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면받은 '영상 이해 AI', 실리콘밸리에서 1억 달러를 받기까지: 트웰브랩스 이재성 대표와 네이버벤처스 박용정 파트너의 대화

YouTube에서 열기 ↗
개요

트웰브랩스는 영상을 사람처럼 이해하는 AI를 만드는 회사다. 최근 약 1,500억 원(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B를 마무리했다. 이 라운드는 미국의 NEA와 네이버벤처스가 공동 리드했다. 엔비디아, 아마존, 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브릭스 같은 전략적 투자자가 참여했고, 인덱스벤처스와 월드랩스를 만들고 있는 페이페이 리, 메타에 회사를 매각한 알렉산더 왕 등도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10 분 분량

이 영상은 트웰브랩스의 이태원 오피스를 둘러보고 구성원들을 만난 뒤, 이재성 대표와 네이버벤처스의 박용정 제너럴 파트너(YJ)와 대담을 나누는 구성이다. 중심 질문은 두 가지다. 모두가 언어 모델로 몰려가던 시기에 20대 한국인 창업팀은 왜 가장 어려운 영상을 택했는가. 그리고 한국에서 투자자를 찾지 못한 팀이 어떻게 실리콘밸리에서 빅테크와 경쟁하게 되었는가.

영상을 이해하는 AI란 무엇인가

이재성 대표는 트웰브랩스를 "영상을 사람처럼 이해하는 AI를 만드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고객은 트웰브랩스의 모델로 방대한 영상 데이터를 빠르게 검색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 또 영상을 빠르게 분석해 스포츠 분석이나 하이라이트 생성 같은 작업에 활용한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 두 곳에 거점이 있지만 역할은 다르다. 이 대표에 따르면 고객이 지금 쓰는 모델과 에이전트 개발은 모두 서울에서 이뤄진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그 모델 위에 자체 래퍼 제품을 만들고, 시장 진출(GTM)도 주로 그곳에서 맡는다. 최근에는 한국 GTM 팀도 꾸리고 있다고 했다. 핵심 개발을 한국에 두는 이유로 그는 한국 창업자라는 점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하는 연구들이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 곧 "여기서도 만들 수 있다"는 자존심을 들었다.

왜 테헤란로가 아니라 이태원인가

한국 스타트업은 보통 테헤란로나 역삼역 부근에 자리를 잡는다. 트웰브랩스도 그런 추천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태원을 고른 데는 사연이 있다. 창업자들은 용산에서 함께 군 복무를 했고, 휴가나 외출 때 이 근처 카페에서 같이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 대표에게 이태원은 초심을 상징하는 곳이다. 미국과 한국 팀원이 섞여 일하게 되니 인터내셔널한 분위기가 어울린다는 판단도 있었다.

그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려면 소음에서 떨어진 "우리만의 아지트"가 필요하다고 봤다. 잘하면 투자자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사무실은 원래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가 쓰던 공간이다. 천장이 높은 아트리움 구조라 답답하지 않고, 서로 얼굴이 보이도록 트여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구성원들이 말하는 트웰브랩스: 시각 지능과 에이전트 '자키'

머신러닝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최세현 씨는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약 2년간 일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시각 지능을 "진정한 지능으로 가는 길 중 하나"로 여겼다고 한다. 인간의 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70% 이상이 시각 정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삼성전자에서는 큰일을 할 수 있었지만, 하고 싶던 시각 지능 연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 비전과 영상 분야의 기회를 찾다가 트웰브랩스를 알게 됐다.

그의 팀은 '자키'라는 새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자키는 트웰브랩스의 두 모델인 페가수스와 마렝고를 함께 쓴다. 대량의 영상 데이터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영상, 이미지, 다른 모달리티까지 구조화해 저장하고 소화하는 "에이전틱 플랫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질문하면 답하는 대화형 에이전트와 달리,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자유롭게 다루고 확장하는 데 초점을 둔다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했다. 머신러닝 리서치 엔지니어 손상현 씨도 함께 소개됐다.

