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동아리에서 로봇 회사로: 뉴빌리티 이상민 대표가 말하는 "결국 문제는 창업자와 팀이 푼다"
EO Korea뉴빌리티 이상민 대표는 자율주행 로봇과 피지컬 AI 기술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개발하고 있는 창업자다. 그는 대학 시절 로켓을 만들던 동아리가 어떻게 로봇 회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사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창업자와 팀밖에 없다는 점이다. 먼 미래의 꿈보다 오늘의 계획을 지키는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의 주장이다.
뉴빌리티는 어떤 회사인가
이 대표의 소개에 따르면 뉴빌리티는 약 400대 규모의 로봇을 실시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를 근거로 뉴빌리티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로봇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 기업이라고 말한다. 제품군은 자율주행 로봇과 순찰 로봇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넓어지고 있다. 그는 회사를 "카메라 기반의 피지컬 AI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회사"로 규정한다.
나로호가 심어 준 꿈
이 대표는 중학교 1~2학년 때까지 꿈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 무렵 뉴스에서는 나로호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나로호는 한 번에 성공한 발사체가 아니라 세 번 만에 성공한 발사체였다. 2013년 나로호 발사가 성공하는 것을 보며 그는 "저런 걸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잠을 줄여 가며 수학과 과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거의 다 공부해 놓고 나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정작 한국의 우주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것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이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문제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고등학교 2학년부터의 시간은 모두 우주를 공부하는 데 쓰였다.
50년 된 우주 변기를 다시 설계하다: NASA 대회 우승
이 대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우주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은 어느새 NASA 대회에 나가 보자는 목표로 모였다. 대회에 나간 네댓 명은 매일 뉴스를 찾아보다가 우주정거장에서 화장실이 고장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주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화장실에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변기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찾아보니 1969년 아폴로 탐사 시절이었다. 거의 50년 동안 같은 방식의 변기를 쓰다 보니 계속 고장이 난다고 판단했고, 팀은 다른 문제는 제쳐 두고 우주 화장실 문제를 풀어 보기로 했다.
설계도를 받아 보니 우주 변기 하나에 부품이 약 4만 개 들어갔다. 이 대표는 자동차 부품 수와 맞먹는 규모라고 말한다. 사용 방식도 까다로웠다. 소변과 대변을 따로 보고 분리해야 하는데, 인체 구조상 쉽지 않아 배변 훈련이 필요하다. 팀은 소변과 대변을 함께 보면서도 분리할 방법을 몇 달 동안 고민했다.
해답의 힌트는 원심분리기에서 나왔다. 채혈한 피를 원심분리기에 넣고 빠르게 돌리면 성분이 분리된다. 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원심분리기 수준의 속도만 확보하면 고체는 바깥으로, 액체는 가운데로 모인다. 그러려면 물의 유속이 빨라야 하고, 유속을 유지하려면 변기를 나선형으로 만들어야 한다. 팀의 콘셉트는 유속을 유지하는 나선형 변기 모양에 초기 물을 공급하는 펌프 시스템만 더하면 우주 변기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팀원들은 유체역학, 열역학, 3D 설계 등을 배워 가며 이를 만들었고, 실제로 작동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대회에서 "아주 극적으로" 1등을 했다고 말한다.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과 화상으로 연결해 주고, 프로토타입을 우주에 보내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그는 전한다.
로켓 동아리와 스타트업 지원금 5천만 원
대학에 들어간 이 대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로켓을 만들자는 친구들이 모였다. 처음에는 한 사람당 월 10만~20만 원씩 내서 운영했다. 그러나 로켓은 만들수록 돈이 더 들었다. 10만 원으로 시작한 비용이 5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을 거쳐 1천만 원까지 늘어났다. 그는 주말에 올림피아드 준비 학생을 과외하고, 평일에는 전기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 팔며 돈을 댔다. 몇 달이 지나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 결국 동아리를 그만둘지, 아니면 제대로 할지를 놓고 이야기하게 됐다.
제대로 하자는 말에 겁먹고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남은 서너 명은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했다. 당시 한 회장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대표는 아르바이트와 현장 일로 돈을 버는 게 너무 힘들어서 5천만 원을 준다는 그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고 솔직히 말한다. 뜻밖에 서류가 통과됐다. 발표 평가에서 무엇을 발표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는 정장 한 벌을 사 입고 가서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했다. 로켓을 만들고 싶은데 돈이 너무 없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장은 회사를 만들라고 했다. 돈이 절실했던 팀은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곧바로 수락했다. 이것이 회사의 시작이었다. 5천만 원이 회사 통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돈이었기에, 이 돈을 반드시 10배, 20배로 불려 돌려드리자는 무거운 책임감이 컸다고 한다.
