌릴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인도가 해마다 5~7% 사이로 성장한다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성장하면 10년 뒤에는 네다섯 배가 되어 있을 것이라며 복리의 힘을 강조했다. 또 숫자뿐 아니라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짚었다. 한국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상품이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려해야 할 점도 있다고 했다. 인도는 "너무 세다". 엔지니어링 역량 측면에서 강력한 경쟁사가 많아 그 점은 불리하다. 그래도 이를 넘어서는 거시경제적 관점과 인프라 측면의 경쟁력이 있어서, 지금 들어와서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시장과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인도라서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해외 시장은 우리가 모르는 시장이라 다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 진출을 결심했다면 인도를 고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결론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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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가 본 인도: 한 나라 안의 여러 나라

럭키는 인도 사람이 인도가 좋다고 말하면 그렇게 들릴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인도를 "한 나라 안에 여러 나라가 살고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민족이 수십 개가 넘고, 공식 언어가 20여 개이며, 방언도 셀 수 없이 많은 다이내믹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크레더블 인디아'라는 말이 이해된다고 했다.

그는 인도의 중산층 구간에 인구가 가장 많고,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이지만 소비력이 올라가고 있다고 봤다. 어피닛처럼 기술 기반 회사도 많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서비스와 솔루션 분야에 기회가 정말 많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한국에서 사업하며 요즘 주변에서 힘들다,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의 기술을 인도에 가져가는 것이 서로 잘 맞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화에서는 인도 핀테크의 비중을 보여주는 수치도 언급됐다. 인도의 유니콘 기업이 120개가 넘고, 그중 70%가 지난 5년 안에 나왔으며, 그 절반 이상이 핀테크 회사라는 것이다. 진행자는 한국에서는 핀테크가 이미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과 대비했다. 그러면서 어피닛이 12년 전에 핀테크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고 했다.

10:11

시장을 고른 세 가지 원칙

이 대표는 2014년 '밸런스'로 시작해 지금의 어피닛을 만들면서, 어느 시장에서 어떤 서비스를 할지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그 결과 단순한 원칙 세 가지를 세웠다.

  1. 시장의 크기. 그는 국내에서 치킨집을 하든 100조짜리 회사를 만들든 들이는 노력은 똑같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결과는 겨냥하는 시장의 크기에 달려 있으므로 큰 시장을 노리고 싶었다.
  2. 성장 속도. 시장이 얼마나 빨리 크는가.
  3. 시장의 성숙도. 이미 너무 성숙하면 레드오션이다. 너무 일찍 들어가면 블루오션이 오기 전에 버텨야 한다.

이 대표는 인도가 세 기준에 모두 잘 맞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핀테크는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먹힐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고 봤다. 한국 같은 선진국 사람들은 이미 금융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 반면 인도에서는 UPI라는 QR코드 결제가 널리 쓰이지만 카드는 약 1억 2천만 장밖에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금융에서 소외된 사람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이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금융에 접근하게 된다. 송금도 하고, 보험에도 가입하고, 대출도 받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핀테크가 유망하고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봤고, 일종의 믿음을 갖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어피닛은 2019년에 NBFC(비은행 금융회사) 라이선스를 받았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빠르게 성장해 2022년에 흑자로 전환했다.

11:49

위기 1: 주거래 은행의 셧다운

위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많았다"고 답했다. 첫 번째는 코로나 직전의 일이다. 당시 어피닛의 주거래 은행은 인도에서 4위쯤 되는 상업은행인 예스뱅크였다. 그런데 당시 회장의 부정행위 문제로 은행이 갑자기 셧다운됐다. 회사 돈이 그곳에 묶였고, 거의 한 달 동안 사실상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12:35

위기 2: 코로나, 부도율 70%와 모라토리엄

이 대표는 코로나가 가장 큰 위기였다고 했다. 회사가 문 닫기 직전까지 갔고, 당시 부도율이 70%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도 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이를 "한국 같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묘사했다. 금융기관에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은 채, 국민이 먹고살기 힘드니 갖고 있는 대출을 6개월 동안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갚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아무도 갚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때 금융기관이 많이 망했다고 했다. 어피닛은 다행히 대출이 많이 나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 성장하려던 시기에 이 일을 맞아 사실상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13:07

위기 3: 반중 정서와 '중국 회사' 루머

세 번째 위기는 2021년 초에 왔다. 당시 인도에서는 반중국 정서가 강해졌고, 중국 업체들이 들어와 불법 대출 서비스를 한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이때 일부 악의적인 사용자들이 이 대표의 인터뷰 사진을 올리며 어피닛이 중국 회사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는 식이었다. 트위터 등에서는 이 회사 돈은 안 갚아도 된다는 이야기까지 퍼졌다고 한다. 이 대표는 2020년과 2021년이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정리했다.

13:42

100곳 넘는 투자자의 거절, 그리고 장병규 의장의 투자

이 대표는 6년 동안 매년 투자를 받아 왔다. 그런데 2020년에는 100곳이 넘는 투자자를 만났지만 단 한 곳도 회사 이야기를 믿어 주지 않았다. 그는 정말 망하는 줄 알았고, 경영진에게 회사를 폐업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폐업 준비까지 하던 중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이 나섰다. 장 의장이 만든 본엔젤스는 2015년 어피닛에 처음 투자한 엔젤 투자자였다. 그 뒤로도 장 의장은 회사의 이야기를 계속 지켜봐 왔다. 이 대표가 전한 장 의장의 판단은 이랬다. 강한 외부 이벤트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진 것인데, 여기서 문을 닫기에는 너무 아깝다. 장 의장은 사재로 약 200억 원을 투자했고, 이를 계기로 다른 투자자들도 조금씩 합류해 총 300억 원 정도를 투자받으며 회사가 살아났다고 한다.

럭키는 이를 인도식으로 풀이했다. 좋은 일을 해야 좋은 일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많은 사람에게 10루피 같은 작은 단위로 좋은 일을 해 왔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겠느냐는 말이었다.

14:56

2주마다 열린 이사회에서 배운 것

이 대표는 장 의장의 도움이 투자로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투자는 시작이었을 뿐이고,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이 도와줬다는 것이다. 2020년 투자 이후 두 사람은 거의 2주에 한 번씩 이사회를 함께 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만 배우는 과정은 혹독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책에 그런 이야기가 다 나온다고 했다. 장 의장이 어떻게 회사를 도왔는지, 어떻게 "괴롭혔는지"까지 담겼다는 것이다. 장 의장은 책에서 자신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그려졌다며 좋아하지 않았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떠오르는 가르침을 묻자 이 대표는 하나를 꼽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열 번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한 번쯤 들었다고 알아들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딱 그 이야기만 하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것만 정확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게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럭키도 인도 사람들은 특히 사람에게 그런 말을 잘 못 하고 포장을 많이 한다고 맞장구쳤다.

이 대표는 돌려 말하기가 원만한 사회생활의 기술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상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스타트업에는 그런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유산은 이사회 운영 방식이다. 장 의장이 당시 이사회의 회의 방식을 만들어 줬다. 성장, 기술, 리스크 등을 관리하는 기본 틀도 그 시기에 상당 부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것이 지금의 회사를 있게 한 큰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했다. 럭키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기에 『매스니치 서바이벌』이라는 책도 나올 수 있었다는 말로 1부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