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톨로지로 '일하는 동료'를 만든다: 인핸스 이승현 창업자가 말하는 산업 특화 AI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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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인핸스(Enhans)는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 에이전트를 공급하는 스타트업이다. 창업자 이승현 대표는 에이전트를 "일하는 동료"라고 설명한다. 특정 산업을 잘 이해하고, 고객 기업의 업무 방식에 맞춰 함께 일하는 동료를 공급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최근 매출은 100억 원 가까이 되고, 인핸스의 에이전트는 50개국 이상에서 일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창업에 이르기까지의 경험과 여러 번의 실패, 그리고 에이전트가 안정적으로 일하게 된 전환점인 '온톨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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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에서 시작된 관심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과 해킹도 해 보고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이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느낀 결정적인 순간은 대학 시절 영화 〈Her〉를 봤을 때였다. 영상미도 좋았지만, AI가 사람과 대화하면서 일을 대신 해 주고 친구가 되어 주는 과정이 아름답고 멋있게 보였고, 그 뒤로 인공지능에 깊이 빠졌다고 말한다.

첫 수익 배분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지다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도교수를 따라간 의대 교수와의 미팅이었다. 의대 교수는 경동맥 같은 부위를 인식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지도교수는 어렵겠다고 답했다. 지도교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의대 교수가 이 대표에게 "그렇게 어렵냐"고 물었고,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하자 직접 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실력 있는 친구 세 명을 불러 인식 프로그램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고 조금씩 발전해 결국 실제 구매로 이어졌다. 여기서 생긴 수익을 함께한 친구들에게 나눠 주자 모두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이 대표는 이때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그 수익을 잘 나누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고 느꼈다. 그러려면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고 한다.

삼성전자에서 여러 직무를 거치다

하지만 개발만으로는 제품을 팔고 기업을 운영할 수 없었다. 마케팅, 인사, 재무도 필요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가장 잘하는 기업이 어디일지 생각했고, 당시 자신의 "어린 눈"에는 삼성전자가 독보적으로 보여 입사를 결정했다.

삼성전자에서 그는 직무를 유난히 많이 옮겼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로 입사했지만 교육을 마친 뒤 인사팀에 배치되어 채용 업무를 배웠다. 이후 원하는 부서를 물었을 때 영화 〈Her〉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고 답해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다음에는 UX에 관심이 생겨 디자인팀에 지원했고, 그곳에서 3~4년을 보냈다. 엔지니어로 입사해 이렇게 여러 직무를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길이 막혀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늘 손을 들고 먼저 이동을 요청하는 편이었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분야를 깊이 배울 수 있었다. 이 경험이 창업 이후 큰 자양분이 됐다고 돌아본다.

룸메이트의 아마존 판매와 자동화의 발견

창업의 또 다른 계기는 룸메이트였다. 룸메이트는 아마존에서 신발 박스를 팔았는데, 처음에는 한두 개씩 팔리다가 어느 순간 100개, 200개씩 팔리기 시작했다. 신발 박스는 모두 중국에서 떼어 오는 물건이라 중국에 주문을 넣고 상품 문의에 대응하는 등 손으로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이 대표는 왜 이 일을 일일이 손으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룸메이트도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그는 친구들을 모아 약 1년 반 동안 주말마다 자신의 집에서 개발과 테스트를 반복했다. 그러다 중국에서 조달한 상품을 오픈마켓에 올려 두자 주문이 들어오고, 파이프라인을 따라 사람 없이 판매가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됐다. 자동화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 자금만 있으면 계속 팔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 매우 강렬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현실의 더 많은 일을 운영하고 자동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2021년 '자동화'를 주제로 창업했다.

첫 프로젝트의 실패와 남대문에서 배운 암묵지

첫 프로젝트는 중국 공장의 상품을 검색하고 클릭 한 번이면 물류 전 과정을 거쳐 내 창고까지 상품이 도착하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실제로 적용해 보니 데이터나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현실의 디테일과 사람의 판단 요소가 너무 많았다. 사진으로 본 상품이 실물로는 조잡한 경우가 많았다. 또 대량 구매가 일어나야 하는 구조였는데, 실제 이용자들은 소량으로만 샀다.

대량 유통업자들이 왜 서비스를 쓰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이 대표는 남대문 시장을 직접 찾아갔다. 당시 서비스에는 상품을 화면에 비추면 중국 공장 가격과 배송 기간을 알려 주는 기능이 있었다. 그는 상인들에게 지금 2,000원에 파는 물건을 350원에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반응은 거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1층부터 모든 층을 돌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주 드나들자 한 여성 사장이 그를 불러 이유를 알려 줬다. 이 대표가 전한 내용은 이렇다. 가끔은 너희가 더 쌀 때도 있겠지만, 자신에게는 중국에 '사입 삼촌'이 있다. 그 사람은 품절이 나면 한국에서라도 물건을 찾아 빨리 보내 주고, 원하는 제품이 없으면 최대한 비슷한 것이라도 구해 준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산다는 걸 알면 그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그만큼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그건 사업에 큰 리스크라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이 경험에서, 이론적으로 얼마나 싸냐보다 업무가 운영되는 전체 프로세스와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암묵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이득이 있어야 고객이 새로운 서비스를 쓴다는 교훈을 얻은 소중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한 고객에게만 맞았던 광고 기능

여러 프로젝트가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가운데, 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AI가 광고를 똑똑하게 운영해 광고 단가는 낮추면서 노출은 늘리는 기능이었다. 한 사장이 정말 필요하다고 해서 만든 기능이었고, 그 사장은 매우 만족했다. 하지만 다른 판매자들은 필요 없다거나 자신은 그런 방식으로 팔지 않는다는 반응이었고, 결국 사용자는 극소수에 그쳤다.

