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아와지 대지진의 15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나: 붕괴, 화재, 작동하지 않은 방재 체계
VAIENCE バイエンス원문 언어 日本語
일본의 스마트폰에는 땅이 흔들리기 전에 경보를 울리는 긴급지진속보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영상은 이 시스템이 탄생한 계기 중 하나로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꼽는다. 1995년 1월 17일의 대지진은 수많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까지 무너뜨렸다고 영상은 말한다. 격렬한 흔들림은 약 15초였다. 그 15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본은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이번 회의 주제다.
대도시 바로 아래에서 일어난 M7.3 지진
1995년 1월 17일, 세토내해에 있는 아와지시마 북단, 깊이 약 16km를 진원으로 하는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에서는 여러 단층이 뻗어 있다. 남서쪽으로는 아와지시마 쪽의 노지마 단층, 북동쪽으로는 고베 시가지 바로 아래를 지나는 스마 단층과 스와야마 단층이 있으며, 파괴는 이 단층들로 퍼져 나갔다. 대도시인 고베 바로 아래에서 흔들림이 일어났기 때문에 피해가 훨씬 커졌다고 영상은 설명한다.
이 지진에서는 기상청 진도 계급상 처음으로 진도 7이 적용되었다. 영상이 제시하는 피해 규모는 사망자 6,400명 이상, 부상자 4만 3,000명 이상, 주택 피해 약 64만 채, 피해 총액 약 10조 엔이다. 피해 총액은 당시 국가 예산의 10%를 훌쩍 넘었으며, 희생자 수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최다였다.
'지진 위험이 낮다'고 여겨졌던 고베
영상은 피해의 배경으로 당시 고베가 지진 위험이 낮은 지역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든다. 고베 부근에는 스마 단층과 스와야마 단층 외에도 활단층이 있지만, 각각을 개별적으로 평가했을 때 지진 발생 주기는 약 2000년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단층이 연동한 대지진이 일어났다. 영상은 이를 당시 활단층 평가의 한계로 보고, 고베라는 도시는 대지진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사실로, 간토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요코하마에서 같은 항구 도시인 고베로 이주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도 언급한다.
지진은 1995년 1월 17일 5시 46분 52초,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당시 고베 시민 152만 명과 주변 도시 주민 대부분은 잠들어 있었다.
희생자의 70% 이상은 건물 붕괴로 인한 질식·압사
영상에 따르면 이 지진의 특징은 희생자의 70% 이상이 건물 붕괴에 따른 질식이나 압사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은 1981년 신내진 기준 이전에 지어진 목조 주택이었다.
많은 목조 주택에서는 기둥과 토대가 접합부로 지탱된다. 강한 직하형 지진이 오면 건물 전체가 크게 기울며 변형되고, 그 과정에서 접합부가 부서져 '장부 빠짐'이 일어난다. 장부 빠짐이 일어나면 1층 기둥이 순식간에 빠지면서 1층 부분만 무너진다. 이렇게 수천 명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깔렸다고 영상은 설명한다. 고베시 내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히가시나다구로, 1,469명이 사망했다.
붕괴 피해가 컸던 지역에서는 화재도 잇따랐다. 고베시에서는 지진 당일에 100건이나 되는 화재가 발생해, 무너진 건물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고속도로와 지하역 붕괴가 무너뜨린 '안전 신화'
인프라 피해도 심각했다. 한신 고속도로 고베선에서는 교각 1,175기 중 637기, 교량 상판 1,304경간 중 551경간이 손상되었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고가도로가 옆으로 쓰러진 영상은 일본 전역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일본의 고속도로는 문제가 없다고 믿어졌지만, 실제로는 최신 설계 기법 도입이 늦어져 있었고,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에 무너졌다고 영상은 말한다.