로켓 대신 용역, 그리고 머신러닝에 거는 베팅
막상 사업을 하려니 로켓으로 돈을 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팀은 로켓은 잠시 미루고, 다른 것으로 돈을 벌어 나중에 로켓을 만들자고 결정했다. 이 대표가 주변 선배들에게 물어 용역 과제를 따 왔다. 팀은 지게차 창고에서 잠을 자며 지게차 주행을 개선하는 일을 했고,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온갖 과제를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다 보니 과제들 사이에 공통점이 보였다. 모두 지금 말하는 인공지능, 당시로 치면 머신러닝을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침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두던 시점이었다. 이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은 이것이 뭔가 큰 흐름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막 태동하는 분야라 전문가도 거의 없을 테니, 지금 시작하기만 하면 자신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아주 추상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일단 다 같이 머신러닝을 공부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법인을 세우려니 이름이 필요했다. 머신러닝의 핵심이 신경망이니 신경망으로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자는 뜻에서 뉴로사이언스의 '뉴(Neu)'를 붙였다. 어떤 능력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으니 추상적인 '어빌리티(ability)'를 붙였다. 그렇게 '뉴빌리티'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투자를 받아 법인을 설립한 날은 2017년 10월 26일이다.
첫 번째 위기: 카드사 독촉 전화와 "딱 한 번만 더"
2017년 10월 첫 투자를 받고 2019년 1월이 되자 돈이 바닥났다. 카드사에서 대금이 밀렸으니 신용불량자로 등록하겠다는 독촉 전화가 왔다. 이 대표는 공동창업자들에게 거의 1년 넘게 시간을 들였는데 아무 성과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미 번아웃이 온 동료들을 보며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그는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을 남기는데 우리는 남긴 게 없으니 나한테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느끼한 말이라고 덧붙이면서다.
그날 밤부터 그는 구글에서 국내 스타트업 투자사 순위를 검색했다. 상위 10~20곳 대표의 이메일 주소를 모아 지난 1년간 한 일을 정리해 보냈다. 답장은 딱 한 통이었다. 퓨처플레이가 빠른 시일 안에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미팅 끝에 팀은 "정말 극적으로" 추가 투자를 받았다.
왜 자동차도 드론도 아닌 로봇이었나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방향도 잡혔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다루던 햅틱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처리였다. 영상의 변화를 탐지해 햅틱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팀은 이 영상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자율주행의 핵심인 지도를 만들고 위치를 추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팀은 드론, 자동차, 로봇 세 가지를 꼽았다. 자율주행차 하면 현대차가 떠올랐다. 드론은 당시 중국이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로봇은 유일하게 대기업이 없는 분야였다. 이 대표는 당시 시가총액 1조 원을 넘는 로봇 회사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로봇을 택했고, 그는 이것이 피벗의 마지막이자 지금의 뉴빌리티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한다.
99개의 문제: "로켓 사이언스보다 어려웠던" 로봇 제작
로켓을 만들던 팀원들 사이에는 로켓 사이언스가 워낙 어려운 분야이니 그걸 하던 사람이라면 로봇쯤은 다 알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로봇 바퀴를 설계하는데, 서스펜션 유격 때문에 직진을 해도 조금만 달리면 로봇이 왼쪽 끝으로 쏠렸다. 카메라를 많이 달자 상상도 못 한 전자파 문제가 생겼다. 전자파가 간섭을 일으켜 카메라 영상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이후 풀어야 할 문제가 줄줄이 이어졌다. 전자파 차폐 기술, 로봇이 일직선으로 달리도록 서스펜션과 댐퍼를 정렬하는 설계, 양산 방법, 다이캐스팅 금형 제작, 부품을 싼 것으로 고를지 품질 좋은 것으로 고를지 같은 결정들이었다. 모두 팀이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문제였다.
이 대표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공동창업자들과 매일 공부한다. 공장에 가서 부딪힌다. 모르면 일단 해 본다. 그래도 안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모셔 온다. 그와 공동창업자는 독서실에 온 것처럼 하루 종일 공부했다. 유튜브를 보고, 전화로 묻고, 현장에서 공정을 지켜보며 배웠다. 전문가들에게 커피챗을 청해 "저희 문제가 이런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데도 많은 시간을 썼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자 합류한 사람들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었다. 고민을 나누는 사이 기술 콘셉트와 방향성이 퍼즐처럼 조금씩 맞춰졌다. 이 대표는 이 경험에서 어떤 사업이든 직접 손을 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수영장에 뛰어들어야 살기 위해 헤엄치다가 수영을 배우게 되는 것과 같다는 비유다. 그 뒤로 그와 팀은 문제가 생겨도 "오케이, 또 시작이구나, 한번 공부해 볼까" 하는 식으로 덤덤하게 대하게 됐다고 한다.
규제라는 벽 앞에서의 'Think Different'
이 대표가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한 것은 규제였다.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 심사에서 규제 이슈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투자자에게서 "규제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으면 속으로는 '내가 규제를 풀 수 있나' 싶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규제를 탓할 시간에 규제가 왜 풀려야 하는지를 보여 주려 했고, 그러기 위해 오히려 일을 더 벌였다는 것이다.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회사가 망한다. 그러니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규제를 풀려면 시민들이 로봇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 된다. 이 논리에 따라 그는 규제 샌드박스에서 "미친 척하고" 로봇 100대를 배치해 보자고 제안했다.