이 대표가 "정신적 지주"로 꼽은 사람은 사장 겸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윤 박사다. 이 대표에 따르면 김 박사는 창업자 출신이다. 애플에서 시리를 만든 팀의 주요 일원이었고, SKT에서 CTO를 지냈으며 벤처 투자도 했다. 이 대표는 2년 동안 공을 들여 그를 모셔 왔다며 "매우 닮고 싶은 선배님"이라고 했다.

합류 20개월째라는 김 박사로 보이는 발언자는 처음 트웰브랩스를 투자자 입장에서 접했다고 회상했다. 약 4년 전, ChatGPT가 나오기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GPT-3.5조차 너무 비싸서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던 때였다. 그래서 영상 이해라는 문제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좋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가능성의 폭이 너무 커서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행자는 영상 모델이 언어 모델보다 GPU가 훨씬 더 많이 들지 않느냐는 통념도 함께 짚었다.

네이버벤처스의 1호 투자 논리: 텍스트는 압축된 기록이다

박용정 파트너에 따르면 네이버벤처스는 설립 1년 정도 됐고, 트웰브랩스는 그 첫 투자처였다. 그는 투자 논리가 간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전 세계 데이터의 80% 이상이 영상 형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AI 모델은 대부분 텍스트 위에 세워졌다. 텍스트는 인간이 현실 세계를 사후에 압축해 둔 기록이라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사라진다. 그는 와인잔 예를 들었다. 자막에는 "와인잔이 깨졌다"고 한 줄 적히고 말지만, 실제 영상은 그 앞뒤 매 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 AI가 물리 세계를 이해하려면 결국 이런 원본 신호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박 파트너는 이 문제 하나에 5년 넘게 집중해 온 팀은 전 세계에서 트웰브랩스가 유일하다고 판단했다. 좁은 분야를 깊게 파면서, 빅테크나 프론티어 랩이 따라오기 어려운 실행 속도로 사업을 키우고 있다고도 봤다. 근거로는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영상 기술을 도입하면서 빅테크의 유사 모델 대신 트웰브랩스를 선택한 사례가 여러 번 반복됐다는 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빅테크가 결국 모든 걸 가져간다"는 전제가 꼭 맞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례도 제시했다. 하이퍼스케일러가 클라우드 시장을 장악했는데도 데이터 스토리지와 애널리틱스에서는 스노우플레이크와 데이터브릭스가 의미 있게 성장했다. 결제에서는 스트라이프가, 코딩에서는 커서가 새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박 파트너는 영상 이해가 지금 그렇게 비어 있는 자리이고, 트웰브랩스가 그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경로도 소개됐다. 박 파트너가 실리콘밸리로 옮긴 것은 약 2년 전이다. 실리콘밸리의 한 VC에서 나와 자기 펀드를 만들던 인도계 투자자가 그를 한국에서 온 투자자로 알고 이 대표를 소개해 줬다. 진행자는 한국인 두 사람이 인도계 투자자를 거쳐 실리콘밸리에서 만났다며 "돌고 돌아 만난 셈"이라고 표현했다.

박용정 파트너와 네이버벤처스: 관계로 쌓은 네트워크

박 파트너는 네이버에서 투자 업무를 한 지 8년이 조금 넘었다. 사업부가 검토하는 전략적 투자 건의 실사와 실행을 맡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네이버의 글로벌 투자 업무도 일부 담당했는데,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일부터 여러 티어 1 VC에 LP로 출자하는 일까지 포함된다. 그 과정에서 실리콘밸리 핵심 VC들과 관계를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AI 시대의 창업자에게 직접 투자하고 투자 이후 네이버와의 협업을 도모하려고 실리콘밸리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진행자는 a16z나 라이트스피드 같은 곳은 돈이 있다고 다 받아주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었는지 물었다. 박 파트너는 먼저 그 어려움을 인정했다. 펀드 규모가 커지고 메가 펀드 운용사가 등장하면서, 작은 금액으로 전략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벤처 산업은 차고에서 시작된 매우 개인적인 비즈니스라는 점을 강조했다. 출자자와 운용사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무엇을 돕고 도움받을 수 있는지를 오래 쌓은 관계가 힘이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출자 금액과 상관없이 한국 기술이나 기업이 궁금할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됐다고 한다. 한국 스타트업이 북미에 진출해 현지 VC와 접촉하는 일이 늘면서, 그 VC들이 레퍼런스를 구하려고 네이버벤처스에 먼저 연락한다. 네이버 출신 창업자도 여럿 있어 개인적인 질문을 하거나 실사 과정에서 그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했다.

