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동아리에서 로봇 회사로: 뉴빌리티 이상민 대표가 말하는 "결국 문제는 창업자와 팀이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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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뉴빌리티 이상민 대표는 자율주행 로봇과 피지컬 AI 기술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개발하고 있는 창업자다. 그는 대학 시절 로켓을 만들던 동아리가 어떻게 로봇 회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사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창업자와 팀밖에 없다는 점이다. 먼 미래의 꿈보다 오늘의 계획을 지키는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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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빌리티는 어떤 회사인가

이 대표의 소개에 따르면 뉴빌리티는 약 400대 규모의 로봇을 실시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를 근거로 뉴빌리티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로봇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 기업이라고 말한다. 제품군은 자율주행 로봇과 순찰 로봇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넓어지고 있다. 그는 회사를 "카메라 기반의 피지컬 AI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회사"로 규정한다.

나로호가 심어 준 꿈

이 대표는 중학교 1~2학년 때까지 꿈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 무렵 뉴스에서는 나로호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나로호는 한 번에 성공한 발사체가 아니라 세 번 만에 성공한 발사체였다. 2013년 나로호 발사가 성공하는 것을 보며 그는 "저런 걸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잠을 줄여 가며 수학과 과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거의 다 공부해 놓고 나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정작 한국의 우주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것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이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문제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고등학교 2학년부터의 시간은 모두 우주를 공부하는 데 쓰였다.

50년 된 우주 변기를 다시 설계하다: NASA 대회 우승

이 대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우주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은 어느새 NASA 대회에 나가 보자는 목표로 모였다. 대회에 나간 네댓 명은 매일 뉴스를 찾아보다가 우주정거장에서 화장실이 고장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주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화장실에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변기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찾아보니 1969년 아폴로 탐사 시절이었다. 거의 50년 동안 같은 방식의 변기를 쓰다 보니 계속 고장이 난다고 판단했고, 팀은 다른 문제는 제쳐 두고 우주 화장실 문제를 풀어 보기로 했다.

설계도를 받아 보니 우주 변기 하나에 부품이 약 4만 개 들어갔다. 이 대표는 자동차 부품 수와 맞먹는 규모라고 말한다. 사용 방식도 까다로웠다. 소변과 대변을 따로 보고 분리해야 하는데, 인체 구조상 쉽지 않아 배변 훈련이 필요하다. 팀은 소변과 대변을 함께 보면서도 분리할 방법을 몇 달 동안 고민했다.

해답의 힌트는 원심분리기에서 나왔다. 채혈한 피를 원심분리기에 넣고 빠르게 돌리면 성분이 분리된다. 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원심분리기 수준의 속도만 확보하면 고체는 바깥으로, 액체는 가운데로 모인다. 그러려면 물의 유속이 빨라야 하고, 유속을 유지하려면 변기를 나선형으로 만들어야 한다. 팀의 콘셉트는 유속을 유지하는 나선형 변기 모양에 초기 물을 공급하는 펌프 시스템만 더하면 우주 변기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팀원들은 유체역학, 열역학, 3D 설계 등을 배워 가며 이를 만들었고, 실제로 작동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대회에서 "아주 극적으로" 1등을 했다고 말한다.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과 화상으로 연결해 주고, 프로토타입을 우주에 보내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그는 전한다.

로켓 동아리와 스타트업 지원금 5천만 원

대학에 들어간 이 대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로켓을 만들자는 친구들이 모였다. 처음에는 한 사람당 월 10만~20만 원씩 내서 운영했다. 그러나 로켓은 만들수록 돈이 더 들었다. 10만 원으로 시작한 비용이 5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을 거쳐 1천만 원까지 늘어났다. 그는 주말에 올림피아드 준비 학생을 과외하고, 평일에는 전기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 팔며 돈을 댔다. 몇 달이 지나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 결국 동아리를 그만둘지, 아니면 제대로 할지를 놓고 이야기하게 됐다.