샌드박스 운영 측과 주변에서는 규제가 풀린 것도 아닌데 한두 달만 하지 100대는 어떻게 하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 대표는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샌드박스의 취지는 데이터를 보고 실효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속도로에 차가 한 대만 다니면 사고가 절대 나지 않는다. 차가 10만 대쯤 다녀야 사고가 나고, 그에 따라 법규와 제한이 생긴다. 차 한 대만 다니는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데이터를 모아도 "안전하다"는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데이터가 필요하다면서 로봇 한 대로만 운영하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100대, 1천 대를 운영하면 소비자들이 로봇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법을 풀기도 훨씬 쉬워지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돌아온 답은 "그건 좀 안 될 것 같다"였다.
규제를 기다리지 않고 사유지 순찰 시장으로
그래서 이 대표는 방향을 틀었다. 법 문제가 풀리기를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법적 문제가 없는 사유지에서 로봇 서비스를 상용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가 찾은 답은 보안 순찰 로봇 시장이었다. 사유지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빌리티는 순찰 로봇을 먼저 팔기로 결정했고, 순찰 로봇 시장을 여는 과정을 거쳤다.
코로나와 도로교통법 개정: 시장이 열리던 순간
이 대표는 뉴빌리티뿐 아니라 로봇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고 말한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이 처음으로 삶 속에 로봇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지고 비대면이 강화되면서,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해야 하고 막상 시켜 보니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그는 해석한다.
이후 도로교통법이 인증받은 로봇에 한해 보행자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달부터 로봇이 몇 대, 몇십 대씩 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그때 "너무 행복했다"고 말한다. 전에는 고객에게서 법이 통과되지 않아 못 쓰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법이 통과된 뒤에는 통과됐으니 써 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논의의 초점도 "로봇 시장이 없다"에서 "시장은 있는데 어떤 로봇이어야 하느냐"로 바뀌었다고 그는 전한다.
그렇다고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고민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일은 로또처럼 드물다고 본다. 다만 규제를 풀 때도, 로봇을 팔 때도 점진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3년쯤 뒤 돌아봤을 때 상황이 바뀌어 있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지금도 로봇이 일상에 더 많이 들어가게 할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는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보다 마라톤처럼 꾸준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위기: 계엄 다음 날 날아간 투자와 2개월 런웨이
이 대표가 가장 힘들었던 해로 꼽는 것은 2024년이다. 뉴빌리티는 2022년에 약 260억 원을 투자받아 3년 가까이 썼다. 그 돈은 대부분 규제를 푸는 일과 없던 시장을 만드는 일에 들어갔다. 그의 표현으로는 스타트업의 연료인 돈이 떨어진 상태였다.
2024년 1월부터 시리즈 B를 준비해 라운드를 시작했다. 예비 투자심의에서 350억 원이 모두 통과됐다. 그의 경험상 예비 심의를 통과하면 본 심의에서 크게 문제가 된 경우는 많지 않았기에 투자가 곧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24년 12월 계엄 사태가 터졌다. 그다음 날 한 투자사에서 본 심의를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전화가 왔고, 50억 원이 사라졌다. 이어 다른 곳은 350억 원 규모가 될 줄 알고 50억 원을 넣기로 한 것이라며 앞선 곳이 빠지면 자신들도 어렵다고 했다. 또 50억 원이 빠졌다. 100억 원을 약속했던 곳은 350억 원 규모를 전제로 한 투자였다며 최소 50억 원을 더 모아 오면 참여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50억 원마저 무산되면서 상황은 매우 어려워졌다.
당시 회사의 런웨이는 2025년 2월까지, 두 달뿐이었다. 수백억 원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두 달 안에 회사를 정상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대표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흘렀다고 말한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막막했고, 안 될 거라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포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1월에 인력의 40%를 줄였다. 그런데 9년을 운영했으면서도 "초보 대표"였던 탓에 인력을 줄이면 퇴직금이 나간다는 점을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 결과 2월까지였던 런웨이가 1월로 줄었다. 남은 60% 직원에게 2월 급여를 줘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공동창업자와 재무팀장, 인사팀장이 각자 대출을 받아 몇억 원을 마련했다.
운도 따랐다. 1월 말~2월 초에 한 고객사가 10억 원어치 계약을 맺어 주었다. 대금은 3개월 뒤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 대표는 은행에 급히 달려가 이 돈을 먼저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은행은 절반만 주겠다고 해서 몇억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그렇게 2월 급여를 지급하고 3월 급여까지 마련했다.
그 와중에 인비저닝 파트너스가 "리드를 설 테니 스타트업을 계속하라"며 50억 원을 커밋했다. 이후 투자가 연이어 붙으면서 뉴빌리티는 약 260억 원을 모아 라운드를 클로징했다.