시리즈 B의 의미: 텍스트뿐인 '의미 계층'에 영상을 더하다

이 대표는 이번 시리즈 B를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대규모 영상 처리 기술, 그 위의 자체 영상 파운데이션 모델, 그 위에 쌓는 에이전트 스택까지 제대로 시작이 됐으니 더 빠르고 크게 나아가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더 거시적인 그림으로 설명했다. 텍스트가 압축 데이터라면, 영상은 인간이 세상을 배울 때 쓰는 원천 데이터에 가깝다. 지금 업계는 온통 '토큰' 이야기를 한다. 표 형식 데이터나 PDF 원본 같은 데이터도 언어 모델을 거쳐 의미 계층, 곧 시맨틱 데이터로 바뀌는데, 그 대부분은 텍스트에서 나온 토큰이다. 영상을 이해해서 들어간 토큰은 이 계층에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시각적으로 정확한 정보가 이 계층에 들어가면 훨씬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그는 본다. 트웰브랩스는 이 시맨틱 데이터 계층을 더 견고하고 활용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진행자는 AI가 사람처럼 이해하고 행동하려면 결국 눈이 필요하며, 그 큰 축이 비디오라고 받았다. 이 대표도 로보틱스를 예로 들며 동의했다. 비전-언어-액션 모델 같은 것도 영상 이해를 정말 잘해야 로봇에 필요한 성능이 나온다는 것이다.

군대 선후임에서 창업팀으로: "더럽게 어렵다"는 문제를 고른 이유

진행자는 이 사업이 젊은 사람보다는 경험 많은 천재들이 모여서 할 일처럼 들린다며 창업 과정을 물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창업자들은 군대 선후임 사이로 만났다. 2018년에서 2020년 무렵 특수한 환경에서 함께 AI 연구 개발을 했고, 대규모 영상 이해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영상이 "정말 더럽게 어렵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원래 계획은 전역 후 다 같이 대학원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 논문이 나왔고, 의미 있는 AI 연구를 하려면 스케일링이 필요해 보였다.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텍스트 쪽에 몰려 있었고, 영상에서 출발해 지능형 시스템을 만드는 그룹은 부재해 보였다. 이 대표는 "똑똑하긴 하나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딪혀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진행자는 GPT 이전인 2018년에 트랜스포머를 접한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텍스트로 뛰어들었는데 왜 굳이 어려운 쪽을 택했는지 다시 물었다. 이 대표는 회사의 철학과 연결해 답했다. 세상을 잘 이해하는 AI가 유용할 텐데, 그러려면 인간이 세상을 배우는 신호와 가장 비슷한 데이터에서 학습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아무도 하지 않고, 어렵고, 언어 모델보다 낯선 분야라 오히려 고유한 포지션을 잡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어려워서 더 집착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생성으로 이해하기보다, 사람이 영상을 보는 방식에서 배운다

진행자는 디퓨전 모델 등장 이후 영상 생성이 잘되기 시작했는데, 그런 흐름이 검색과 이해에도 힌트가 됐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디퓨전 모델과 트웰브랩스의 모델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디퓨전 모델은 생성 모델이고, 생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월드 모델의 방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생성을 통한 이해가 먼저 잘될지 의문이 있었다고 했다.