제대로 하자는 말에 겁먹고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남은 서너 명은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했다. 당시 한 회장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대표는 아르바이트와 현장 일로 돈을 버는 게 너무 힘들어서 5천만 원을 준다는 그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고 솔직히 말한다. 뜻밖에 서류가 통과됐다. 발표 평가에서 무엇을 발표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는 정장 한 벌을 사 입고 가서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했다. 로켓을 만들고 싶은데 돈이 너무 없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장은 회사를 만들라고 했다. 돈이 절실했던 팀은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곧바로 수락했다. 이것이 회사의 시작이었다. 5천만 원이 회사 통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돈이었기에, 이 돈을 반드시 10배, 20배로 불려 돌려드리자는 무거운 책임감이 컸다고 한다.

로켓 대신 용역, 그리고 머신러닝에 거는 베팅

막상 사업을 하려니 로켓으로 돈을 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팀은 로켓은 잠시 미루고, 다른 것으로 돈을 벌어 나중에 로켓을 만들자고 결정했다. 이 대표가 주변 선배들에게 물어 용역 과제를 따 왔다. 팀은 지게차 창고에서 잠을 자며 지게차 주행을 개선하는 일을 했고,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온갖 과제를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다 보니 과제들 사이에 공통점이 보였다. 모두 지금 말하는 인공지능, 당시로 치면 머신러닝을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침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두던 시점이었다. 이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은 이것이 뭔가 큰 흐름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막 태동하는 분야라 전문가도 거의 없을 테니, 지금 시작하기만 하면 자신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아주 추상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일단 다 같이 머신러닝을 공부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법인을 세우려니 이름이 필요했다. 머신러닝의 핵심이 신경망이니 신경망으로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자는 뜻에서 뉴로사이언스의 '뉴(Neu)'를 붙였다. 어떤 능력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으니 추상적인 '어빌리티(ability)'를 붙였다. 그렇게 '뉴빌리티'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투자를 받아 법인을 설립한 날은 2017년 10월 26일이다.

첫 번째 위기: 카드사 독촉 전화와 "딱 한 번만 더"

2017년 10월 첫 투자를 받고 2019년 1월이 되자 돈이 바닥났다. 카드사에서 대금이 밀렸으니 신용불량자로 등록하겠다는 독촉 전화가 왔다. 이 대표는 공동창업자들에게 거의 1년 넘게 시간을 들였는데 아무 성과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미 번아웃이 온 동료들을 보며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그는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을 남기는데 우리는 남긴 게 없으니 나한테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느끼한 말이라고 덧붙이면서다.

그날 밤부터 그는 구글에서 국내 스타트업 투자사 순위를 검색했다. 상위 10~20곳 대표의 이메일 주소를 모아 지난 1년간 한 일을 정리해 보냈다. 답장은 딱 한 통이었다. 퓨처플레이가 빠른 시일 안에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미팅 끝에 팀은 "정말 극적으로" 추가 투자를 받았다.

왜 자동차도 드론도 아닌 로봇이었나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방향도 잡혔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다루던 햅틱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처리였다. 영상의 변화를 탐지해 햅틱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팀은 이 영상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자율주행의 핵심인 지도를 만들고 위치를 추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팀은 드론, 자동차, 로봇 세 가지를 꼽았다. 자율주행차 하면 현대차가 떠올랐다. 드론은 당시 중국이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로봇은 유일하게 대기업이 없는 분야였다. 이 대표는 당시 시가총액 1조 원을 넘는 로봇 회사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로봇을 택했고, 그는 이것이 피벗의 마지막이자 지금의 뉴빌리티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한다.

99개의 문제: "로켓 사이언스보다 어려웠던" 로봇 제작

로켓을 만들던 팀원들 사이에는 로켓 사이언스가 워낙 어려운 분야이니 그걸 하던 사람이라면 로봇쯤은 다 알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로봇 바퀴를 설계하는데, 서스펜션 유격 때문에 직진을 해도 조금만 달리면 로봇이 왼쪽 끝으로 쏠렸다. 카메라를 많이 달자 상상도 못 한 전자파 문제가 생겼다. 전자파가 간섭을 일으켜 카메라 영상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이후 풀어야 할 문제가 줄줄이 이어졌다. 전자파 차폐 기술, 로봇이 일직선으로 달리도록 서스펜션과 댐퍼를 정렬하는 설계, 양산 방법, 다이캐스팅 금형 제작, 부품을 싼 것으로 고를지 품질 좋은 것으로 고를지 같은 결정들이었다. 모두 팀이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문제였다.