"어른들 말 너무 듣지 말자": 문제는 창업자와 팀이 푼다
이 대표가 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스타트업이 계속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는 고객의 문제일 수도 있고 회사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단단해져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해결되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그는 이 위기를 시니어나 경험 많은 어른이 해결해 줄 수 있었을지 자문하고,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누구나 아는 문제는 선배의 조언으로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결국 내 사업의 문제는 대표와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래서 그는 "어른들 말 너무 듣지 말자, 거기에 해답이 별로 없더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부딪히고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가 생기면 "또 미션이 떨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 속에 길과 교훈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5년 뒤의 꿈보다 오늘의 계획
이 대표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질문은 "5년 뒤, 10년 뒤 꿈이 뭐냐", "3년 뒤에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답한다고 말한다. 그의 경험으로는 한 달 뒤 계획도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뒤 얼마를 벌겠다, 20년 뒤 조 단위 자산가가 되겠다는 식의 거창한 꿈보다는, 이번 주의 일과 오늘 계획한 일을 잘 해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한다. 구성원들과 대외적으로 밝힌 계획을 하나씩 지켜 나가다 보면 5년 뒤 돌아봤을 때 그 계획들이 지켜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규제 사례를 근거로 든다. 규제 해소 로드맵상으로는 2029년에나 풀릴 예정이었는데, 실제로는 2024년에 풀렸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이 매일매일 꾸준히 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변의 소음에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가 얼마를 투자받았다, 누가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가 끝없이 들려온다. 그는 그런 것에 매몰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결국 답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천억 원짜리 회사, 3천억 원짜리 회사는 의미가 없느냐고 되묻는다. 상장사 중에도 기업가치 1조 원이 안 되는 곳이 매우 많고, 그가 알기로는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천천히 가든 빠르게 가든 마라톤처럼 꾸준히 가자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
돈이 없더라고요. 카드사에서 독촉 전화가 오는 거예요. 신용 불량자에 등록을 하겠다. 내 자신도 알면서 포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1월에 40%의 인력을 저희가 줄입니다. 근데 저도 참 9년을 운영을 했는데 초보 대표였던 게 40%의 인력을 줄이니까 퇴직금이 나가야 되더라고요. 2월까지 있던 런웨이가 1월로 줄어요.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거를 너무 갑갑한 거죠. 이거 안 될 걸 아는 거죠.
저는 자율주행 로봇, 피지컬 AI 기술 바탕으로 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뉴빌리티의 이상민이라고 합니다. 뉴빌리티는 약 400대 규모의 로봇을 실시간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국내에서는 가장 많은 로봇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로봇 기업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 자율주행 로봇, 순찰 로봇, 또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카메라 기반의 피지컬 AI 기술들을 연구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회사라고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꿈이 별로 없었어요. 사실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꿈이 별로 없었는데 계속 뉴스에 나로호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잘 아시다시피 나로호가 한 번만에 성공한 발사체가 아니라 세 번 만에 성공한 발사체여서 2013년에 나로호가 성공을 하면서 저런 거를 뭔가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제 마음속에 들기 시작하고 꿈틀꿈틀거렸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정말 줄여가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저는 근원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게 내가 고등학교 3학년 것까지 거의 다 해 놨는데 나는 한국 우주를 모르겠는 거야. 아, 이거는 뭔가 내가 입학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말 이 분야를 더 깊게 공부해야만 내가 알 수 있는 문제다라는 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제 고등학교 2학년부터의 모든 시간이 우주를 공부하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제가 결성을 해서 한국 우주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모임을 만들었는데 목표가 나사의 대회를 나가 보자 이렇게 되게 됩니다. 나사 대회 나간 한 네 명이 있는데 이 친구들이 매일 뉴스를 찾아보니까 우주정거장에서 화장실이 고장나 가지고 우주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화장실 가는 거래요. 그래서 저희가 이거 언제 만들었지 보니까 1969년 아폴로 우주 탐사할 때 만들었더라고요. 그러니까 거의 50년 동안 우주 변기 만들어 놓고 그대로 쓰니까 계속 변기가 고장이 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다른 문제는 모르겠고 우주 화장실의 문제를 해결해 보자. 이렇게 시작이 된 겁니다.
그래서 설계도를 받아봤더니 우주 변기 하나 만드는 데 부품이 한 4만 개 정도 들어가요. 4만 개. 자동차 부품이 4만 개예요. 4만 개. 그리고 우주 변기를 어떻게 사용하냐면 소변과 대변을 따로 봐요. 소변은 깔때기 같은 거에 보고 대변은 대변으로 보고 이렇게 분리를 해야 되는데 인체의 신체 구조는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걸 훈련해야 돼요. 배변을.