여기서 이 대표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커머스에서 물건을 팔려면 가격 관리, 정산, CS, 광고를 모두 해야 하지만, 그 방식은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각 기업에 특화된 기능을 매우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즉 커스터마이징이 쉬운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워크 프로세스 위에서 동작하는 에이전트, 그리고 남은 문제

인핸스는 먼저 기업별 워크 프로세스를 정의하고, 그 위에서 에이전트가 동작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고객이 "우리는 A 방식으로 일한다" 또는 "A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고 하면 그 방식을 에이전트에 빠르게 적용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기업마다 방식이 모두 달라서, 매번 사람이 하나하나 맞추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다음 고민이었다.

삼성전자 연구소의 기억에서 찾은 답, 온톨로지

해답은 삼성전자 연구소 시절의 경험에서 나왔다. 이 대표가 처음 배치된 연구소 팀이 바로 지식 그래프와 온톨로지를 만드는 팀이었다. 그는 온톨로지가 오래된 개념이며, 1980년대부터 팀 버너스리가 월드와이드웹을 만들면서 형성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든 예는 이렇다. AI에게 "세차하러 가는데 걸어가는 게 좋을까, 차를 가져가는 게 좋을까"라고 물으면 걸어가는 게 좋겠다고 답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차장에 차를 안 가져가면 세차를 할 수 없다. AI가 세차장, 차, 나 사이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온톨로지가 있으면 "세차장에는 차를 씻기러 가는 것이므로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개념을 미리 구성해 둘 수 있다. 이 대표는 온톨로지를 세상에 어떤 존재가 있고, A와 B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AI가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 지식 체계라고 정의한다.

도메인 전문가의 암묵지를 빠르게 체계화하기

인핸스는 2024년 말부터 온톨로지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대표는 온톨로지를 잘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도메인 전문가의 지식, 특히 암묵지를 잘 녹여 넣는 것이라고 본다. 또 온톨로지에서 어떤 관계가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지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사람이 암묵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인핸스는 전문가가 지식을 쏟아내면 AI가 이를 체계화해 온톨로지를 더 빠르게 구성하는 방식을 발전시켰고, 이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고 한다. 이 대표는 온톨로지를 구성한 이후에야 비로소 에이전트가 안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제품이 고객에게 실제 가치를 주기 시작하자 고객이 더 늘었고, 커머스·리테일 외의 다양한 버티컬 고객사도 생기고 있다.

커머스·리테일을 넘어 제조·금융으로

영역 확장은 고객의 요청에서 시작됐다. 인핸스의 기술로 제조 분야에서도 온톨로지 기반 자동화가 가능하지 않냐는 요청이 들어왔고, 검토해 보니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이 대표는 이때 커머스·리테일에만 매몰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인핸스의 산업 특화 영역은 커머스·리테일에서 제조, 금융 등으로 넓어지고 있으며, 분야별 도메인 지식도 쌓아 가는 중이라고 한다.

대결에서 협업으로: 알파고 대국 10주년 행사

이 대표는 많은 사람이 AI를 단순히 대화하는 챗봇으로 생각하지만, 지금은 에이전트의 시대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에이전트는 대화를 넘어 고객의 의도를 파악하고 실제 실행까지 하는 존재다.

인핸스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으로부터 정확히 10년이 되는 2026년 3월 9일, 이세돌 9단과 함께 행사를 열었다. 이 대표가 이 행사로 알리고 싶었던 것은 AI와 사람의 관계 변화였다. 10년 전에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대결했지만, 지금은 내 일을 돕고 내 의도대로 설계되는 에이전트와 협업하는 구도로 관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에이전트를 도입하려는 기업이 점검할 것

이 대표는 앞으로 모든 기업이 에이전트를 활용하게 될 것으로 본다. 에이전트가 안정적으로 일하려면 기업이 가진 지식을 에이전트에게 잘 설명해 줘야 한다. 그는 기업이 기본적으로 다음을 점검해 볼 것을 권한다.

  • 에이전트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 그 문제에 대한 우리 데이터는 충분한가
  • 데이터가 없다면 어떻게 쌓을 수 있는가
  • 이미 있는 정보들을 연결할 수 있는가

그는 데이터가 없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점검이 앞으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표: AI 시대의 운영체제 기업

인터뷰 마지막에 이 대표는 인핸스가 AI 시대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운영체제 기업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단순히 해외에서 제품이 팔리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의 기술이 세계에서 임팩트 있는 족적을 남기고, AI 에이전트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것이 그가 내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