이 대표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공동창업자들과 매일 공부한다. 공장에 가서 부딪힌다. 모르면 일단 해 본다. 그래도 안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모셔 온다. 그와 공동창업자는 독서실에 온 것처럼 하루 종일 공부했다. 유튜브를 보고, 전화로 묻고, 현장에서 공정을 지켜보며 배웠다. 전문가들에게 커피챗을 청해 "저희 문제가 이런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데도 많은 시간을 썼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자 합류한 사람들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었다. 고민을 나누는 사이 기술 콘셉트와 방향성이 퍼즐처럼 조금씩 맞춰졌다. 이 대표는 이 경험에서 어떤 사업이든 직접 손을 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수영장에 뛰어들어야 살기 위해 헤엄치다가 수영을 배우게 되는 것과 같다는 비유다. 그 뒤로 그와 팀은 문제가 생겨도 "오케이, 또 시작이구나, 한번 공부해 볼까" 하는 식으로 덤덤하게 대하게 됐다고 한다.

규제라는 벽 앞에서의 'Think Different'

이 대표가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한 것은 규제였다.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 심사에서 규제 이슈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투자자에게서 "규제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으면 속으로는 '내가 규제를 풀 수 있나' 싶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규제를 탓할 시간에 규제가 왜 풀려야 하는지를 보여 주려 했고, 그러기 위해 오히려 일을 더 벌였다는 것이다.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회사가 망한다. 그러니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규제를 풀려면 시민들이 로봇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 된다. 이 논리에 따라 그는 규제 샌드박스에서 "미친 척하고" 로봇 100대를 배치해 보자고 제안했다.

샌드박스 운영 측과 주변에서는 규제가 풀린 것도 아닌데 한두 달만 하지 100대는 어떻게 하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 대표는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샌드박스의 취지는 데이터를 보고 실효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속도로에 차가 한 대만 다니면 사고가 절대 나지 않는다. 차가 10만 대쯤 다녀야 사고가 나고, 그에 따라 법규와 제한이 생긴다. 차 한 대만 다니는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데이터를 모아도 "안전하다"는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데이터가 필요하다면서 로봇 한 대로만 운영하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100대, 1천 대를 운영하면 소비자들이 로봇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법을 풀기도 훨씬 쉬워지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돌아온 답은 "그건 좀 안 될 것 같다"였다.

규제를 기다리지 않고 사유지 순찰 시장으로

그래서 이 대표는 방향을 틀었다. 법 문제가 풀리기를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법적 문제가 없는 사유지에서 로봇 서비스를 상용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가 찾은 답은 보안 순찰 로봇 시장이었다. 사유지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빌리티는 순찰 로봇을 먼저 팔기로 결정했고, 순찰 로봇 시장을 여는 과정을 거쳤다.

코로나와 도로교통법 개정: 시장이 열리던 순간

이 대표는 뉴빌리티뿐 아니라 로봇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고 말한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이 처음으로 삶 속에 로봇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지고 비대면이 강화되면서,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해야 하고 막상 시켜 보니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그는 해석한다.

이후 도로교통법이 인증받은 로봇에 한해 보행자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달부터 로봇이 몇 대, 몇십 대씩 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그때 "너무 행복했다"고 말한다. 전에는 고객에게서 법이 통과되지 않아 못 쓰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법이 통과된 뒤에는 통과됐으니 써 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논의의 초점도 "로봇 시장이 없다"에서 "시장은 있는데 어떤 로봇이어야 하느냐"로 바뀌었다고 그는 전한다.

그렇다고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고민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일은 로또처럼 드물다고 본다. 다만 규제를 풀 때도, 로봇을 팔 때도 점진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3년쯤 뒤 돌아봤을 때 상황이 바뀌어 있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지금도 로봇이 일상에 더 많이 들어가게 할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는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보다 마라톤처럼 꾸준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위기: 계엄 다음 날 날아간 투자와 2개월 런웨이

이 대표가 가장 힘들었던 해로 꼽는 것은 2024년이다. 뉴빌리티는 2022년에 약 260억 원을 투자받아 3년 가까이 썼다. 그 돈은 대부분 규제를 푸는 일과 없던 시장을 만드는 일에 들어갔다. 그의 표현으로는 스타트업의 연료인 돈이 떨어진 상태였다.