소변과 대변을 같이 보면서도 분리해 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하루 종일 몇 달을 고민했는데 저희의 솔루션은 피를 뽑으면 원심 분리기에다 넣잖아요. 그러면 액체는 중간으로 모이고 고체가 겉으로 빠지거든요. 빨리 돌리면. 그러면 원심 분리기 정도의 속도가 보장이 될 수 있다면 고체는 겉에 있을 것이고 액체는 중간으로 올 것이니까 물의 유속이 빨라야겠네. 물의 유속이 빨라지려면 우주 변기의 모양이 나선형 모양이어야겠네라는 데서 힌트를 얻은 거예요. 그래서 변기의 모양이 유속을 유지해 줄 수 있는 나선형의 모양이고 초기에 물을 줄 수 있는 펌프 시스템만 있으면 우주 변기를 다시 만들 수 있겠다라는 게 저희의 컨셉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막 배워 가면서 유체역학도 배우고 열역학도 배우고 3D 설계도 배워서 만들었는데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대회에서 저희가 아주 극적으로 1등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상을 타고 나사에서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라가 있는 우주인들이랑 화상으로 연락할 수 있게 해주고 프로토타입을 우주에 보내 주겠다. 그 모든 제안을 다 받고 저희가 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대학교 내에서 또 동아리를 만들게 됩니다. 하고 싶은 거를 하는 동아리.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그런 동아리를 대학교 가서 만들었는데 로켓을 만들자 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돈 월에 10만 원씩 내고 20만 원씩 내고 해서 했는데 로켓을 만들면 만들수록 돈이 계속 더 들어가는 거예요. 처음에 10만 원을 시작한 게 50만 원 되고 100만 원 되고 200만 원 되고 1천만 원이 되니까 주말에는 올림피아드 학생들 과외에서 그 돈을 벌어서 우리가 월화수목을 이렇게 하고 전기 공사하러 가는 공사장에 가서 일을 하고 게임 같은 걸 조금 만들어 가지고 게임을 이렇게 팔고 그걸 또 몇 달 하니까 저도 몸이 힘들고 다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니까 어떤 논의를 하냐면 이 동아리를 그만할지 아니면 진짜 제대로 할지 이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대로 하자고 하니까 다들 겁 먹어서 도망가긴 했지만 남아 있는 몇 명, 그 한 서너 명이 야,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손준 회장님께서 하시는. 저도 그렇고 저희 공동창업자도 맨날 알바하고 현장 가서 일하고 하니까 그 돈 벌기 싫어 가지고 지원했거든요. 사실은 5천만 원인 데서. 근데 그게 덜컥 된 거예요. 그래서 발표 평가에 오라고 하는데 뭘 발표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갔어요. 저희가 정장 하나 사 가지고 인생 얘기를 했어요. 저희 로켓 만들고 싶고 근데 돈이 너무 없었고 열심히 하고 싶은데 돈 좀 주시면 안 될까 했는데 회장님이 회사를 만들어라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저희는 그 당시 돈이 너무 필요하니까 회사 만드는 거 만들면 되지. 사업자 등록하면 되지 해서 네, 만들겠습니다 하면서 저 회사가 시작이 된 겁니다.
5천만 원이라고 하는 돈이 회사 통장에 들어오는 거를 보니까 가슴이 뛰더라고요. 너무너무 상상하기 힘든 큰 돈이 들어오니까 이거 5천만 원을 무조건 10배, 20배로 회장님한테 돌려 주자. 우리가 돈을 벌어서. 그 무거운 감정이 저희한테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었던 거 같아요. 막상 뭘 하려고 하니까 야, 로켓으로 돈 벌 수 있어 하니까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로켓을 잠시 하지 말고 다른 걸 팔아서 그 돈을 벌어서 로켓을 나중에 만들자. 이렇게 되게 됩니다. 제가 야, 내가 온 동네 선배들한테 물어봐서 용역 과제를 할 수 있는 걸 따오겠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저희가 지게차 창고에 가서 잠을 자면서 지게차를 잘 주행시키기도 하고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고 온갖 과제를 저희가 막 다 했는데 그 당시에 다 겹치는 게 요즘 얘기하는 인공지능이고 그 당시에는 이제 머신러닝이라고 하는 기술을 알아야 됐던 거죠. 알파고가 바둑을 이제 이세돌과 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는데 저랑 저희 공동창업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아, 이게 뭔가 큰 게 될 것 같다. 이 머신러닝 분야의 전문가는 뭔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이거는 태동하는 분야니까 우리가 그냥 시작만 하면 전문가일 것 같다라는 아주 추상적인 그런 어떤 생각들을 했었고 야, 일단 모르겠지만 다 머신러닝 공부를 하자. 그런 합의가 서로 있었어요.