언어 모델은 다음 단어를 잘 예측하면 훌륭한 시스템이 된다는 가설 위에 서 있다. 이를 영상에 그대로 옮기면 다음 프레임을 예측해 보자는 발상이 된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디퓨전이나 언어 모델에서 힌트를 얻기보다는, 사람이 영상을 볼 때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예로 든 장면은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팅이다. 길게 활주하는 장면은 느긋하게 보다가, 트리플 악셀을 뛰기 직전에는 확 집중해서 본다. 이런 주의 배분을 데이터 처리 시스템에서 어떻게 구현할지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VC가 창업자를 보는 기준, 그리고 한국에서의 거절

진행자는 3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이 대표를 처음 봤을 때 "한국에 없는 캐릭터의 창업자"라고 느꼈다고 했다. 박 파트너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며 VC가 창업자를 보는 기준을 설명했다. 첫째는 창업자-시장 적합성, 곧 왜 하필 이 사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고 풀어야 하는지다. 둘째는 트렌드를 좇는 사람인지, 이 문제 자체에 매달린 사람인지다. 셋째는 리소스가 부족해도 끝까지 해내려는 집요함과 이를 버틸 스태미너가 있는지다. 그는 이 대표가 세 가지가 모두 겹치는 드문 경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진행자는 2023년 실리콘밸리 분위기도 떠올렸다. AI로 PPT를 만들어 주는 회사들이 수백억, 수천억 원 단위 투자를 받던 때였는데, 영상을 이해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화해 보니 한국에서 창업해 투자처를 돌았지만 이 비전을 믿어 준 초기 투자자가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너무 앞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신들도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밸리에는 이런 기술을 더 관대하게 알아봐 줄 관중이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될지는 몰라도 "엄청 어렵고 재밌는 걸 하네"라며 응원하는 분위기가 그쪽에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좋게 말해 주는 투자자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시장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지 않았고 시장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한국에서 만들어서 밸리에 가서 어떻게든 싸워서 이겨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를 "무식하게 용감하게" 나가서 싸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대출과 과외비로 만든 첫 모델, 그리고 인덱스벤처스의 시드

모델을 만드는 회사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 대표는 전역 후 초기 과정을 이렇게 풀어 놓았다. 코로나 시기에 원격으로 액셀러레이터 테크스타스에 참여했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CTO는 미국 수능에 해당하는 SAT 과외로 생활비를 벌었다. 이 대표는 이전에 일해서 모은 돈으로 버텼다.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하자 대출을 받아 공동창업자들의 장비를 사 주고 월급도 줬다. 그는 이를 "뒤가 없는 행동", "어떻게든 되겠지"였다고 표현했다.

결정적인 도움은 테크스타스를 통해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받은 상당한 크레딧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와 지금의 규모 차이도 짚었다. 지금은 모델 하나 훈련에 1,000억 원이 들어가지만, 그때는 모델 훈련에 3억 원을 태웠다는 것만으로도 놀라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가진 것을 다 모아 만든 것이 검색 모델 마렝고의 프로토타입이다. 이 모델이 ICCV라는 국제 대회의 영상 이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성과가 인덱스벤처스의 눈에 들었다. 이 대표는 인덱스벤처스를 앤트로픽, 피그마, 노션, 코히어 등에 투자한 밸리의 티어 1 VC로 소개했다. 이미 언어 모델에 베팅해 둔 인덱스가 "LLM과 텍스트 다음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2022년에 비디오라는 답을 낸 것 같다고 했다. 시드 라운드 규모는 500만 달러였다.

박 파트너는 여기서 네이버의 "슬픈 기억"을 꺼냈다. 그 시드 라운드에 네이버에서 시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D2SF가 투자 의향을 전달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덱스가 라운드를 다 가져가고 싶어 했고, 엔젤 투자자들도 큰 금액을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덱스가 얼마나 대단한 VC인지도 이 대표는 나중에야 실감했다고 한다. 계약서에 서명한 뒤 테크스타스 매니징 디렉터에게 전화해 사인했다고 알렸다. 상대는 크게 놀랐는데, "대박이다"라는 반응이라기보다는 그런 결정은 상의하고 해야 한다, 이런 전략들이 있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일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서명하고 2~3개월 뒤에는 다르게 했어야 했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경험 없던 팀의 영업: 바 스툴 세 개와 "간절함"