2024년 1월부터 시리즈 B를 준비해 라운드를 시작했다. 예비 투자심의에서 350억 원이 모두 통과됐다. 그의 경험상 예비 심의를 통과하면 본 심의에서 크게 문제가 된 경우는 많지 않았기에 투자가 곧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24년 12월 계엄 사태가 터졌다. 그다음 날 한 투자사에서 본 심의를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전화가 왔고, 50억 원이 사라졌다. 이어 다른 곳은 350억 원 규모가 될 줄 알고 50억 원을 넣기로 한 것이라며 앞선 곳이 빠지면 자신들도 어렵다고 했다. 또 50억 원이 빠졌다. 100억 원을 약속했던 곳은 350억 원 규모를 전제로 한 투자였다며 최소 50억 원을 더 모아 오면 참여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50억 원마저 무산되면서 상황은 매우 어려워졌다.

당시 회사의 런웨이는 2025년 2월까지, 두 달뿐이었다. 수백억 원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두 달 안에 회사를 정상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대표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흘렀다고 말한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막막했고, 안 될 거라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포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1월에 인력의 40%를 줄였다. 그런데 9년을 운영했으면서도 "초보 대표"였던 탓에 인력을 줄이면 퇴직금이 나간다는 점을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 결과 2월까지였던 런웨이가 1월로 줄었다. 남은 60% 직원에게 2월 급여를 줘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공동창업자와 재무팀장, 인사팀장이 각자 대출을 받아 몇억 원을 마련했다.

운도 따랐다. 1월 말~2월 초에 한 고객사가 10억 원어치 계약을 맺어 주었다. 대금은 3개월 뒤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 대표는 은행에 급히 달려가 이 돈을 먼저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은행은 절반만 주겠다고 해서 몇억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그렇게 2월 급여를 지급하고 3월 급여까지 마련했다.

그 와중에 인비저닝 파트너스가 "리드를 설 테니 스타트업을 계속하라"며 50억 원을 커밋했다. 이후 투자가 연이어 붙으면서 뉴빌리티는 약 260억 원을 모아 라운드를 클로징했다.

"어른들 말 너무 듣지 말자": 문제는 창업자와 팀이 푼다

이 대표가 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스타트업이 계속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는 고객의 문제일 수도 있고 회사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단단해져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해결되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그는 이 위기를 시니어나 경험 많은 어른이 해결해 줄 수 있었을지 자문하고,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누구나 아는 문제는 선배의 조언으로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결국 내 사업의 문제는 대표와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래서 그는 "어른들 말 너무 듣지 말자, 거기에 해답이 별로 없더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부딪히고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가 생기면 "또 미션이 떨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 속에 길과 교훈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5년 뒤의 꿈보다 오늘의 계획

이 대표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질문은 "5년 뒤, 10년 뒤 꿈이 뭐냐", "3년 뒤에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답한다고 말한다. 그의 경험으로는 한 달 뒤 계획도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뒤 얼마를 벌겠다, 20년 뒤 조 단위 자산가가 되겠다는 식의 거창한 꿈보다는, 이번 주의 일과 오늘 계획한 일을 잘 해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한다. 구성원들과 대외적으로 밝힌 계획을 하나씩 지켜 나가다 보면 5년 뒤 돌아봤을 때 그 계획들이 지켜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규제 사례를 근거로 든다. 규제 해소 로드맵상으로는 2029년에나 풀릴 예정이었는데, 실제로는 2024년에 풀렸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이 매일매일 꾸준히 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변의 소음에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가 얼마를 투자받았다, 누가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가 끝없이 들려온다. 그는 그런 것에 매몰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결국 답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천억 원짜리 회사, 3천억 원짜리 회사는 의미가 없느냐고 되묻는다. 상장사 중에도 기업가치 1조 원이 안 되는 곳이 매우 많고, 그가 알기로는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천천히 가든 빠르게 가든 마라톤처럼 꾸준히 가자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