그래서 법인이라고 하는 걸 만들려고 보니까 이름을 지어야 되는데 그 머신러닝의 핵심이 신경망이다. 그래서 신경망으로 새로운 어떤 능력을 부여하자라고 해서 뉴로사이언스의 뉴를 넣자. 그리고 어떤 어빌리티를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추상적인 어빌리티를 넣어 놓자 해서 뉴빌리티로 하자라고 하게 됩니다. 그 투자를 받고 법인이라고 하는 거를 만든 게 2017년 10월 26일이었고 그게 저희 뉴빌리티라고 하는 회사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 시간이 벌써 2017년 10월에 첫 투자받고 19년 1월이 되니까 돈이 없더라고요. 카드사에서 독촉 전화가 오는 거예요. 돈이 밀렸으니 신용 불량자에 등록을 하겠다. 공동창업자한테 물어봤어요. 우리가 거의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를 했는데 그 어떠한 성과도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했는데 그 친구들 이미 번아웃이 와 있는 거야. 번아웃이 와서 너무 미안했어요. 그래서 지금 와서 말씀드리면 되게 느끼한 말인데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 남기는데 우리 남긴 게 없으니까 나한테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줘.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제가.
그래서 그날 밤부터 제가 뭐 하냐면 구글에 스타트업 투자 관련해서 검색했더니 국내 스타트업 투자 1위부터 10위 기관이 이렇게 뜨더라고요. 대표 이메일이 있잖아요. 그 한 10개, 20개를 제가 쭉 모아 가지고 그간 1년 동안 한 거를 써서 보냈는데 메일이 딱 한 통 온 거예요. 안녕하세요. 퓨처플레이입니다. 저희가 만나보고 싶은데 빠른 시기에 가능하실까요? 이렇게 해서 당연히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미팅을 했는데 정말 정말 극적으로 추가 투자를 받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 햅틱 기술을 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영상 처리였거든요. 영상에 대한 변화를 탐지해 햅틱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이 영상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자율주행의 핵심인 치위라고 해서 지도를 만들고 위치를 잡는 기술들을 만들자. 그러면 이 기술이 어디에 필요할까를 고민했을 때 드론, 자동차, 로봇 이 세 가지라고 생각을 했고 자율주행차는 현대차가 생각나는 거야. 드론은 그 당시에 중국이 너무 이 분야를 다 장악하고 있어서 그러면 로봇을 볼까라고 했는데 로봇은 유일하게 대기업이 없는 거예요. 그 당시에 시가총액 1조를 넘는 로봇 회사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이 분야를 해야겠다라는 게 저희의 피벗의 마지막이었고 시작이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로봇을 이제 실질적으로 제작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전에는 로켓 만들었었잖아요.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로켓 사이언스는 되게 어려운 문제여서 로켓 사이언스를 하는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막상 시작을 해 보니까 로봇의 바퀴를 설계해야 되는데 서스펜션의 유격 때문에 로봇이 조금만 주행하면 이렇게 왼쪽 끝으로 가 있는 거지. 직진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카메라가 너무 많아지니까 저희도 상상도 못 했던 이슈라고 전자파가 계속 나와서 간섭이 되는 거예요. 이 카메라의 영상에 전자파가 들어가 가지고 이 카메라의 영상 정보가 나오지 않게 되는, 저희가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문제니까 이제 전자파 차폐 기술부터 시작해서 서스펜션 그리고 댐퍼를 어떻게 하면 일렬로 설계해서 로봇이 일자로 갈 수 있게 하는지, 양산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이캐스팅 금형은 어떻게 파야 되는지, 싼 거를 선택해야 되는지 품질 좋은 걸 선택해야 되는지 정말 너무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의 결론은 첫 번째, 공동창업자들이랑 맨날 공부하자. 그냥 공장 가서 구르자. 모르면 그냥 해보자. 이래도 안 되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모셔오자. 해서 저희 공동창업자랑 저는 항상 했던 게 하루 종일 공부하는 거.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무슨 독서실에 온 것처럼 공부만 했어요. 유튜브 보고 전화하면서 공부하고 물어보면서 공부하고 현장 가서 보면서 공정에 대해서 공부하고 커피챗 하자. 그래서 저희 문제는 이런 건데요. 어떻게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좀 도움 좀 주세요. 이거 하느라 시간을 계속 보냈습니다.
그래서 거의 한 반년을 하니까 오시는 분들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고 고민을 계속 나누니까 기술에 대한 컨셉, 방향성, 어떻게 가야 되는지 이런 부분들이 하나하나씩 마치 퍼즐 맞추듯이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엔 제가 깨달았던 부분은 어떤 사업이든 현장에 손을 담가야 한다. 수영장에 뛰어들어야만 죽기 싫어서 막 헤엄치다가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그 과정을 무조건 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어느 순간에 되게 의연해졌어요. 아, 오케이, 또 시작이구나. 오케이. 한번 공부해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제 해결에 되게 덤덤해졌던 거 같아요. 제 자신과 저희 팀이.
제가 가장 마음적으로 힘들었던 거는 투자를 스타트업들은 받아야 되는데 규제 이슈가 되게 크리티컬하거든요. 투자 받을 때. 대표님, 규제 어떻게 얘기를 할 거예요? 근데 사실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속으로는 규제를 내가 풀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죠. 이런 생각은 들지만 사실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라고 하는 단어를 되게 좋아하는데 생각의 전환이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규제가 있으면 규제를 탓하고 규제가 문제다라고 얘기할 시간에 이 규제가 왜 해소돼야 되고 그 해소가 되기 위해서 저는 오히려 일을 더 벌렸던 거 같아요.