진행자는 20대 한국인들로, 소프트웨어를 팔아 본 적도 미디어 업계 경험도 없는 팀이 어떻게 고객을 만들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미디어를 전혀 몰랐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고객들이 암스테르담의 국제방송컨퍼런스(IBC)에 많이 온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가 보기로 했다. 부스는 비싸서 낼 수 없었다. 대신 바 스툴 세 개를 어떻게든 구해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넷플릭스 사람이 지나가면 "넷플릭스!" 하고 불러 세웠다고 한다.

비결을 묻자 그는 "진짜 비결은 없는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다만 "그 누구보다 간절하긴 했던 것 같다"고 했고,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델은 빠르게 대체된다: '영상 인지 시스템'이라는 풀스택

대화는 집중의 문제로 이어졌다. 진행자로 보이는 발언자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을 예로 들었다. 오픈AI가 전선을 넓힌 사이 앤트로픽은 글쓰기와 코딩 두 가지만 밀어 좋은 숫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앤트로픽이 배포 쪽으로 전선을 넓히자 오픈AI가 반대로 좁혀 코덱스에 집중하며 맞붙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모델은 빠르게 대체된다고 평했다.

이 대표는 그래서 모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모델 위에 인텔리전스 계층을 두고, 그 위에 시스템을 두고, 그 시스템으로 가치를 만드는 것까지 풀스택으로 전달해야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트웰브랩스가 만드는 것이 이 대표가 '영상 인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앞서 언급된 에이전트 제품 자키가 그 구현이다. 그는 이 시스템을 세 계층으로 설명했다. 영상을 인식하는 계층, 인식된 사실을 바탕으로 영상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계층, 그 기억을 언제든 다시 찾아보며 추론하는 계층이다.

소버린 AI를 다시 정의하기

진행자는 한국과 미국의 AI 담론 차이에 아쉬움을 표했다. 미국은 AI를 패권 전쟁으로 보고 공격적으로 접근하는데, 한국은 방어적 관점의 소버린 AI 논의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만의 AI도 중요하지만, 이 기회에 세계 표준이 될 만한 것을 만들어 공급하는 훌륭한 회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트웰브랩스가 그 대표 주자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소버린 AI의 정의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진행자가 어느 순간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고 하자 그도 동의했다. 그가 생각하는 소버린 AI는 다른 나라 기업들이 서비스를 만들 때 쓰는 인텔리전스 계층에 내장되는 모델이다. 전 세계 기업이 가치를 창출할 때마다 작은 몫이라도 지속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 그것이 소버린 AI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 모든 카메라 영상을 처리하는 날까지

이 대표는 계획이 단순하다고 했다. 누구보다 영상을 잘 이해하고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더 열심히 만드는 것이다. 다만 "지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것"이 가장 실행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목표로는 카메라로 캡처된 영상이 모두 트웰브랩스를 통해 처리되는 날을 제시했다.

박 파트너는 트웰브랩스 같은 창업자를 계속 발굴하는 것을 가장 큰 미션으로 꼽았다. 네이버벤처스 자체도 1년밖에 안 된 "투자하는 스타트업" 같다고 했다. 그가 말한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와 북미 시장에 진출할 때 돕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대 방향으로, 투자한 미국 회사들이 아시아에 진출할 때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채용하며 기술을 어떻게 검증할지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는 트웰브랩스가 이 두 방향이 한 회사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례라고 보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일을 옆에서 계속 응원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한국 AI와 미국 AI를 나누는 구분이 이제는 어느 정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요즘은 모델이든 에이전트든 출시되는 순간 전 세계 사람이 써 보고 곧바로 시장의 평가대에 오르며, 국경이 그것을 막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만든 모델도 자신감을 갖고 실리콘밸리에서 싸워 이기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트웰브랩스는 그런 믿음으로 신기술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세 사람은 AI 시대에 3년은 너무 길다며 1년 반 뒤에 더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대화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