지하에서는 다이카이역이 붕괴했다. 이 지하역은 기둥의 절반 이상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지상 도로는 최대 2.5m 내려앉았다. 영상이 원인으로 드는 것은, 주변 지반에서 강한 수평력이 가해져 역의 상자형 구조가 크게 변형되었고, 기둥에 휨과 전단력이 집중되어 견디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당시에는 지하 구조물이 지상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 피해는 전 세계 지진공학자와 설계 기술자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흔들림 뒤에 번진 화재와 진화 작업의 어려움
화재는 흔들림이 멎은 지 몇 시간 뒤에 발생하는 경우도 잇따랐다. 어느 지구에서는 지진 약 3시간 뒤에 정전이 복구되었는데, 그 시점에 가스 회사의 대응이 따라가지 못해 곳곳에서 가스가 새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 안에는 찌그러진 전자제품도 많이 남아 있었고, 이것들이 맞물려 많은 화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영상은 설명한다.
소방도 진화에 애를 먹었다. 단수로 소화전을 쓸 수 없는 곳이 적지 않았고, 멀리 떨어진 바다나 강, 학교 수영장 물까지 끌어다 진화 작업이 이어졌다. 그러나 멀리서 끌어온 호스가 차량에 밟혀 찢어지면서 진화가 몇 번이나 중단되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교통 혼란과 움직이지 못한 행정
영상은 지진 후 교통 통제를 하지 못한 것이 피해 지역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을 소개한다. 식량 등 구호물자를 전달하려는 차량이 고베로 향하는 도로에 몰려들어, 정체가 한때 히메지까지 이어졌다. 이 정체로 소방차와 구조용 중장비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도 크게 늦었다. 지진 발생 후 4시간 이상, 도쿄에 본부를 둔 소방은 물론 효고현조차 피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법률에서는 고베시로부터 정식 연락이 없으면 도쿄의 일본 정부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한편 고베는 피해 전체를 파악하기는커녕, 전화선 단선으로 외부와의 연락조차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영상은 융통성 없는 법률과 다양한 소통 문제가 재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말한다.
자위대도 히메지 등의 주둔지에 있었지만, 당시에는 피해 지자체, 특히 도도부현 지사의 재해 파견 요청이 없으면 본격적으로 파견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소방과 구급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전국 규모의 신속한 광역 지원 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고, 다른 지역의 지원을 원활하게 요청·투입하는 구조가 미흡했다고 한다.
게다가 고베시와 가스 회사 사이에 정보 공유가 충분하지 않아, 파손된 가스관에서 샌 가스가 화재를 악화시키는 와중에도 가스 공급 차단에 시간이 걸렸다. 잔해 아래에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프랑스에서 구조견을 데려왔지만, 지자체 측이 구조견 수용 절차를 파악하지 못해 현장 도착이 크게 늦어졌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영상은 시민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이 재해 시에는 말 그대로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시민의 구조 활동과 '자원봉사 원년'
공공기관의 대응이 늦어지는 한편, 일반 시민의 구조 활동이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영상은 말한다. 피해 지역 내의 소방과 경찰만으로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자신도 피해자인 많은 시민이 온갖 것을 동원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 했다. 이들의 활동이 없었다면 희생자는 수천 명 단위로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있다고 영상은 소개한다.
전국에서도 연인원 18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달려왔다. 지진 직후에는 의료, 식량과 물자 배급, 고령자 등의 안부 확인, 대피소 운영 등을 맡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물자 배분, 이사, 수리, 고령자와 장애인 돌봄으로 역할이 바뀌어 갔다. 이러한 활동은 많은 피해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받으며, 1995년이 훗날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지진에서 구축된 방재 시스템
영상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방재 시스템의 전제를 무너뜨렸다고 정리한다. 당시에는 피해 지역 안팎의 연락 수단과 이동 수단이 끊기는 사태가 상정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일본은 오늘날의 방재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건축물 내진 진단이 의무화되었고, 신내진 기준이 보강 사업의 기준이 되었다. 영상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는 흔들림 자체로 인한 건물 붕괴가 한신·아와지 대지진에 비해 분명히 적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한다.
2026년 현재, 지진으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나 당시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상은 이 재해의 기억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방재에 필요하다고 본다. 진원지가 된 아와지시마의 호쿠단 지진 기념공원에는 노지마 단층의 어긋남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영상은 처음의 긴급지진속보로 돌아간다. 2004년에 시험 운용이 시작된 이 시스템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희생과,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긴급지진속보가 울리고, 신칸센이 자동으로 정지한다. 흔들림이 오기 전에 주어지는 불과 몇 초의 여유는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 잃은 많은 생명의 교훈 위에 있다고 영상은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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