이게 무슨 소리냐면 규제가 안 풀리면 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풀어야 된다. 규제를 풀려면 시민들이 이 로봇이 필요하다라는 거를 인지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해서 저는 오히려 샌드박스에서 미친 척하고 로봇을 100대를 까는 모험을 해보자. 그러면 샌드박스를 운영하시는 분들이나 시민들도 오, 한두 대만 하세요. 100대 하시면 어떡해요? 규제가 풀린 게 아닌데.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역설적으로 저는 계속 그런 질문을 드렸어요.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는 취지가 데이터를 보기 위해서래요. 데이터를 보고 이게 진짜 실효성 있는지를 판단을 해야 되는데 제가 그 당시 말씀드린 거는 고속도로를 깔아놨는데 차가 한 대만 다니면 사고가 절대 안 난다. 근데 고속도로에 차가 10만 대 다니니 사고가 나더라. 그러면서 법규가 생기고 제한이 생기는데 고속도로에 차 한 대 다니면 어떠한 데이터를 들여다봐도 안전하다라는 답밖에 안 나온다. 그러니까 앞뒤가 뭔가 잘못된 거죠. 데이터는 필요한데 데이터는 수집을 못 하는 상황이에요. 한 대로 해야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100대, 천 대를 운영하겠다. 그러면 소비자들이 어, 로봇이 필요하네라는 인식을 갖게 될 거고 그 인식을 갖고 있으면 법을 풀기 훨씬 더 편하신 거 아니냐라고 말씀드렸더니 어, 그러면 좀 안 될 거 같은데요.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생각을 했죠. 그럼 법의 문제를 푸는 동안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없는 사유지부터 로봇 서비스를 상용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사유지 시장에서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것은 보안 순찰 로봇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서 순찰 로봇을 먼저 팔기로 결정을 하고 순찰 시장을 개화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됐습니다.
사실은 뉴빌리티나 또 로봇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나는 2020년, 21년 코로나, 22년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거의 처음으로 우리 삶 속에 로봇이 필요하다라는 거를 인지하게 됐어요. 왜냐면 코로나를 거치면서 사람이 부족해지고 비대면이 강화되고 하면서 최초로 사람 대신해서 로봇이 일을 해야 되네. 그리고 일을 시켰더니 나쁘지 않네. 요런 인식이 생겼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도로교통법이 인증을 받은 로봇에 한해서는 사람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다음 달부터 정말 로봇이 그냥 몇 대씩 몇십 대씩 나가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행복했죠. 기존에 고객들을 만나면 아, 저 법이 통과가 안 돼서 못 하겠어요라는 얘기를 제일 많이 들었는데 법이 통과되고 나서는 아, 법이 통과됐으니까 써 볼게요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옛날에는 로봇이 시장이 없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너무 힘들었는데 시장은 있는데 어떤 로봇이어야 해라는 논의로 바뀌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너무 고무적인 거 같고.
사실은 고민은 계속 있죠. 저는 고민이 해소되는 거는 로또 같아서 그럴 일은 아주 희박하게 있는 거 같아요. 근데 규제를 해소할 때도 그렇고 로봇 판매할 때도 그렇고 점진적으로 나가다 보면 한 3년 뒤에 보니까 어, 바뀌어져 있더라라는 느낌이 드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로봇이 우리 일상 속에 들어갈 수 있지? 이런 걸 계속 고민하는 여정이 솔직히 있고 그 고민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는 거를 찾는 거는 저는 거의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는 그냥 꾸준하게 마라톤처럼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2024년이 제일 힘들었어요. 저희가 2022년에 260억 정도를 투자를 받고 한 3년 정도를 이제 비용을 썼는데 3년 동안 규제를 푸는 데 거의 사용을 하고 또 없는 시장을 막 창출하는 데 사용을 한 건데 어떻게 보면 연료가 떨어진 거죠. 스타트업의 연료인 돈이 떨어진 거죠. 그래서 2024년 1월부터 시리즈 B 투자를 준비를 하고 라운드를 시작을 했는데 예비 투심에서 350억이 다 통과됐었고 저의 경험상 예비 투심이 잘 되면 본 투심에서 크게 문제가 된 사례들이 많지 않아서 투자가 끝날 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데 2024년 12월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계엄 이슈가 있었습니다. 다음날에 계엄 이슈가 생겼고 그다음 날에 저한테 전화가 옵니다. 대표님, 저희가 본 투심을 못 할 것 같아요. 라고 해서 50억이 없어졌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50억이 어, 거기서 안 하면 저희도 힘들 것 같아요. 저희는 350억이 될 줄 알고 50억을 출자한다 했어요. 라고 해서 또 50억이 떨어지니까 250억 중에 100억을 또 커밋했던 곳이 대표님, 350억에서 저희가 100억 투자한 건데 250억이면 대표님이 아무리 못 해도 50억을 더 모으시면 저희가 할게요. 했는데 그 와중에 또 다른 50억이 또 잘 되지 않아서 저희가 되게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런웨이가 2개월이었습니다. 25년 2월까지 런웨이가 있었는데 거의 250억이 날아가고 300억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정상화시키지. 2개월 안에. 제가 정말 인생 최초로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거를 너무 갑갑한 거죠. 이거 안 될 걸 아는 거죠. 내 자신도 알면서 포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1월에 40%의 인력을 저희가 줄입니다. 근데 저도 참 9년을 운영을 했는데 초보 대표였던 게 40%의 인력을 줄이니까 퇴직금이 나가야 되더라고요. 2월까지 있던 런웨이가 1월로 줄어요.
그러면 이제 나머지 60%를 당장 2월에 급여가 지급이 돼야 되는데 답이 없죠. 그래서 저희 공동창업자님이랑 재무 팀장님이랑 인사 팀장님이 이렇게 자기가 대출을 받아서 돈을 만듭니다. 몇 억을. 그렇게 돈이 부족한 거예요. 근데 저희가 참 운이 좋은 게 그 1월 말, 2월 초에 모 고객사가 10억치 계약을 찍어 줘요. 이게 3개월 뒤에 돈이 들어오니까 은행에 제가 급히 뛰어가서 이 돈을 먼저 좀 지급해 주십시오. 했는데 그 돈을 다 받을 수는 없고 반만 주겠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돈 몇 억을 또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2월에 급여가 나가고 3월 급여까지 생기는 거죠.
근데 그 와중에 대표님, 저희가 리드를 설 테니 스타트업 계속 하세요. 하면서 50억을 이제 인비저닝파트너스라고 하는 곳에서 커밋을 하기 시작하면서 투자가 우르르 되면서 제가 한 260억 정도를 모아서 이제 클로징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얻는 교훈은 뭐냐? 그러니까 스타트업은 계속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고 그 문제가 고객의 문제일 수 있지만 회사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냥 그런 상황에 자꾸 누구 말을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자신들이 단단해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하더라는 거죠. 이 문제를 시니어가 해결해 줄 수 있냐, 어른이 해결해 줄 수 있냐, 경험을 가지신 분이 해결할 수 있냐? 저는 이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업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창업자와 팀밖에 없다. 누구나 아는 문제들은 선배가 해결할 수 있고 조언을 통해서 해결이 되는 영역이 있지만 결국에 내 사업의 문제는 대표와 그 회사의 구성원들이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게 유일한 해답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무슨 얘기를 너무 하고 싶었냐면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들 말 너무 듣지 말자. 그거에서 해답이 별로 없더라. 내가 상상한 건 내가 해결해야 되는 거고 결국 이 문제의 해답은 결국에 우리 자신들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부딪히고 깨지는 거를 무서워하면 안 되고 그냥 그거를 즐겨야 되고 그냥 문제가 생기면 오케이, 나한테 또 미션이 떨어졌구나. 어떤 상황이 있더라도 포기만 안 하면 그 속에 길이 있는 거고 교훈이 있으니까 그거를 그냥 포기하지 않고 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그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일 어려웠던 질문은 대표님 5년 뒤에 꿈이 뭐예요? 10년 뒤에 꿈이 뭐예요? 3년 뒤에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주면 솔직히는 저도 모르겠어요라고 얘기를 해요. 제 경험에서는 앞으로 한 달 뒤의 계획도 잘 안 맞거든요. 사실 막 비전 있게 꿈을 갖고 10년 뒤에는 100억을 벌 거예요. 20년 뒤에는 1조의 자산가가 될 거예요. 이런 꿈보다는 그냥 이번 주의 일 그리고 오늘 계획했던 일을 잘 수행해 나가고 내가 구성원들한테 혹은 대외적으로 얘기하고 다니는 그 계획들을 잘 지켜 나가면 5년 뒤에 돌아봤더니 그 계획이 잘 지켜져 있더라라는 거죠.
규제를 풀었을 때도 규제 해소 로드맵이 2029년에 돼 있었어요. 사실 2024년에 풀렸거든요. 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꾸준하게 오늘, 오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처럼 그냥 오늘, 내일 정말 열심히 살고 싶어요. 그냥 대단한 꿈보다는 그냥 꾸준하게 마라톤이다 생각하고 천천히 가든 빠르게 가든 버즈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버즈가 너무 많아요. 하다 보면 막 누가 얼마 투자받았다, 누구는 뭘 했다, 누구는 뭘 했다. 그런 거에 너무 매몰되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다 보면 사람은 다 답을 찾더라.
1천억짜리 회사는 무의미한가요? 3천억짜리 회사는 무의미한가요? 따지고 보면 상장된 회사, 1조 안 된 회사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반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아요. 그냥 그런 버즈에 자꾸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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